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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7일 오전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7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열린우리당의 '정치실험'이 사실상 실패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는 왜 열린우리당의 창당을 '정치실험'이라고 표현했을까? 그리고 그 정치실험은 왜 실패했을까? 정치인들의 '정치적 너스레'나 도덕주의자들의 '막무가내식 설교'가 아닌 살아 숨 쉬는 현실 속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민주국가에서 정계개편은 주기적인 선거를 통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또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당연하고 또 정상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선거를 통한 일상적인 정계개편이 아닌 정치인들 주도의 인위적인 정계개편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1985년의 신한민주당에 의한 민한당의 붕괴, 1990년의 3당합당, 1995년의 새정치국민회의의 창당 그리고 2003년의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 등이다.

정치인들 주도의 정계개편, 왜?

이런 식의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왜 일어나는가? 간단하다. 주기적인 선거가 민의를 반영하는데 실패했거나 또는 주기적인 선거기간 사이에 민심의 큰 변화가 발생함으로 해서 이것이 원인이 돼 정치인들 주도의 인위적인 정계개편이 일어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역대 인위적인 정계개편 과정을 복기해보자.

1985년의 민한당 붕괴는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영남군사파쇼시대 관변야당의 붕괴였다. 당연히 성공했다. 1990년의 3당합당은 영남군사파쇼세력과 영남민주세력이 연합한 정계개편이었다. 역시 성공(?)했다. 1995년의 국민회의 창당은 '김대중의 정계은퇴'를 강요하는 영남개혁야당세력과 이를 승인하지 않는 호남인들의 민의가 충돌해 나온 결과였다. 크게 성공했다.

그런데 2003년의 열린우리당 창당은 뭘까? 선거를 통한 민의에 문제가 있어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민의를 정치인들이 계도하겠다며 일어난 사건이다. 그래서 '정치실험'이다.

27일 오후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창당준비위원회 결성대회에서 발기인들이 결의문을 채택하고 있다.
27일 오후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창당준비위원회 결성대회에서 발기인들이 결의문을 채택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김한길 원내대표는 "우리는 작당해서 부패하거나 과거에 안주하려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국민께 사랑받기 위해서 변화를 추구해온 사람들"이라고 호소했다. 정치적 너스레다. 그런 정도라면 '정치실험'도 아닐 뿐더러 실패를 자인할 이유도 없다. 그냥 그렇게 가면 된다.

정동영 전 의장은 더하다. 그는 "열린우리당 창당은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돈, 지역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와 정당, 그건 여전히 유효한 가치이고 상당히 전진한 부분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치 열린우리당은 시대정신이고 국민들은 그 시대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퇴행적 집단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어렵더라도 국민들을 계도하며 그냥 그렇게 앞으로 나갈 일이지 퇴행적인 국민들과 영합하겠다는 말인가?

장영달 의원은 이런 실패발언에 반대하여 "하찮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동료의원에게 서슴없이 폭력을 자행하는 민주당 내 기득권세력과의 결별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회고한다.

그 폭력을 분당시도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라고 보는 장 의원의 시각이 독특하다. 그러나 어쨌든 그의 말대로 폭력이 정계개편의 원인이라면 열린우리당은 실패를 자인할 일이 전혀 없다. 아직 열린우리당의 폭력사태가 문제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창당은 정당했으나, 실패는 인정한다라니...

7일 오전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던 도중, 한나라당 의원들이 야유를 보내고 있다.
7일 오전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던 도중, 한나라당 의원들이 야유를 보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모두가 궤변이다. "창당은 정당했지만 실패를 인정한다"는 식의 발언은 국민들을 또다시 모욕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한다. 다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열린우리당이 실패했다면 그 창당목적이 실패했다는 말이므로 실패를 인정하려면 그 창당목적이 실패했음을 분명히 인정하기 바란다. 만약 창당목적의 실패를 인정할 생각이 없다면 그냥 그렇게 끝까지 열린우리당과 함께 국민들로부터 자신들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심판받기 바란다.

그러나 너무나 정당하고 단순한 이 선택요구 앞에서 열린우리당 정치인들은 매우 괴로울 것이다. 왜냐하면 열린우리당의 진짜 창당목적과 그 실패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괴롭기 때문이다. 이해한다. 우리나라 정치담론의 특성은 위선이란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거리낄 것 없는 내가 대신 말해주겠다. 열린우리당의 진짜 창당목적은 '호남 없는 개혁'이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실패는 곧 '호남 없는 개혁'의 실패다. 그러므로 실패를 인정하고 미래를 도모하자는 것은 곧 '호남+개혁'으로 복귀하자는 의미고, 이 실패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죽으나 사나 '호남 없는 개혁'을 계속하자는 의미다. 전자에 친호남권 정치인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후자에 친노세력이 포진하고 있다.

자, 이제 모두에게 묻자. 당신은 '호남+개혁'에 동의하는가, 아니면 '호남 없는 개혁'에 동의하는가? 답이 전자라면 후자를 선택한 집단으로부터 '지역주의로의 회귀'라고 비난받을 것이다. 그리고 답이 후자라면 전자를 선택한 집단으로부터 '영남패권주의적 노빠'라고 비난받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뭔가? 나는 전자, 즉 '호남 없는 개혁'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호남+개혁'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덕분에 '호남지역주의자'라는 비난을 달고 산다. 다행히 정치인이 아니라서 '부패세력'이라는 비난은 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비난이 '영남패권주의적 노빠'들에게서 나오는 개인적 비난이라면 그래도 들어줄 만하다. 놀라운 것은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의 이런 식의 대국민 호들갑이다.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회동은 한마디로 지역주의의 구태, 편가르기 정치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다. 정말 요지경 세상이다.

우선 정치현상에 대한 초보적인 수읽기조차 안 되고 있다.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회동은 '지역주의(호남)+편가르기(개혁)'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호남+개혁'을 지지하는 김 전 대통령과 '호남 없는 개혁'을 믿고 있는 노 대통령의 불화 때문에 만들어진 회동이다. 그리고 이 불화는 김 전 대통령과 노 대통령이 함께 밥 한끼 먹는다고 해서 한나라당이 걱정하는 것만큼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불화가 아니다.

다음 "지역주의의 구태"라고 말한 김무성 의원을 비롯하여 "김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를 부활시켜 한국정치를 20년 후퇴시켰다는 비난을 자초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는 나경원 대변인 발언 등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영패 이데올로기'다.

한나라당이 지역당에 올인하는 이유

6일 오전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나경원 대변인이 강재섭 대표에게 무언가를 보고하고 있다.
6일 오전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나경원 대변인이 강재섭 대표에게 무언가를 보고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여기서 수수께끼를 한 번 내보자. 김무성 의원이나 나경원 대변인 등이 대담하게도 "지역주의의 구태"라든가 "지역주의를 부활"시킨다는 식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한나라당은 현재 '영남지역당'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지역주의 하면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영남패권주의'가 아니라 민주당으로 상징되는 '호남지역주의'라는 관념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기 때문에 마음 놓고 이에 편승하는 발언일까?

당연히 후자다. 개혁이든 보수든 누구나 믿고 있는 대한민국 이데올로기로는 민주당은 호남지역주의에 기대는 지역당이지만 한나라당은 영남패권주의를 징표하는 지역당이 아니다. 민주당은 사라져야 할 구태정당이지만 한나라당은 정권교체 파트너가 되어야 하는 정통성을 가진 보수정당인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양대산맥'이라는 영패 이데올로기로 함축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이제 정리해 보자. 기본적으로 열린우리당의 실패는 '호남 없는 개혁'의 실패다. 왜 이런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 호남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영패에 대해 말하지 않기'라는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한나라당을 영패정당이 아닌 정상적인 보수정당으로 간주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호남인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지역주의라고 비난하며 반드시 정책적으로 분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영남인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듯 한국정치의 '양대산맥' 운운하며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부여해준다면 그 결과는 뻔한 것 아닌가?

아예 근원적으로 묻자. 영남이 정책적으로 분열되지 않고 한나라당이라는 지역당에 맹목적으로 올인하는 이유는 과연 뭔가? 영남의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바보들이라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정책당이 가져다 주는 국민계층적 이익보다 '패권적 지역당'이 가져다주는 지역적 이익이 더 달콤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지역문제가 지양되기 위해서는 지역패권주의의 피해자인 호남과 민주당이 아니라 지역패권주의의 수혜자인 영남과 한나라당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대통령과 그를 믿는 지지자들은 영남이 아닌 호남의 분열이 관건이라고 믿었고 영남의 외면으로 참담하게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금까지처럼 권력이 있는 노 대통령은 물질적으로, 앞으로 권력이 없는 노 대통령과 지지세력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계몽주의로 끊임없이 '호남 없는 개혁'을 내세우며 영남을 향한 구애를 계속할 것이다. 그래서 영남의 지역패권주의를 지양하기 위해서는 '호남+개혁'으로 '영남+보수'를 정치적으로 압박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친호남 세력과 분열하며 '투쟁'할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는 '실패가 실패인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가야 할 끝없는 역사의 미로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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