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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별곡 중 본사 (2)-3
관동별곡 중 본사 (2)-3 ⓒ 김대갑
상서로운 구름이 짙게 피오르는 듯, 여섯 마리 용이 옥반에 해를 받들어 떠받쳐 올리는 듯, 붉게 물든 태양이 동해에 찬연히 떠오르는 모습이라.

우리나라 가사 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이 금강산과 관동팔경의 풍광을 묘사한 관동별곡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는 선조 13년에 강원도 관찰사의 소임을 받잡고 기대와 걱정 속에서 임지로 떠난다. 그의 마음속에는 임금에 대한 사모의 정과 우국지정, 그리고 신선의 풍류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관동별곡에는 이런 그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때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2년 전으로서 당시 정계는 사색당파의 짙은 먹구름 속에 휩싸여 있었다. 송강은 임금의 혜안을 어지럽히는 간신배가 활개 치는 것을 걱정하면서 임지로 떠나야 했다. 그는 오래 전부터 동인의 탄핵을 받아온 처지였다.

바다를 바라보는 관음보살
바다를 바라보는 관음보살 ⓒ 김대갑
사정이야 어쨌든, 송강이 묘사한 낙산사의 일출은 굳이 낙산사를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바로 눈앞에서 동해의 아름다운 일출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붉다 못해 핏빛처럼 바다를 물들이며 떠오르는 동해의 일출! 새벽의 어스름을 젖히고 조금씩 조금씩 올라오는 태양의 몸짓은 마치 농홍한 구슬이 바다 위로 솟구치는 듯한 자태를 연상시킨다.

누구라도 넋을 잃지 않을 수 없다. 장엄하면서도 묘려한 그 모습에 누구라도 엄숙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어쩌면 동해의 일출은 우리 민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표현하는 가장 웅대한 오브제일지도 모른다. 그저 말이 필요 없을 뿐이다.

기실 동해에는 낙산사의 일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활처럼 휘어진 모래사장을 팽팽하게 긴장시키며 떠오르는 해운대의 일출도 있고, 동해남부선의 녹슨 철길 위에 은백색의 가루를 뿌리며 떠오르는 청사포의 일출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서로 저희가 가장 빠른 일출이라고 아웅다웅 다투는 울주군 간절곶과 포항시 호미곶의 일출도 있다. 그리고 거대한 모래시계의 눈금이 서서히 움직이는 정동진의 일출도 있고, 겨울연가의 애잔한 풍경이 스며있는 추암해수욕장의 일출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출 중에서도 낙산사의 일출이 단연 군계일학이니 그 아름다움을 두어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의상대 전경
의상대 전경 ⓒ 김대갑
낙산의 일출이 가장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천년 고찰 낙산사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백성의 염원이 간절히 스며있는 관세음보살상의 숭고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관세음보살상 앞의 관음전에 들어가 정면의 유리창에 비치는 관세음보살상을 보면 낙산사의 일출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양산 통도사의 대웅전에 불상이 없듯이 관음전에는 따로 불상이 없다. 다만 불단 위의 통유리를 통해 저 멀리 보이는 관세음보살상이 있을 뿐이다.

여명이 밝아올 즈음이면 관세음보살상은 귤의 속살을 닮은 황색으로 물들여진다. 그러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분홍빛이 조금 비치는가 싶더니 이내 불그스름한 빛이 그의 몸을 휩싼다. 곧 이어 나타나는 보살상의 금빛 찬란한 미소! 그 두 볼에 흐르는 미소를 보고 감동하지 않을 이가 어디 있으랴! 낙산의 일출을 표현하는 문장력이 짧은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관세음보살에서 바라 본 동해
관세음보살에서 바라 본 동해 ⓒ 김대갑
낙산사의 진미를 제대로 느끼려면 홍련암과 의상대, 그리고 제일 꼭대기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을 보면 된다. 먼저 홍련암은 낙산사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의상대사가 7일간이나 좌선한 후, 바다에서 솟아나온 홍련 속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그래서 홍련암은 일명 관음굴이라고도 하는데, 이 홍련암과 주변의 절벽이 오렌지 빛 일출에 노출되는 모습을 의상대에서 바라보는 것은 한국인만의 특권일 것이다.

의상대는 의상대사가 좌선한 곳으로 알려진 곳으로써 원래 건물은 예전에 소실되었고, 지금 건물은 1925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그래서 옛 자취의 고즈넉한 기풍은 사라졌지만 의상대에서 바라보는 일출이야 말로 낙산사 일출의 백미에 해당된다.

송강 정철은 바로 이 의상대에서 동해의 일출을 바라보며 상서로운 구름과 육룡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바다에서 해가 떠날 때에 온 세상이 흔들린다고 표현했으며, 그 해가 하늘에 치솟아 뜰 때는 가느다란 머리터럭도 셀 정도로 밝다고 했다. 바로 여기에 송강의 뛰어난 묘사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복원중인 낙산사
복원중인 낙산사 ⓒ 김대갑
그냥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세상이 흔들릴 정도로, 섬세한 머리칼을 셀 수 있을 정도로 황홀한 일출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말미에 구름을 빗대어 임금의 성총을 흐리는 간신배들이 득시글거리는 것을 걱정했다.

이 구절은 시선 이태백의 ‘등금릉봉황대’에서 인용한 것인데, 송강의 유교적 충의가 잘 드러난 부분이자 사대부인 송강의 한계가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행이 지난 화마에서 이 의상대는 안전하게 자리를 지켰으니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의상대에서 바라본 해안 절벽
의상대에서 바라본 해안 절벽 ⓒ 김대갑
낙산사는 단순히 불교문화재가 아니다. 거기에는 우리 민족의 숭엄한 미가 고스란히 누적되어 있으며, 끝없이 펼쳐나간 수평선에서 호연지기를 길렀던 호방함이 묻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로 표현되는 백성의 소박한 염원이 고이 간직된 곳이기도 하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눈이 오는 날 의상대에 올라 장엄한 일출을 카메라에 담고 싶을 뿐이다.

먼 후일, 우리나라가 저 찬란한 동해의 일출처럼 온 세계를 비추는 문화의 나라가 될 때 우리는 이렇게 외칠 수도 있을 것이다. 송강 정철을 중국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송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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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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