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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읍 용산쪽에서 바라본 낙동강 모래사장, 멀리 남지대교가 보인다.
남지읍 용산쪽에서 바라본 낙동강 모래사장, 멀리 남지대교가 보인다. ⓒ 김정수
2002년 낙동강 기행 책을 준비하면서부터 한동안 강의 풍경에 빠져들었다. 2005년에는 CJ케이블넷 경남방송과 '낙동강과 사람들'이란 테마로 촬영하면서 모두 두 차례 낙동강을 종주 하게 되었다.

함안 합강정은 두 번째 낙동강 여행에서 만난 비경으로 필자의 책에 이곳이 빠진 게 너무나 아쉬웠다. 필자가 낙동강 제 1비경으로 꼽는 예천회룡포가 10월의 가을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면 합강정은 11월의 가을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을 만하다.

작년에 조금 늦게 찾아간데다 촬영팀과 함께 움직이는 통에 충분한 촬영이 이루어지지 않아 올해 다시 찾아갔다.

계속되는 장기 출장으로 피곤한 데다 아침에 하늘이 잔뜩 흐려있어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화장실로 향하다 하늘이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이 쨍쨍해 밥도 먹지 않고 서둘러 카메라가방을 챙겨 길을 나섰다.

중부내륙고속도로 남지IC를 빠져 나와 남지 시내로 들어섰다. 남지철교 앞쪽에서 강변도로를 따라 가고 싶었는데 남지대교 가설공사로 길이 막혀 있어 다시 시내로 들어가 용산으로 향했다. 강변도로를 따라 내려서자 이내 맞은 편의 노란 은행나무가 보인다. 황금물결을 이루며 가을의 끝자락에 와 있음을 잘 말해준다.

합강정과 용화산이 단풍으로 물들고 있다.
합강정과 용화산이 단풍으로 물들고 있다. ⓒ 김정수
도로에서 강변과 연결되는 길은 차단막이 쳐 있어 차를 세우고 걸어갔다. 5분 여를 걸어가자 강변과 만난다. 낙동강에 이토록 고운 모래가 있었나 하고 새삼 놀랐다. 드넓게 펼쳐진 시원스런 백사장은 마치 사막 위를 걷는 듯했다. 발을 내딛자 그대로 푹푹 빠져든다. 그대로 가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강변의 모래 위로 산짐승이 지나간 발자국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강물이 넘실대는 모래사장 끝에 서자 강 너머로 합강정의 은행나무가 보인다. 강물 위로 반짝이는 햇살 뒤로 은행나무가 황금물결을 이루며 서있다. 그 뒤로 합강정이 자리한 용화산이 단풍에 물들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애석하게도 역광이라 사진으로는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담아낼 수가 없다.

이곳은 오전에 와야 가을 색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곳인데 벌써 오후 2시가 넘었다. 합강정은 은행나무와 주변의 나무들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주변 풍광은 역시 으뜸이다. 그냥 그곳에 눌러 앉고 싶었지만 은행나무와 좀 더 가까이서 만나기 위해 다시 떠나야했다.

합강정과 350년생 은행나무 전경
합강정과 350년생 은행나무 전경 ⓒ 김정수
다시 남지읍내로 들어서 남지교를 건너 함안으로 향했다. 칠서공단을 지나 대산면소재지 쪽으로 향하다 장암으로 들어섰다. 계속 직진하면 남강이 끝나면서 낙동강과 만나는 지점이 나온다. 두 강이 만나 바다를 꿈꾸며 흘러 내려가는 곳이다.

이곳은 필자의 고향인 의령군과 함안군, 창녕군이 만나는 경계지점이기도 하다. 강 너머로 고향 땅이 한눈에 들어왔다. 강변을 따라 이어진 임도를 따라 나아갔다. 작년까지만 해도 비포장도로였는데, 절반 정도는 포장이 된 상태였다. 임도를 따라 900m 쯤 나아가자 아래쪽에 합강정이 보인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로 인해 가을 풍경이 빼어난 곳이다. 하지만 나무에 가려 그 풍경이 잘 보이지 않는다.

보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사다리까지 가져 왔는데, 사다리에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나무들을 좀 정리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임도에 차를 세우고 산책로를 따라 100m 정도 더 내려가면 합강정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합강정에 도착하기까지 이정표를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작년에는 이곳을 찾는라 한참 애를 먹기도 한 곳이다.

합강정에 도달하기 약 20m 전방에 서자 합강정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은행나무가 정자 옆을 노란 물감으로 채우고 있다. 땅에 뚝뚝 떨어진 은행잎마저 한 폭의 풍경화가 된다. 원래 이곳은 11월초가 단풍의 절정인데, 올해는 10월의 무더위와 가뭄으로 단풍이 늦다보니 11월 16일에 찾았는데도 푸른 잎이 제법 보였다.

합강정 은행나무 뒤로 보이는 남지대교와 낙동강
합강정 은행나무 뒤로 보이는 남지대교와 낙동강 ⓒ 김정수
숨이 멎을 것 같은 가을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그렇게 합강정은 가을로 가득 차 있었다. 역시 다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합강정 들머리에는 50년 정도 되어 보이는 은행나무가 있고, 정자 바로 아래 낙동강 변에는 약 350년 생의 은행나무가 가을신사가 되어 나그네를 맞이한다. 그리고 그 뒤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그 옛날 나무를 심던 선비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이토록 멋진 풍경을 만들어낼 줄 알았을까? 나무가 주는 안정감과 멋진 풍경이 자연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은행나무 아래에 서서 하늘을 보니, 하늘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다. 가지 끝에 매달린 가을 너머로 합강정이 보인다. 입구의 안내표지판도 글씨가 지워져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합강정은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의 장포마을 끝자락의 낙동강과 남강의 합류지점 약 1km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조선 인조때 대군사부를 지내고 공조좌랑을 지낸 함안 선비 간송 조임도가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다.

합강정에 오르는 필자의 모습
합강정에 오르는 필자의 모습 ⓒ 김정수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합강2리에 있는 정자는 제법 알려진 편이지만, 함안에 있는 합강정은 경남 사람들조차 아는 이가 별로 없다. 낙동강 종주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나 간혹 찾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합강정이 제일 아름다울 때 두 차례 찾아왔지만, 다른 여행객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숨겨진 여행지가 아니라 너무 꼭꼭 숨겨놓아서 찾아가고 싶어도 찾기가 힘든 여행지이다. 제대로 관리하고 조금만 홍보하면 낙동강의 명소로 발돋움할 수 있는 멋진 곳이지만 방치되고 있어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모델을 구할 수가 없어 삼각대를 세우고 타이머를 10초에 맞춘 후 정자 앞의 계단을 수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며 사진을 찍었다. 바람이 불면서 은행잎을 하나 둘 떨구며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황금물결 아래에서 좀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이내 해가 산너머로 넘어가 버렸다. 가로등 하나 없는 길이라 서둘러 그곳을 빠져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김정수 기자는 여행작가로 홈페이지 출발넷(www.chulbal.net)을 운영중이다. 저서로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섬진강>, <남성미가 넘쳐흐르는 낙동강>, <주말에 떠나는 드라마 & 영화 테마여행> 등이 있다. 일본어 번역판인 <韓國 ドラマ & 映畵ロケ地 紀行>이 출간되었다. 

SBS U포터뉴스, 씨앤비뉴스, 국제신문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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