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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전
경복궁 근정전 ⓒ 김선호
근정전의 내부 모습- 7개의 발톱을 가진 용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근정전의 내부 모습- 7개의 발톱을 가진 용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 김선호
아이들 방학 숙제를 이유로 경복궁을 둘러본 것이 서너 번 되는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사람이 살지 않은 궁궐의 건물만을 한번 둘러보았을 뿐입니다. 그러니 엄마를 따라 나선 아이들에게 궁궐은 하품 나게 할 만큼 지루한 공간 이었을 수도 있었을 테지요.

이번 경복궁 방문도 우리 문화유산중 하나이고 한때 왕들이 살았던 거대한 건물을 한번 둘러보다 오겠지 싶었습니다.

일요일(12일)이라 내·외국인으로 붐비는 경복궁에 매표를 하고 막 들어서려는데 안내방송이 흘렀습니다. 궁궐안내를 맡은 해설사의 안내가 있을 거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잠시 후, '우리궁궐길라잡이'라는 단체 소속의 시민자원활동가가 모습을 드러냈고, '해설이 있는 경복궁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영제교(금천교)에서부터 경복궁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경복궁의 가장 중심건물이자 가장 큰 건물인 근정전으로 가기 위한 돌다리가 '영제교'입니다. 해설사의 안내로 영제교 아래를 들여다봅니다. 거기 네 마리의 험상궂은 표정의 동물상이 고개를 외로 꼬고 물길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습니다. 악귀가 물길을 따라 들어온다고 믿었던 옛사람들의 해학이 섞인 지혜로움이 웃음을 짓게 합니다. 무섭게 생긴 야수로 하여금 악귀를 감시케 하겠다는 의도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지네요.

사정전
사정전 ⓒ 김선호
임금님만 지나다녔다는 가운데로 난 어도를 따라 근정전에 닿습니다. 어도는 경복궁의 중심 건물인 근정전과 사정전, 강령전, 교태전을 따라 곧게 이어져 있습니다. 즉, 광화문에서 일직선상에 있는 중심 건물들을 따라 어도가 놓여진 셈입니다.

알려진 대로 광화문은 일직선을 조금 벗어나 왼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습니다. 일제가 세운 조선총독부가 있던 위치를 따라 잘못 복원한 때문입니다. 광화문 제자리 찾기 작업은 곧 있을 예정이라고 하니 머잖아 광화문에서 경복궁 중심건물이 한 줄로 나란히 서 있던 옛 건물 그대로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존의 궁궐 나들이가 얼마나 단편적이었던가 새삼스럽게 느끼며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근정전의 '어좌'와 '일월오봉병'을 들여다봅니다. 건물 중앙에 위치한 왕좌를 지나 왕의 권위는 거기에서 한층 고조되어 천장에 발톱이 일곱 개나 달린 용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해설사의 안내에 고무되었을까요, 한 관광객이 질문을 던집니다. 그 관광객의 지적대로 경복궁의 모든 건물들 처마에 그물 같은 망이 둘러 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게됐습니다. 그물망은 신성한 장소여야 할 궁궐에서 살생을 방지하는 기능을 했다고 하네요.

'구렁이와 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처마 밑에 둥지를 틀기 좋아하는 새들이 궁궐이라고 비켜 갈리는 없고, 새들을 잡아먹기 위해 구렁이가 꼬이는 상황을 미연에 예방하기 위해 그물망을 둘렀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그간에 그냥 지나쳤던 게 한 둘이 아닙니다.

임금의 처소인 강령전 내부의 모습
임금의 처소인 강령전 내부의 모습 ⓒ 김선호
이쯤에서 아이들도 경복궁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다음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건물의 위용도 그렇거니와 그 분위기가 엄숙하기만 한 근정전을 벗어나면서 조금씩 건물에서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근정전 다음 건물인 사정전 또한 임금이 신하들과 더불어 나랏일을 보았던 장소라고 하는데 어쩐지 사정전은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곳이라는 생각입니다.

사정전 양 옆으로 동편엔 '만춘전'이 있고 서편엔 '천추전'이 있습니다. 편전인 사정전이 마룻바닥으로 되어 있어 난방이 불가능 하여 봄철엔 만춘전이, 가을엔 천추전이 편전을 대신 했다고 합니다. 보료가 놓여있는 만춘전과 천추전은 침소역할도 했다고 하니 온기가 느껴진 까닭이 거기 있었나 봅니다.

사신들에게 연회를 베푼 장소였다는 경회루를 앞에 두고 이야기가 길어집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고 믿었던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원리가 경회루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경회루에 앞에 서면 손가락으로 지붕에서부터 크게 원을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둥근 하늘이 경회루에 들어와 있는 걸 보시게 될 것입니다.

안과 밖의 기둥 모양이 다른 경회루
안과 밖의 기둥 모양이 다른 경회루 ⓒ 김선호
경회루를 받치고 있는 기둥을 살피다 보면 안쪽과 바깥쪽의 기둥이 서로 다른걸 보게 될 것입니다. 안쪽의 둥근 기둥은 하늘, 즉 임금을 뜻하고 바깥쪽의 네모난 기둥은 땅, 즉 백성을 뜻한다고 하네요. 뭐 전제군주가 통치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니, 지금의 정치이념에 빗댈 이유는 없습니다만.

경회루를 벗어나 담장길을 걸어 임금의 처소로 갑니다. 왕의 거처였던 '강령전'과 왕비의 처소였던 '교태전' 건물은 다른 건물과는 달리 용마루가 없습니다. 왕이 곧 용과 같은 존재이니 하늘 아래 두 마리의 용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또 하늘의 기운을 받아 왕자를 생산하는데 용마루가 걸림이 되니 용마루를 올리지 않았다고도 하네요.

교태전 뒤뜰 '아미산 정원'에 들어섭니다. 한·중·일의 정원 문화에 대한 해박한 해설을 곁들이니 자연을 이용한 우리정원이 더욱 정감 있게 다가옵니다. 왕비의 시선에서 아미산 정원을 들여다보는 행운도 누려봅니다. 그 행운이란 교태전의 뒤 계단참 꼭대기쯤에 서서 정원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날따라 유난히 많은 새들이 재잘대고 있는 아미산정원에 황토색 바탕에 수를 놓은 듯 그려진 꽃그림이 유난히 아름답게 다가오네요.

왕비의 처소인 교태전
왕비의 처소인 교태전 ⓒ 김선호
'동궁전'을 지나 관광객들의 요청에 의해 최근에 지어지고 있다는 '대장금 수랏간'을 지나 경복궁의 뒤뜰을 한참을 걸어가니 '향원정'입니다. '향기가 멀어질수록 그윽해 지는 정자'라는 시적인 의미를 지닌 향원정에서 경복궁 답사를 마무리합니다.

가슴이 시리기도 하고 뿌듯해지는 마지막 코스입니다. 명성왕후와 얽힌 이야기를 듣자니 이미 지나가 버린 역사의 뒤안길이건만 되돌려 그것만은 정말 막고 싶어질 만큼 가슴이 답답해 옵니다. 끝내 덜 태워진 왕후의 시신을 향원지에 뿌렸다는 마지막 설명에 답답한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답답한 가슴을 식혀주고 뿌듯함을 안겨준 것은 작은 샘이었습니다. 향원지에 물을 들여보내는 작은 샘의 이름은 '열상진원 샘'입니다. 동그란 열상진원샘에 끊임없이 물이 돌고 있습니다.

향원정 북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열상 진원 샘'
향원정 북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열상 진원 샘' ⓒ 김선호
여기엔 두 가지의 아름다운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는 연못물의 온도와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샘을 한바퀴 돌아 나온 물은 향원지에 사는 물고기들에게 적당한 온도로 흘러든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향원지가 유난히 잔잔한 까닭에 있습니다. 물결의 출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잔잔함 또한 '열상진원샘'이 한바퀴 도는 원리에 있다고 합니다.

'샘'이 있어 아름다운 건 어린왕자의 사막만은 아닙니다. '샘'이 있어 경복궁도 아름답게 기억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일요일에 경복궁을 찾으시면, 오전 10시, 11시, 12시30분, 오후 1시, 1시30분, 2시, 2시30분, 3시에 궁궐 안내를 받으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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