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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값 거품빼기 국민행동'을 진행하는 경실련 회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시청역 부근에서 국민행동에 동참하는 '10만 서포터즈' 모집 캠페인을 벌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온 나라를 떠들썩한 소동 한가운데로 몰고 간 부동산 문제가 다소 잠잠해지는 듯하다. 부동산 문제보다는 아파트 문제라고 하는 편이 옳을지 모르겠다. 투기업자나 부동산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임야나 농지까지 탐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모를 일이다. 땅에 한 맺힌 대한민국 백성들 숫자가 줄어들었다는 공식통계가 아직 없으니 말이다.

1970년대 중반 서울 강남 아파트의 대규모 신축과 성남, 광명 등지로 대표되는 서울 인근의 대대적이며 살인적인 개발광풍이 떠오른다. 70년대 작가 조세희와 윤흥길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로 수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와우 아파트' 붕괴사건은 얼마나 우리 가슴에 아픈 비수를 꽂았던가!

그 후로 지금까지 우리는 '아파트'라는 단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새로운 주거형태로 도입된 이래 그것은 투자를 넘어서 투기의 대상이 된지 오래고, 특권층과 일반대중을 가르는 가늠자가 된지도 이미 오래다. 그나마 20년 전에는 평수로 등급이 갈렸던 것이 이제는 아파트가 위치하는 동네와 주상복합 등에 따라 구체적으로 세분화되기에 이르렀다.

심상정 의원이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를 인용하여 밝힌 자료를 보자. 지난 1990년부터 2005년까지 15년간 재건축과 재개발물량을 제외한 신규공급주택 586만 채 가운데 46.1%인 270만 채가 주택보유자에게 매입되었다. 주택보급률은 72.4%에서 105.9%로 급증했으나 자기주택 보유비율은 전체가구의 49.9%에서 55.6%로 단순소폭 증가했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주택은 상당정도 보급되었으나 아직도 집 없는 가구가 전체가구의 44%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두 말할 필요 없이 집을 가진 자들이 아파트를 포함한 주택을 마구잡이로 사들인 결과다. 집을 두 채 이상 소유한 다주택가구는 전체가구의 6.6%인 104만 가구였으며 그들이 소유한 주택은 모두 477만3000채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투기는 도둑질과 다르지 않다

통계는 이쯤 해두자. 더 가면 정말이지 억장이 무너질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어째서 한 가구가 너덧 채의 집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생계형 다주택소유가 있을 터이나, 100만 가구 이상이 임대소득만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결국 투자 혹은 투기 목적으로 집을 몇 채씩이나, 그것도 투기지역에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누가 그런 투기의 주범인지 궁금증이 생겨난다. 당연히 가진 자들이다. 누구보다도 '사회지도층'이라 불리는 자들까지 뒤질세라 투자를 명목으로 상습적인 투기꾼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그럴듯한 직업과 아파트 한 채 가지고 있으면 은행 담보대출이 가능하고, 그것을 밑천 삼아 고가의 아파트를 사고, 그런 짓을 되풀이하면서 그 방면의 전문가가 된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도둑질과 다름없는 투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능력 있는 인간이 부를 늘리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 여기는 것이다.

아는 친구가 있다. 맞벌이로 수입도 썩 좋은 편이다. 교육과 주거환경이 괜찮은 곳에 큼지막한 평수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똑똑한 아내의 재테크 전략에 따라 은행에서 담보대출로 돈을 빌려 잘 나가는 동네에 아파트를 샀다.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과 기대를 가지고. 제대로 맞아들었다.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탁월한 선택이었노라고.

그런데 이런 자들은 부지기수다. 여기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무능하거나, 부의 축적에 둔감하다는 인식이 대한민국 사회에는 팽배해 있다.

비판적인 지식인도, 권력에 아부하여 한 자리 축냈던 인간들도, 세상에 이름자 널리 알려 명예를 누린 자들도 투기광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끈적끈적한 욕망의 제어는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투기꾼들을 향해 날렸던 비난의 화살이 부메랑 되어 고스란히 돌아오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한 시사 주간지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건설오적은 재경부와 건교부 고위관료들, 건축업자들, 일부 언론사들, 투기세력, 주택공사· 토지공사·도시개발공사 등으로 대표되는 정부기관이라고 한다.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 망으로 상호연대를 구축하여 '토건국가'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런 세력의 끈적끈적한 이해관계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대규모 아파트 공급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재경부와 건교부 고위관료 집단. 저렴하게 토지를 수용하여 택지로 개발하여 턱없이 높은 값으로 공급하는 토지공사와 주택공사. 거기에 입맛대로 분양가를 책정하여 고수익을 챙기는 건축업자. 아무리 비좁은 틈새라도 밀고 들어와 빨간 눈으로 이득을 챙기고 내빼는 투기세력. 잘못된 부동산정책을 비판하는 듯하면서도 대규모 광고로 엄청난 이익을 챙기는 언론사들.

먹고 살만해졌으니 이제 그만 좀 하라

▲ 경기도 성남시 분당 아파트 단지.
ⓒ 오마이뉴스 권우성
앞만 보고 무작정 달려온 시기가 있었다. 남들이 달리니까 나도 달렸던 시기가 있었다. 왜냐고, 언제까지, 누구와 함께,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묻지 않고 죽을둥살둥 달렸던 때가 있었다. 개발과 건축의 광기가 세상을 지배했던 무한폭력의 시기가 있었다. 이제는 냉정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시화호의 재앙을 새만금이 되풀이하고 있다. 같은 실수를 국가적 차원에서 반복하는 일은 재난이 아닐 수 없다. 풍요롭고 넉넉한 21세기 통일의 시대를 위해서라도 갈치 제 꼬리 잘라먹는 아파트 투기는 그만 잠재워야 한다.

이제는 두려워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날이면 날마다 우리는 보고 듣는다. 가진 자들의 여전한 아파트 투기행각에 대하여.

천민자본주의의 백미이자 전형인 아파트 투기는 지난 30년 동안 이 땅에서 단 하루도 멈추지 않고 진행되었다. 대한민국 사회의 내로라하는 자들의 치부수단을 들여다보면 거개가 이런 식이다. 이거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 아닌가.

이러니 10년이고 20년이고 공들여 저축하여 제 집을 마련해야 하는 다수 시민은 살맛이 없는 게다. 사정이 이런데도 젊은이들에게 결혼해서 애 많이 낳으라고 한다. 누굴 죽이려고!

권리가 있으면 그것에 상응하는 의무가 있다고들 말한다. 자유와 방종은 다르다고들 말한다. 그런데도 "내 돈 가지고 내가 쓰는데 무슨 잔소리냐!"고 일갈함으로써 모 그룹총수는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그런 자들이 사회지도층으로 군림하는 나라와 백성은 불행하다. 너무나 불쌍하다. IMF 사태로 부도난 각종 기업들의 뒷바라지를 한 공적자금은 국민들이 피땀으로 납부한 세금이었다.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먹고 살만한 사람들, 특히 지식이나 권력이나 돈푼 깨나 있는 자들은 아파트 투기에서 정말이지 손 뗄 때도 되었다.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깔았기로 '먹고사니즘'의 회오리에서 벗어나 있다면 이제 정말 멈추어라.

하기야 '기러기 아빠'를 직업으로 분류하면 1위가 자영업자고, 2위가 대학교수라고 한다. 어쩌자고 일이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큰 나라로 원정 출산하는 자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적잖게 두렵다.

아파트 광풍이 재앙으로 변할 것은 자명하다

공자사상을 일관하는 기본관념은 '충'(忠)과 '서'(恕)라고 한다. '기욕립이립인(己欲立而立人) 기욕달이달인(己欲達而達人)'은 충의 핵심이고,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은 서의 고갱이다.

'스스로 서고자 한다면, 남을 서게 하고, 스스로 통달하고자 한다면 남을 통달하게 하라', 이것이 인재를 키우고 국가를 경영하는 적극적인 실천의 방책인 '충'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 이것은 소극적이고 최소한의 도덕률인 '서'다.

내가 아파트평수를 늘리고자 한다면 남에게도 그럴 기회를 주어라. 내가 비싼 아파트로 이사하고 싶다면 남들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애쓰라.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 아파트 값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남의 아파트 값도 유지되기를 희망하라. (가능하다! 끼리끼리 모여 아파트 값 올리기 담합은 이제 그만 하자!)

우리 모두가 불로소득을 노리는 하이에나 근성을 버린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속도와 경쟁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고전의 미덕을 추구함은 어려운 일이다. 시대착오적인 헛수고이거나 공염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를 돌아보고, 이웃을 살피고, 노동자와 농민의 고단한 삶을 돌아보는 자세는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최소한 지식인이라면. 혹은 가진 자라면.

오늘의 아파트 광풍이 내일엔 재앙으로 변할 것은 자명하다. 소모적이고 낯 뜨거운 부동산 투기바람이 영원히 잠들기를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김규종 기자는 경북대학교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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