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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타리에 심었던 호박이 탐스럽게 익어 사무실 한쪽을 장식하고 있는 모습.
ⓒ 배만호

‘봄에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농부에게만 하는 말은 아닐테지요. 씨를 뿌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 쓰이느냐에 따라 그 말의 의미 역시 다를 것입니다.

가을이 되니 조그만 텃밭에 처음 심은 농작물들이 저를 몹시 바쁘게 합니다. 다른 일들로도 바쁜데, 그러한 것들을 수확해야 하는 것이 기쁘면서 다른 한편으로 부담이 되는 것은 왜일까요? 제대로 된 농부도 아닌 것이 농부인 양 흉내를 내려고 시작한 텃밭이 상상했던 것보다 엄청난 양의 농산물을 안겨 주니 오히려 땅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른봄에 시장에서 고추 모종을 사다 심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추가 잘 자라지를 않는 것입니다. 너무 이르게 심은 데다 고추를 심은 땅이 건물을 지으면서 버린 흙들을 모아 둔 곳이기에 풀조차 자라기 힘들 정도의 땅이었습니다.

그런 땅에 고추를 심었더니 한 달이 지나도 고추는 자랄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멈추어 있기라도 했으면 기다렸을 텐데, 몇 포기씩 말라죽는 고추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걱정과 함께 고추가 없는 빈 자리에 장마철에 돋아날 풀들이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늦었지만 다시 모종을 사서 심었습니다. 늦게 심은 모종에서 풋고추를 따서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 지난 여름에 나누어 주려고 딴 풋고추
ⓒ 배만호

하지만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자 고추는 병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심해진 고추밭에 콩을 심었습니다. 병이 든 고추는 더 자라지 않았고, 콩은 그 틈을 타서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8월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자 콩은 넝쿨을 이루며 고추밭을 온통 덮었습니다. 울타리를 타고 올라간 호박은 울타리가 보이지 않도록 자랐고요. 무성하게 자라는 작물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제가 고추밭에 들어가는 것을 호되게 나무랐습니다. 공부해야 할 아들이 밭에서 일을 하는 것 때문에 화가 난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공들여 키운 고추가지를 철없는 아들이 부러뜨리기 때문입니다. 겨우 고추가지 몇 개를 부러뜨린다고 아들을 고추밭에 못 들어오게 하셨다는 것이 그때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고추를 심고, 호박을 심으면서 그런 어머니의 마음이 조금씩 이해가 됩니다. 씨앗을 심어 열매를 맺게 하는 과정을 자식 키우듯이 했기 때문에 어머니의 손을 거친 모든 것들은 자식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키운 곡식들은 잘 자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농사 짓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농사 그까짓 거 별 거 아니네’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제 사랑은 어머니의 그것과 다른지 고추는 자꾸 병이 들어갔습니다. 고추와는 달리 병에 잘 걸리지 않는 콩은 무성해져 갔습니다. 그렇게 가을이 되자 고추밭은 없어지고 콩밭이 생겨났습니다.

수확의 기쁨을 나누다

지난 월요일(6일)에 일터 사람들이 콩을 땄습니다. 밥에 넣어 먹으면 맛있다는 말에 모두들 제게 콩을 팔 생각이 없냐고 물었습니다. 콩을 사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그냥 주었을 텐데, 팔 생각이 없냐고 묻는 말에 마음이 변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가격을 정했습니다. 콩을 따 가는 조건으로 1kg에 3000원에 팔겠다고. 그리고 1000원은 공금으로 환원하겠다고 했습니다.

▲ 점심시간을 이용해 콩을 따고 있는 모습입니다.
ⓒ 배만호

그러자 모두들 좋다고 하더군요. 점심을 먹고 모두들 콩밭으로 갔습니다. 고추를 심었던 곳이라 콩이 많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알차게 달렸습니다. 함께 일을 하는 기쁨 때문에 일은 쉽고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농민단체에서 일을 한다고 하지만 콩 따는 일을 처음 해 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만호 때문에 콩도 다 따 보네.”
“3000원 주고 이런 일도 해 본다.”

퇴근 시간이 되자 모두들 콩깍지를 까기 위하여 모여들었습니다. 밥에 넣어서 먹으려고 약간 덜 여문 콩을 땄기 때문에 콩깍지를 까야 했습니다. 일터 사람들이 모두들 둘러앉아 콩을 까는 모습. 그 모습도 참 좋았습니다.

▲ 퇴근 시간이 되자 사무실 구석에 둘러앉아 콩깍지를 까고 있습니다.
ⓒ 배만호

그렇게 하여 7kg의 콩을 수확했습니다. 점심밥을 먹을 때에 쓸 콩을 뺀 나머지 5kg을 나누어 가져갔습니다. 저는 1만5000원을 벌었습니다. 여기서 5000원은 공금으로 내고, 1만원을 번 셈이지요. 좀 더 계산을 하자면 종자 값 5000원을 뺀 5000원이 순 수입입니다. 그럼 연봉 5000원이 되는 것일까요?

신문을 보면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도 있고, 몇 천 만원을 하룻밤에 벌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집 한 채 값이 수십 억이 된다는 뉴스도 있습니다. 그런 반면에 부부가 일 년 수입 300만원으로 살아가는 농부가 있습니다. 더 이상 바라지도 않습니다. 더 많이 벌면 남은 수입만큼 땅으로 돌려줍니다. 땅 때문에 그나마 벌었다며 땅에게 감사하다고 합니다.

저는 본업 이외의 일로 5000원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5000원으로 벌어들인 것은 결코 5000원으로 살 수 없는 것들입니다. 아니 오천만원을 주어도 살 수 없는 기쁨을 샀습니다. 제게 콩 한 봉지를 사서 집으로 가는 동료들의 마음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주머니에서 꺼낸 3000원이 단지 콩의 가격 때문에 꺼낸 돈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 맛있어 보이죠?
ⓒ 배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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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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