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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의 침묵>
<무덤의 침묵> ⓒ 영림카디널
아이슬란드 출신의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무덤의 침묵>은 이런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한다. 추리소설이 광범위하게 발달한 미국이나 일본, 영국이 아니라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더욱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이다.

아이슬란드의 수도인 레이캬비크 외곽에서 땅에 묻힌 유골이 우연히 발견된다. 수사반장인 '에를렌두르'를 중심으로 수사팀을 만들지만 이 유골에는 신분을 증명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수사팀 내부에서도 이 유골을 놓고 티격태격한다.

어떤 사람은 아이슬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종사고라고 주장한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얼어 죽은 사람의 유골이 수십 년 후에 발견된 것에 불과하다며 사건수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반면에 다른 의견도 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실종사고가 아닌 살인사건일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몇 십 년 전의 사건이건, 범인이 살아있건 죽었건 이 사건을 밝혀내야 한다며 수사팀을 독려한다. 에를렌두르는 형사들과 함께 수십 년 전에 실종된 사람들을 추적하고, 현장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을 탐문하면서 수사를 시작한다.

수사의 시작부터 이야기는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한 갈래는 수사팀을 중심으로 유골의 정체를 추적하며 수십 년 전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또 다른 갈래는 한 가족을 중심으로 수십 년 전의 과거에서 출발해 현재로 조금씩 다가온다. 두 이야기의 교차편집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를 오락가락하며 사건의 전모에 다가간다. 그리고 대단원은 이 두개의 이야기가 서로 만나는 지점이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한 가족이 있다. 오랜 세월동안 남편인 '그리무르'의 폭력에 시달리며 살아온 부인과 세 자녀가 그 주인공이다. 그 부인은 거의 15년 동안 물리적인 폭력과 정신적인 폭력을 견디며 살아왔다. 도망쳐도 소용없고 자식들 때문에 자살할 수도 없다. 그저 모든 것을 체념하고 다음번에는 예전만큼 심하게 맞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폭력의 피해자가 고백하는 폭력의 후유증은 심각하다. 한 인간의 영혼을 파괴할 정도로.

"영혼을 살해하는 사람에게는 누가 형을 선고하죠? 당신은 아나요? 영혼을 살해하는 사람을 고발해서 법정에 끌고 가 형을 선고할 수 있나요?"

그리고 이 사건을 추적하는 수사팀도 각각 가족의 문제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에를렌두르는 오래전에 이혼했다. 그리고 그 영향 때문에 에를렌두르의 딸은 마약중독에 시달리며 아버지를 증오한다. 수사팀의 다른 사람은 여자친구와 동거중이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요구하는 결혼과 출산을 자신은 원하지 않기 때문에 고민이다.

수사팀은 수십 년 전에 있었던 그리무르 가족의 사건을 수사해가면서, 그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가족의 문제를 들여다보게 된다. 모순적이게도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의지할 수 있는 곳이 가족이지만, 동시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는 곳도 가족이다.

대단원에서 에를렌두르는 살아남은 그리무르의 자녀와 마주친다. 그 자녀는 에를렌두르에게 말한다.

"당신은 가족을 잘 돌보시나요?"

에를렌두르는 가족을 잘 돌본 적이 없다. 아니 돌보기는커녕 그의 부인을 사랑한 적도 없다. 그리고 딸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고 아들과는 영영 멀어져 버린 것만 같다. 때문에 이 질문을 받고 괴로워한다.

<무덤의 침묵>은 2005년에 영국 추리작가협회 황금단도상을 수상했다. 재미있는 미스터리 소설이면서 동시에 아이슬란드의 풍경을 상상하게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도시의 외곽에 넓게 펼쳐진 평화로운 농장. 하지만 겨울이 오면 눈보라 때문에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거친 풍경으로 바뀐다.

그런 곳에서는 어느 날 누구 한명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주변 사람도 그리고 경찰도. 그런 일은 아이슬란드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가족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방법도 이런 식의 실종이었을지 모른다.

"처음에는 아이슬란드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쓸 소재가 없을 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곳 사람들은 누구를 쏴죽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여기는 LA가 아니니까. 하지만 글을 쓸 소재는 풍부하다는 게 밝혀졌다. 사람들은 범죄소설의 소재가 단순히 범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걸 모른다."

작가의 이 말처럼 가정에서 일어나는 폭력도 범죄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리무르의 세 자녀들은 모두 다른 모습의 성인이 된다. 그리고 그 중 한 자녀는 아버지의 폭력을 물려받아서, 성인이 된 후에 처자식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던가? 가정폭력이 끔찍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이 대를 이어서 거듭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 이미정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


무덤의 침묵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이미정 옮김, 영림카디널(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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