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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주변의 소나무 숲길입니다.
전등사 주변의 소나무 숲길입니다. ⓒ 이승숙
전등사가 있는 정족산에는 산비탈을 따라서 돌로 쌓은 성이 길게 이어져 있다. 이 성을 삼랑성이라고 부른다. 성을 밟고 가다 보면 강화의 아기자기한 모습들을 구경할 수 있다. 강처럼 보이는 염하 바다 너머로 경기도 김포시가 설핏 보이고 또 다른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드넓은 들판이 가이없이 펼쳐진다. 또 다른 한 쪽으로는 서해의 섬들이 오밀조밀하게 다가온다. 마치 물수제비 놀이를 하는 양 섬들이 통통 던져져 있다.

삼랑성을 한 바퀴 돌아서 남문 근처까지 왔다. 그 때 봄이 엄마가 그러는 거였다.

"수목장 해 놓은 거 본 적 있어요? 저 쪽으로 가면 수목장 해놓은 데가 있어요."
"수목장 해 놓은 곳이 있어? 난 말로만 들었는데 해 놓은 데가 있단 말이야?"

수목장에 대해서는 신문기사를 통해서 보기는 했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었던지라 나는 무척 궁금했다. 그래서 봄이 엄마에게 그 곳이 어디냐고, 빨리 가보자고 채근을 했다.

남문을 지나 동문 쪽으로 올라가는 성벽 길은 조금 가팔랐다. 가파른 길을 올라가다보니 근처의 소나무들마다 다 번호표가 달려 있었다. 가만 보니 이 곳이 바로 수목장 터였던 것이다. 아직 수목장을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누군가의 영생목(永生木)이 될 나무들이었던 것이다.

푸른 하늘을 이고 산소들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참 따스하고 정겨워 보입니다.
푸른 하늘을 이고 산소들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참 따스하고 정겨워 보입니다. ⓒ 이승숙
조금 더 올라가니 자잘한 돌로 소나무 둥치를 따라 둥글게 화단처럼 꾸며놓은 곳이 보였다. 그리고 국화꽃다발이 보였다. 아직 채 시들지도 않은 것으로 봐서 유가족들이 최근에 다녀간 듯했다.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고인을 위해 머리를 숙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도 수목장을 한 곳이 두 군데나 있었다. 전망이 좋은 곳에 모셔져 있어서 그런지 고인들이 편안하게 쉬고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진강산에 올라간다. 산자락에 들어서면 여기저기에 산소들이 보인다. 햇볕이 잘 드는 따뜻한 남향받이에는 예외없이 산소가 있다. 추운 겨울에 산에 올라갈 때도 산소 자리에 가면 따뜻한 기운이 맴도는 것 같았다. 응달은 눈이 녹지 않아 추운 기가 감돌아도 산소 자리는 눈이 다 녹아 있고 따뜻하다. 그런 산소를 만나면 괜히 내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산에 올라가다가 쉴 참이면 산소 근처의 잔디에서 쉬곤 했다.

수목장례 모습입니다. 고인은 유가족들에게 한 그루 나무로 남았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수목장례 모습입니다. 고인은 유가족들에게 한 그루 나무로 남았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 이승숙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망자를 땅에 모셨다. 살아 있는 사람은 물 근처에 모여 살지만 죽은 사람은 물이 없는 곳에 모셨다. 물이 없고 햇볕이 잘 드는 남향받이 산자락에 망자를 묻었다. 그러면 죽은 이가 그 곳에서 영원한 휴식을 취한다고 산 사람들은 생각했다.

산에 드문드문 있는 산소는 보기에 별로 불편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지만 산 전체가 온통 무덤으로 덮여 있는 공원묘지를 보면 매장의 불합리성을 생각하게 된다. 계속 매장을 하게 되면 나중엔 온 산이 다 묘지로 덮일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되기도 한다.

갑자기 상을 당하고 보면 장지 선정에 애로사항이 많다. 그래서 선산이 없는 사람들은 부득이하게 납골당이나 수목장을 찾게 된다. 특히 수목장의 경우 친환경적이라는 좋은 점이 있어서 요즘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장례법이다.

수목장은 시신을 화장한 후에 나무 밑에 분골(뼛가루)을 묻는 장례법이다. 매장은 땅을 많이 차지할 뿐만 아니라 산림 훼손과 석물 설치로 인한 자원 낭비의 문제가 따르지만 수목장은 기존에 있는 나무 밑에 분골을 묻기 때문에 땅도 차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원의 낭비도 없다. 그리고 나무를 아끼고 가꾸게 되니 산림 보호 측면에서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또 수목장은 가족들이 아무 때나 찾아와서 쉬었다 갈 수도 있다. 성묘를 가는 거와는 다르게 수목장에는 마치 소풍 나들이를 온 거처럼 찾을 거 같다. 고인의 생신날이면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과 케이크를 들고 와서 남은 가족들이 고인을 추억하면서 나무 그늘 밑에서 이야기를 나눌 것 같다.

수목장은 무에서 와서 무로 돌아가는 무욕의 한 경지를 보여준다. 비석도 없고 제단도 없다. 이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이라고는 작은 명찰뿐이다.

바람도 쉬어가고 햇살도 머물다 가는 곳에 고인을 모셨네요. 자잘한 돌맹이로 작은 화단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바람도 쉬어가고 햇살도 머물다 가는 곳에 고인을 모셨네요. 자잘한 돌맹이로 작은 화단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 이승숙
수능 시험일을 하루 앞둔 15일 오후에 또 전등사에 갔다. 들머리 근처에 있는 수목장 터에 또 가보았다. 마침 수목장을 하고 있었다. 하얀 소복을 입은 처녀 아이와 까만 양복을 입은 학생이 눈물을 흘리면서 절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친척분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서 있었다.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두 남매는 먼저 저 세상으로 간 엄마를 가슴 아프게 바라보며 절을 하고 있었다.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저 아이들은 이제 두 번 다시 엄마의 다정한 음성을 듣지 못할 것이다.

그 아이들은 나무 주변을 돌면서 땅을 꼼꼼하게 밟아주었다. 그리고 나무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이제 그 아이들에게 엄마는 없지만 엄마 대신 맞이해 줄 나무가 생긴 것이다. 엄마가 생각날 때면 나무를 찾아올 아이들이 그려졌다.

천상병 시인은 이 세상에 소풍 왔다고 그랬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리라'라고 했다.

소풍 와서 잘 놀다가 다음 세상으로 갈 때 우리는 아름답게 떠나야 한다. 욕심내며 마음껏 살았던 이 세상을 떠날 때 다 벗어놓고 무욕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수목장은 참 아름다운 장례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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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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