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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을이 깊어가는 11월 첫 주 토요일. 정배학교에는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노오란 은행잎이 너울너울 춤주며, 느티나무 낙엽이 수북이 쌓여 낙엽 융단을 만들어 줍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11월 첫 주 토요일. 정배학교에는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노오란 은행잎이 너울너울 춤주며, 느티나무 낙엽이 수북이 쌓여 낙엽 융단을 만들어 줍니다. ⓒ 공순덕
회사 안가는 엄마는 가끔씩 녀석의 학교 가는 토요일을 헷갈립니다. 엄마 회사 안 간다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뒹굴며 수다 떨고 놀다가 학교를 가야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는 부랴부랴 정신없이 학교를 향하기도 합니다. 아이의 학교 가는 일 챙기는데 이렇게 무심한 부모여도 되는가 잠깐 고민해 보기도 합니다.

평상시 아이들과 걸어서 가는 녀석이 오늘은 엄마가 데려다 줄 것을 믿고는, 아침밥을 먹고 나서도 동화책을 손에 들고 늑장을 부립니다. 엄마가 입히고 싶은 옷을 내놓고 협상을 벌이지만, 결국은 자신이 입고 싶은 옷으로 챙겨 입고 추울 거라고 겉옷을 챙겨주지만, 기어코 거부하고는 덜렁덜렁 앞장섭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11월 첫 주 토요일. 정배학교에는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노~~오~~란 은행잎이 너울너울 춤주며, 느티나무 낙엽이 수북이 쌓여 낙엽 융단을 만드는 환상의 풍경이 연출됩니다.

운동장 가의 낙엽 수북이 쌓여있는 벤치에 툭툭 털고 앉아 흩날리는 은행잎, 불붙는 단풍나무와 햇살 눈부신 가을하늘, 상쾌한 가을바람을 맞이합니다. 운동장 저쪽 끝자락에선 아이들 셋이 왁자하니 축구 놀이에 열심이고, 서너 살 꼬마 아이를 앞세운 엄마는 정배학교 운동장 반을 채우고 있는 은행잎을 밟으며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그런 풍광 속에 느긋하니 앉아서 똥이아빠에게 전화를 합니다.
"학교가 환상이야, 은행잎이 운동장을 가득 채웠어, 바람이 너무 좋다!"

수다를 한바탕 늘어놓고는 금세 집으로 향합니다. 집에 도착하니 똥이아빠는 마당에서 강아지 먹이를 주고 있습니다. 똥이엄마도 도와 물을 갈아주고, 엊그제 완성한 마당가 고재 벤치 위에 나란히 앉아 두런두런 수다를 떨며 느긋한 토요일 오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엊그제 완성한 마당가 고재 벤치. 동네 방앗간을 뜯을 때 나온 나무재료를 확보해 두었다가 똥이아빠가 멋진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아직은 미완성. 샌딩과 칠 작업이 남아있으나 요즈음 자주 이용중인 벤치입니다.
엊그제 완성한 마당가 고재 벤치. 동네 방앗간을 뜯을 때 나온 나무재료를 확보해 두었다가 똥이아빠가 멋진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아직은 미완성. 샌딩과 칠 작업이 남아있으나 요즈음 자주 이용중인 벤치입니다. ⓒ 공순덕
오늘은 주민자치위원회 위원 중 한 분의 집들이 초대를 받은 날입니다. 공학박사님이시고, 서종 마을에 들어온 지 1년쯤 되신 분인데, 북한 강변 나루터 옆의 풍광 좋은 곳에 노출콘크리트의 멋진 집을 지어 마을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정배학교를 다시 가서는 아들녀석 학교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아이들을 데리러 하나 둘 모인 엄마아빠들과 인사를 나누고, 운동장을 돌며 노오란 은행나무 배경으로 모델이 되어 사진도 박아보고, 섹시한 남편의 미소를 담은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며 썰렁한 농담을 투덕투덕 쏟아내다가, 한 엄마가 보온병에 준비해 온 커피도 얻어 마시고, 그렇게 한참을 기다립니다.

5-6학년 고학년들까지 운동장으로 나오고, 바쁜 일이 있는 듯 담임선생님 차가 부리나케 학교를 빠져나가고 한참이 지나서도 아들녀석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똥이아빠의 채근에 똥이엄마가 녀석의 교실까지 들어가 봅니다.

2학년 교실은 작년 봄 아빠들이 힘을 합해 만들어 준 책장이 그득한 도서실 한켠에 올망졸망 책상 10개가 놓여있는 곳입니다. 교실이 모자라 도서실 공간이 2학년 교실이 된 것입니다.

정배분교 전교생 숫자는 33명입니다. 한 학년에 8명이 안되면 2개 학년을 모아 복식 수업을 합니다. 작년까지는 2개 학년씩 모두 복식 수업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올 해 2학년과 5학년의 숫자가 8명씩을 넘겨 분반을 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교실 하나가 모자라게 된 것입니다.

아들녀석은 그 좁은 공간에 올망졸망 놓여 진 작은 책상에서 장금이 만화책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아침에 입혀준 긴 윗도리는 어디다 벗어던졌는지 보이지 않는 반팔 차림으로 볼이 빨갛게 상기되어 만화책 보기에 열중해 있습니다.

지난번에 집짓는 거 보았던 커다란 집이 완성되어 초대받아 지금 가야한다고 말하니 인상이 찌푸려집니다. 만화책을 보다가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신나게 놀아야 되는데, 몹시 아쉬운 폼입니다. 투덜거리면서도 따라나서는 아들녀석과 함께 세제를 하나 사서 덜렁덜렁 들고는 방문길에 오릅니다.

희연재(수련을 벗하여 사는 기쁨이 있는 집)에 도착하니, 마당 곳곳에 설치한 작은 스피커에서 클래식 연주가 은은히 울려 퍼지고, 집안의 등은 모두 밝혀져 손님을 반기고 있습니다.

활짝 열려진 대문 안쪽으로 1층이기도 하고, 지하이기도 한 서재 공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계단을 올라 파~티가 열리는 마당으로 들어서니 마을의 이웃 어른들과 집 주인의 가까운 지인들이 섞여 너른 마당을 가득 채우고 계십니다.

마당 앞으로 너른 북한강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곳에 조형물 같은 멋진 3층 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식탁과 아일랜드 형 테이블이 있는 부엌, 동쪽과 남쪽으로 통 창을 낸 거실, 드레스 룸과 화장실이 딸려있는 안방, 손님방과 바깥 화장실이 1층에, 지하에는 주인의 전용 공간인 듯한 서재와 차고가 나란히 붙어있고, 1-2층을 통째로 뚫어 시원한 공간 구성의 2층에는 바깥쪽으로 아이들 방 2개가 나란히 붙어있고, 작은 거실과 간이 부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을 열어 2층 밖으로 나가니 2층을 휘돌아 데크가 깔려있습니다. 집 안과 밖의 너른 자연이 연결된 멋진 공간입니다.

마당 앞쪽으로 우리 집 만한 넓이의 온실을 겸할 수 있는 작업실도 있습니다. 구석구석 놓여진 전통 석조형물과 현대적 감각의 건축물, 낮은 담장과 백양나무, 휘돌아 가는 연못의 물길까지 구석구석 정성들인 손길과 고민의 결과가 화려하게 펼쳐진 멋진 집입니다.

아들녀석은 넓은 마당을 구석구석 뛰어다니며,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아직 물을 채우지 않은 연못 속을 들어갔다 나왔다, 반팔 티셔츠가 덥도록 놀아줍니다.

오늘은 주민자치위원회 위원 중 한 분에게 집들이(희연재:수련을 벗하여 사는 기쁨이 있는 집) 초대를 받았습니다. 서종 마을에 들어온 지 1년쯤 되신 분인데, 북한 강변 나루터 옆의 풍광 좋은 곳에 노출콘크리트의 멋진 집을 지어 마을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오늘은 주민자치위원회 위원 중 한 분에게 집들이(희연재:수련을 벗하여 사는 기쁨이 있는 집) 초대를 받았습니다. 서종 마을에 들어온 지 1년쯤 되신 분인데, 북한 강변 나루터 옆의 풍광 좋은 곳에 노출콘크리트의 멋진 집을 지어 마을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 공순덕
집 구경하고, 맛난 음식 먹고, 반가운 이웃도 만나 신나게 수다 떨다가 의기투합, 서종면 문화의 집 사무국장인 균수네 집엘 방문하기로 즉석에서 새끼줄이 꼬였습니다. 10분 남짓이면 가는 거리. 그러나 샛길 하나가 늘어납니다. 가는 길에 나무작업 하는 공방을 잠깐 구경하고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서종에 들어온 지 1년 되었다는 공방 주인은 톱질에 한창이었는데, 예고도 없이 불쑥 방문한 낯선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줍니다. 800년이 되었다는 느티나무와 오동나무, 참죽나무 등 켜켜이 쌓아놓은 나무들을 보여주고, 50년 가까이나 되었다는 작업용 기계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줍니다.

수십 종의 끌과 다양한 공구들이 나란히 정돈되어 있는 작업실 구경을 마치니, 옆에 딸린 살림집으로 향합니다. 살림집 거실이라고 들어가니 텅 비어 넓은 공간 가운데 향나무 집성으로 만든 컴퓨터 책상이 덜렁 놓여있습니다. 얼마 전 만든 작품이랍니다.

작은 문갑과 장식장을 보고, 집주인의 스승님(이름이 생각 안 납니다)의 전시회 출품집도 보며 나무작업의 방향과 가치에 대해 설명해 주십니다. 유치원생 막내딸은 아빠가 설명하는 옆에서 "우리 아빠는 기계손, 우리 아빠는 기계손" 노래를 부릅니다. 정밀하게 작업되어 있는 작품들을 보며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전통의 우리 가구 만드는 법을 고수하면서, 가구 디자인은 현대식으로 가는 자기만의 색깔을 추구하고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싸나이의 로망'을 읊조리며 균수아빠, 규혁(똥이) 아빠는 정신없이 몰입해 갑니다. 이것 저것 구경하고도 한참을 마당에서 무슨 할 말들이 그렇게 많은지 작업 시간을 방해하면서 수다를 풀어놓습니다. 집 마당에서 키우는 순하고 멋진 그레이트 피레니즈 개 이야기까지 마치고서야 균수네 집을 향할 수 있었습니다.

균수네 집은 아빠가 직접 설계하고 ALC 블럭을 주재료로 해서 집주인이 스스로 지은 집입니다. 2층 벽돌을 쌓을 때만 전문가의 도움을 조금 받았다고 합니다. 돈이 없어 이렇게밖에 못했다고 겸손해 하십니다만, 이 집은 또 구석구석 주인의 손길이 스며있는 참으로 정성 가득한 집이었습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나무 계단, 가파른 지형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데크, 데크 울타리와 그 아래 놓여 진 벤치, 손수 만든 바퀴달린 야외 테이블과 나비장식의 사이드 받침을 가진 의자까지.

집 안으로 들어가니 부부 화가인 두 사람의 작업실엔 그림 작업과 나무작업을 위한 도구와 공구가 가득합니다.

구석구석 책꽃이와 장식장을 비치해 실용성과 집안의 인테리어 테이블을 겸했고, 대청마루를 뜯어 만들었다는 식탁에 안주인이 직접 만든 도자기 접시와 컵으로 차와 과일을 냅니다.

붉은 벽돌과 나무를 쌓아 만든 책장, 2중 유리 위에 다시 유리를 놓았다는 작은 천창, 장식용으로 쓰이는 작은 사각 타일로 바른 화장실까지, 감탄사가 절로 납니다.
가난한 화가부부가 직접 지은 집은 구석구석 수많은 이야기들을 품고는 조근 조근 이야기를 들려주는 풍성한 공간이었습니다.

양평으로 태권도 시합나간 6학년 균수형을 기다리다가 지친 아들녀석. 슬금슬금 투정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사이 바깥 풍경은 어느새 깜깜한 밤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12시 조금 넘어 이웃의 집들이 방문으로 시작된 외출이 새로운 이웃도 알게 되고, 개성 강한 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엿보는 긴 탐구와 감동으로 채워진 풍성한 하루가 되었습니다.

시간대 별로 방문지와 구경거리, 만날 사람을 정하고, 먹을 음식과 장소까지 정한 후 여행을 떠나야 직성이 풀렸던 똥이엄마는 요즘 스스로가 참으로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바쁘게, 보다 많은 것을 보고, 이것저것을 빨리빨리 해치워야 할 것 같은 조급증'이 점점 없어집니다. 아이에게 이것도 가르치고, 저것도 가르쳐 경쟁력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강박도 없습니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아득바득 해지지도 않습니다.

세상에서 한참을 떨어져 나온 것 같은 느긋함과 평화로움이 정배마을로 들어온 똥이네 집의 요즈음 삶이 되어 있습니다. 바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복잡하고 바쁜 것을 천성적으로 싫어하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연 속에 가만히 앉아있기, 도란도란 끝없이 남편과 이야기 나누기, 새롭게 알게되는 개성 강하고 멋진 이런저런 이웃들 만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떨기, 자연에서 구해지는 먹거리 이야기와 목재를 이용해 직접 만드는 가구 이야기.

그렇게 생산성과는 관계없는 이야기들로, 치열함은 찾아지지 않는 생활의 소소하고 느긋한 만남들로 휴일 하루가 갑니다. 한번 사람을 만나면 길 가던 목적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수다를 풀어대던 고향집 부모님들처럼.

산책길 나선 똥이네 집 식구 붙잡고 1시간씩 이야기 풀어놓으시는 동네 어르신들 이야기도 시간 아깝다는 생각 들지 않고 듣게 됩니다. 어르신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삶에서 우러나오는 자연과 세상에 대한 풍부한 상식을 접하게 됩니다.

철철이 나는 과실나무이야기, 개울가 수초가 홍수 때 물길의 속도를 잡아 준다는 이야기, 가로등 아래의 곡식이 열매를 맺지 않으며, 포장된 도로가의 밤나무 열매가 작아진다는 이야기, 매끈하게 예쁜 채소와 과실들 대부분은 농약을 듬뿍 뿌린 것이라는 사실, 벌레가 잔뜩 뜯어먹은 성긴 배추가 훨씬 고솝고 맛나다는 이야기 등.

가을이 깊어가는 11월 첫째 주 토요일. 똥이네 하루는 은행잎 화려히 떨어지는 정배학교 운동장에서 시작해 이런저런 이웃을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느긋함으로 채워졌습니다.

덧붙이는 글 | 똥이는 이제 9살(98년 9월 2일생, 정배분교 2학년) 되는 아들(백규혁) 녀석의 별칭입니다. 임신중 '배가 많이 부르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쌍둥이라는 낱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딸을 낳으면 '쌍이', 아들이 나오면 '똥이'라 부르기로 하고,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쌍이니, 똥이니?"하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유치원에 들어가며 놀림 당한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로 똥이라 부르지 말아 달라는 아들녀석의 부탁에 약속을 하고, 집에서만 그렇게 부르는데, 벌써 아이들이 모두 알아버려, 스트레스 받으며 다툼을 벌이곤 합니다. 엄마아빠는 재미나게 받아들이는 데 아이에게 상처가 되는 터라 조금 염려하고 있습니다. 똥이네 집 사는 이야기(www.kongba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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