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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6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다.
ⓒ 교육희망
학생들의 창의력을 가로막는 원인은 가혹한 입시경쟁체제

‘논술 본고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주로 획일화된 입시 교육을 ‘논술 본고사’를 통해 극복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학생들의 창의력과 논리력을 기르려는 논술 교육의 취지는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진정한 논술교육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현행 입시제도, 교육과정, 교육정책이다. 교사들에게 논술교육 연수를 시킨다고 해서, 논술 고사의 비중을 강화한다고 해서 진정한 논술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창의력과 논리력, 비판 정신을 키우기 위한 대전제는 가혹한 입시경쟁체제의 해소이다. 논술의 원조라 불리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입시에 대한 부담 없이 다양한 독서 및 체험활동, 토론과 글쓰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입시경쟁체제가 존재하는 한 아무리 훌륭한 제도가 들어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또다시 입시의 수단으로 왜곡되어 학생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뿐이다. 당장 내년부터 교육부는 이른바 ‘독서 이력철’을 도입하여 이것을 대학입시에 반영하려 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독서관련 단체들이 이를 반대하는 이유도 독서교육마저 대학입시에 의해 왜곡되어 그 진정성을 상실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학교 교육을 획일화하는 주범은 바로 입시제도이다.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수능 시험 때문에 고등학교 교육은 오로지 수능에서 좀 더 높은 점수를 딸 수 있도록 하는 식으로 왜곡되어 있다.

현행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도, 교과서도 EBS 문제집의 위력 앞에 무기력하다. 고3 수업은 대부분 수능 문제 풀이로 채워질 수밖에 없고 수능에 반영되지 않는 예체능 교과는 아예 수업 자체가 불가능한 형편이다.

학교 교육을 획일화하고 학생들에게 가혹한 입시부담을 안겨다주는 현재의 입시경쟁체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공립대 통합전형을 통해 대학서열화체제를 해소해야 한다. 그럴 때 학생들의 다양한 창의력과 비판정신을 키우기 위한 논술교육이 시작될 수 있다.

교육과정, 새로운 교육적 가치에 따라 개편해야

현행 교육과정은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 국가에서 독점하고 있는 교육과정 편성권 때문에 단위 학교의 자율성도, 교사의 창의적인 수업도 불가능하다. 학생들의 관심과 수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교사들의 의견은 교육과정 편성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또한 각계각층의 이해와 요구가 교육과정에 제대로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이해 집단의 이해와 요구가 교육과정을 좌우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행 교육과정에서 노동교육은 아예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재계의 입장이 주로 반영되어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교사, 학부모,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교육과정위원회’를 통해 새로운 교육적 가치에 입각한 교육과정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현행 교육과정의 체계는 이른바 ‘통합논술’의 정신에도 맞지 않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입각하여 수준별-선택형 체제로 이루어져 있는 현행 7차 교육과정은 각 교과의 영역을 지나치게 세분화하여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학생들에게 파편화된 지식을 강요하고 있다.

국어 교과의 경우 ‘말하기-듣기-읽기-쓰기-문학-언어’를 분절화해 ‘화법’, ‘독서’, ‘작문’, ‘문학’, ‘문법’을 독립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사회 교과의 경우 ‘정치’, ‘경제’, ‘사회문화’, ‘법과 사회’가 분리되어 있고, 역사 교과의 경우 ‘국사’, ‘한국근현대사’, ‘세계사’가 분리되어 있다.

그 결과 학생들은 ‘읽기’와 분리된 ‘쓰기’를, ‘정치’와 분리된 ‘경제’를, ‘세계사’와 분리된 ‘국사’를 배우고 있는 꼴이다. 더구나 이것이 수능 선택 영역으로 이어져 수능에서 점수 따기 유리한 과목으로 학생들의 선택이 몰리고 있는 형편이다.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은 건강한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보편 교양 교육의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현행 교육과정처럼 지나치게 세분화된 지식의 체계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공교육의 보편적 이념에 따라 통합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또한 그 지식의 수준도 학생들의 지적 발전 단계에 맞추어 적정화하고, 단위 학교 및 교사들에게 자율권을 최대한 부여할 수 있도록 간략하게 만들어야 한다. 또한 지식교육을 뛰어넘어 공동체 교육, 문화교육, 생활교육, 노작교육 등 새로운 교육적 가치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지난 16일 대학로에서 진행된 '입시 KIN(즐) 페스티벌'. 수능시험을 마친 학생들이 "잃어버린 친구를 찾아달라"며 문제집을 접어 소망을 담은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 교육희망
교사들에게 교육과정 편성권, 교재 개발권, 평가권을 부여해야

교육의 주체는 교사이다. 교사들에게 자신의 교육관에 따라 마음껏 가르치고 평가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야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고 책임감도 높아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교사들에게 교육과정 편성권 및 교재 개발권이 부여되어야 한다. 전국에 있는 모든 학교에서 동일한 교과서를 가지고 수업하는 현실부터 개선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교육과정 편성 과정부터 현장 교사의 의견이 대폭 반영되어야 한다. 그리고 단위 학교 및 교사에게 교육과정의 편성권이 대폭 이양되어 교사들이 자신의 교육관에 입각하여 다양한 교육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행 국정 및 검인정 교과서를 폐지하교 자유발행제를 도입하여 획일성을 극복해야 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교사별 평가권’이 시급히 도입되어야 한다. 현재의 내신평가체제에서는 교사들이 수업 시간에 가르친 것을 시험 문제에 마음대로 반영하기도 어려운 조건이다. ‘교사별 평가권’을 부여함으로써 ‘교육과정-교수학습-평가’의 과정이 일관성 있게 이루어질 수 있고, 교사의 전문성과 책무성을 신장시켜 수업을 개선할 수 있고, 내신 평가에 대한 신뢰도도 증가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논술교육은 하나의 방법론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교육과정이 개편되고 교사의 교육권이 온전히 보장된 상태에서 독서 및 토론, 논술적 글쓰기가 다양한 형태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과목이나 교사에 따라 독서 수업이나 토론식 수업을 전개할 수도 있고 논술문 작성 형태로 내신 평가를 진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논술교육은 다양한 교육 방법론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예컨대 초등학교 글쓰기 수업에선 논술적 글쓰기보다는 오히려 상상적 글쓰기, 자기 성찰적 글쓰기가 중심에 놓여야 한다. 중학교 단계에서는 섣부른 가치 판단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 축적이 경우에 따라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논술적 글쓰기는 고등학교 이후의 단계에서 중심에 놓이는 것이 타당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것은 학생의 관심과 수준, 교사의 교육적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조절될 수 있는 부분이다.

교육여건의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

현재의 학교에서는 논술 준비가 이루지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결코 교사의 무능력이나 책임의 방기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다. 여전히 학급당 인원수가 40명이 넘어가고 도서관에 사서 교사가 배치되어 있지 않은 학교가 대부분이다. 독서교육도, 논술 첨삭 지도도 열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의 교육운동이 교육재정 확충을 통한 학급당 인원수 감축을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학급당 인원수가 20명 이하로 내려가야 토론 수업도, 글쓰기 수업도 가능하다. 도서관에 읽을 책이 있어야, 사서교사가 있어야 학생들에게 책을 권할 수 있다. 교사들의 수업 시수가 줄고 과중한 업무 부담이 해소되어야 마음껏 연구하여 수업하고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가혹한 입시경쟁체제를 해소하고 교육과정, 교육여건을 개선하여 학생들이 마음껏 뛰놀면서도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 교사들이 마음껏 연구하고 수업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교사와 학생이 얼굴을 맞대며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논술교육의 출발점이다.

덧붙이는 글 | 이형빈 기자는 이화여고 교사입니다. 논술 본고사의 문제점과 대학입시제도 개선안에 대해 8회에 걸쳐 연재한 기사를 마무리합니다. 관심 갖고 읽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논술 본고사, 무엇이 문제인가?] 

1. 2008학년도 입시안은 건국 이래 최악의 입시안 
2. 논술 본고사, 창의력 평가가 아닌 변별력 확보의 도구 
3. 논술 본고사와 사교육비 증가 
4. 논술 본고사와 교육 불평등 심화 
5.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맡겨야 하나? 
6. 외국의 입시 제도는? 
7. 입시제도 개혁을 위한 제언 1
8. 입시제도 개혁을 위한 제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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