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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나침반
이 책은 2003년 3월부터 2005년 2월까지 9번에 걸쳐 진행되었던, 데이비드 바사미언과 촘스키가 나눈 대화를 엮은 것이다.

사실 '얼터너티브 라디오'의 바사미언과 촘스키가 나눈 대담이 책으로 엮여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4년의 < Keeping the Rabble in Line >, 2003년의 < Class Warfare >, 그리고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프로파간다와 여론>도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바사미언은 20년 전부터 촘스키와 대담을 이어오고 있는데, 대담의 주제를 이끌어내는 바사미언의 전문가적 식견은 그리 흠잡을 데 없는 듯하다.

전작 <프로파간다와 여론>에서 미국 대외정책의 본질과 미국 언론에 대해 날카로운 시각을 보여주었던 촘스키의 목소리는 이 책 <촘스키, 우리의 미래를 말하다>에서도 여전히 생동감 있게 전달되고 있다.

불량국가, 미국

촘스키는 "미국은 군사력을 키워, 세계를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런 미국을 가리켜 '불량국가'라고 부른다. 촘스키의 정의에 따르면, 불량국가라는 단어는 선별된 적국들에 대해 적용하는 프로파간다로서 사용되기도 하고, 스스로 국제질서에 구속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는 국가들에 적용되기도 한다.

전자의 정의에 의하면, 불량국가란 미국과 그의 파트너들이 낙인을 찍은 '말을 듣지 않는' 몇몇 국가들을 부를 때 쓰는 말이 될 터이고, 후자의 정의에 따르자면 불량국가를 규정하는 그 강대국, 특히 미국이 그 범주에 드는 것이다. 미국이야말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제법에서 자유로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불량국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는 '힘의 지배'가 '법의 지배'의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불량국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불량 국가 : 미국의 세계 지배와 힘의 논리>(두레)를 참조하면 좋겠다).

"미국은 앞으로 세계를 무력으로 지배하려 할 것입니다. 미국의 지배에 저항하는 세력이 있으면,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세력이든 조작되거나 상상으로 만들어낸 세력이든 간에, 미국은 그 세력이 위협거리가 되기 전에 그 세력을 파괴할 권리를 확보한 셈이니까요. 선제공격이 아니라 예방전쟁 덕분에 말입니다." (10쪽)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국제법에 아무런 근거도 없는, 미국의 '힘'에 근거한 독자적인 '예방전쟁(Preventive war)'인 셈이다. 그런데 힘의 논리를 앞세운 미국의 태도는 '이중성'을 보여준다.

"테러리스트를 은닉하는 나라는 테러리스트와 똑같이 범죄자이다"라고 보는 부시 독트린에 대해 촘스키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이들이 오히려 체포된 '5명의 쿠바인' 사건을 통해 미국의 이중성을 밝힌다. 미국이야말로 테러리스트들을 은닉하는 국가의 완벽한 예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시 독트린은 일방적인 독트린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오직 미국에게만 무력과 폭력을 사용하고, 테러리스트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권리를 허락한 독트린일 뿐입니다. 강한 힘을 가진 나라에게, 다른 나라가 범한 것만이 범죄로 간주될 뿐입니다." (85쪽)

프로파간다의 가공할 위력

한편, 이 책에서 촘스키는 2002년 9월부터 시작된 이라크에 대한 프로파간다가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 쉽게 설명하고 있다.

미 행정부는 사담 후세인이 미국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독재자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국민을 공포에 몰아놓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안보가 위협받고 있다고 수선을 피우면, 국민은 강한 지도자에게 자연스레 끌리게 마련이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외톨이가 되어버린 미국인들은 이제 정말로 생존을 위협하는 세력이 있다고 믿어버린 것이다. 결국 미국 국민만이 이라크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프로파간다가 거둔 놀라운 성과라고 말하고 있다. 미 행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이라크침공은 정당방위라 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라크에서 잔혹 행위를 저지른 군인들은 이라크가 우리에게 그런 짓을 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들에게 그런 짓을 하는 것이라 변명합니다. 이라크인이 우리 미국인에게 무엇을 했나요? 9·11테러요? 이라크인은 9·11테러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테러 공격을 받고 있다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고, 이라크인이 우리를 공격할 것이란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합니다." (186쪽)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할까? 언론의 주요 역할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언론은 대체로 직업인으로서 성실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직하고 성실한 직업인으로서, 그들에게 맡겨진 일을 올바로 처리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런 자세를 갖고 있다고 해서,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 대부분이 지배계급을 지배하는 프리즘을 통해서 세상을 인식한다는 사실까지 바뀌지는 않습니다." (171쪽)

결국 우리는 언론에 보도되는 모든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자세를 키워야 한다. 그런데 촘스키는 이런 태도란 우리에게 주어지는 정보를 일반적인 상식으로, 회의적인 지성으로 점검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가 이처럼 자가당착적이고 모순으로 가득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 시대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촘스키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이 책을 통해 촘스키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더 원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준다.

"깨달음은 진보를 위한 첫걸음입니다." (182쪽)

"우리가 진정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같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한두 명의 사람과 힘을 합해 조금씩 더 큰 조직으로 키워가며 다음 단계를 실행하고 좌절을 겪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어딘가에 도달하는 일, 지루하지만 올바른 일을 매일 반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입니다." (105쪽)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노예제도가 어떻게 폐지되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노예제도 폐지운동이 약간의 성과라도 얻기 전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투쟁을 벌였습니까! 원하는 성과를 즉각 얻지 못했다고 그때마다 좌절하고 포기한다면, 최악의 결과가 닥칠 수밖에 없습니다. 힘겹지만 투쟁을 꾸준히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26쪽)

"사회참여의 목표는 아주 기본적인 것입니다. 이 땅에는 고통받고 가난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얼마든지 완화될 수 있고 극복될 수 있습니다. 또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억압도 있습니다. …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생각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는 데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는 이런 무관심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209쪽)


[덧붙이는 글1] 촘스키는 북한 핵문제는 어떻게 볼까?

'미국이 군사적으로 훨씬 강하고 핵무기 프로그램까지 강행하는 북한을 놓아두고, 큰 위협거리도 아닌 이라크를 공격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촘스키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라크는 방어력을 거의 상실한 국가이지만, 북한은 전쟁억제수단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전쟁억제수단은 핵무기가 아니라 비무장지대에 집중 배치된 대포입니다. 모든 포문이 남한의 수도인 서울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경지대에 주둔한 수만 병력의 미군을 겨냥하고도 있을 겁니다. 펜타곤이 정밀유도무기로 그 대포들을 섬멸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는 한 북한은 전쟁억제력을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61쪽)

[덧붙이는 글2] 책을 읽으며 껄끄러웠던 점 : '그린카드'에 대하여

"그린카드란 푸른색으로 된 신분증으로 환경에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뜻한다." (22쪽)

옮긴이가 주를 달아 놓은 '그린카드'란 말 그대로 '푸른색으로 된 신분증'을 뜻하는 것으로, "주로 일반인에 비하여 우대하는 뜻이 있는 경우가 많고, 환경 관련 단체나 환경과 관련된 의미"로도 사용되기는 하나, 이 책에서는("이번 반전 시위로 이민자, 그린카드 소지자, 일반 시민 등을 무차별적으로 검거한 사태를 비롯해서…") 미국 영주권을 뜻한다.

촘스키, 우리의 미래를 말하다

노암 촘스키 외 지음, 강주헌 옮김, 황금나침반(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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