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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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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라푸나네 작은 방엔 고요한 가운데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어디 보자. 깔라푸나. 어렸을 때 많이 아팠던 적 있지?"
"어머나, 맞아. 맞아. 나 어렸을 때 죽을 뻔했거든."
"음… 그리고 당신은 결혼을 두 번 할거야. 첫 번째는 꽝 인데 두 번째 남편은 잘 생겼네. 그리고 그 사람이 돈이 많데. 고생은 안 하겠다. 자식은 아들 하나에 딸 하나고."
"정말! 정말 돈이 많아?"
"어머머, 깔라푸나 남편이 돈이 많데. 잘됐다! 나도 좀 봐 줘. 나도!"

깔라푸나의 점괘에 그녀의 가족들은 홀딱 반해버렸다. 그리곤 점을 보고 있는 지니에게 앞 다퉈 손바닥을 내밀었다. 힌디, 영어, 한국어가 동시 통역돼 바삐 오가고 사람들은 쏙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건 가짜 점괘였다. 지니는 진짜로 손바닥 점을 볼 줄 알았지만 깔라푸나에게 말한 것만은 거짓말이었다.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 지니는 말했다.

"깔라푸나가 손바닥을 내미는데 너무 당황했어. 돈도 하나도 없고 다시 결혼도 못 할 거야. 잘은 모르겠지만 힘들게 살 것 같아. 그런데 그렇게 말할 수가 없더라."

깔라푸나는 학교 선생님이었다. 우리는 가끔씩 그녀의 집에서 잤다. 작은방 바닥에 이불 두 채를 깔고 깔라푸나, 그녀의 엄마와 동생, 지니, 나는 쭈르르 누웠다. 그리고 잠도 자지 않고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겨울인데도 방문이 없어 추웠던 우리는 두꺼운 이불 속에 들어가서 속닥거렸다.

"깔라푸나, 그 놈은 참 나쁜 놈이야."

결혼한 지 얼마 안돼 그녀는 임신을 했었다. 그런데 남편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막무가내로 우겼다고 한다. 물론 그는 자신의 아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억지로 이혼을 강요하기 위해서였다. 그에겐 다른 애인이 있었다고 한다. 어이없이 이혼을 당한 깔라푸나는 친정 집으로 쫓겨나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그 놈은 나쁜 놈이야. 하지만 어쩌겠어. 내가 이 애를 잘 키울 거야."

그녀는 아주 예쁘게 생긴 이제 막 21살이 된 젊은 여자였다. 그녀를 걱정하며 또 아이의 운명을 걱정하며 주위에서 모두 아이를 지우라고 했다. 하지만 깔라푸나는 기어이 아이를 낳았다. 그녀가 품에 안고 있는 그 아이는 여자아이였다. 이혼한 여자의 딸. 인도에서만큼은 너무나 좋지 않은 조건이었다. 그 아이를 보면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게 있어."

깔라푸나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깔라푸나는 목숨을 잃지 않았잖아. 인도에선 이런 경우에 시부모가 며느리를 불태워 죽이기도 하거든. 그러니 깔라푸나가 죽지 않고 살아서 온 것만도 감사하고 있어."

깔라푸나의 아버지는 선생님이셨다. 그래서 시부모들이 그녀의 집안을 얕보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그녀가 웃을 수 있기를

ⓒ 왕소희
고운 사리(인도 여자 전통옷)를 차려 입고 학교로 오는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우아한 미소는 그녀를 늘 당당해 보이게 했다. 한 번은 지역방송에서 촬영을 하러 온다고 했다. 마을의 음악쇼와 학교를 취재하는 거였는데 학교 대표로 깔라푸나가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카메라가 오기 전까지 그녀는 인터뷰 연습을 했다.

"음, 음. 저는 학교가 처음 세워질 당시 무보수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검은 눈동자가 빛나는 그녀의 얼굴 어디에도 그늘이 없어 보였다.

"학교에 칠판이 없어서 칠판 대용으로 쓸 검은색 페인트를 벽에 칠하는 게 첫 일이었습니다"”
"선생님, 학생 할 거 없이 모두들 함께 일했어요. 청소를 하고 학생들이 마실 물이 담긴 물 항아리를 나르고요."

그녀의 당당한 모습은 인생의 모든 가혹함을 이겨낸 듯 했다.

ⓒ 왕소희
오후가 되자 깔라푸나의 동생이 아기를 안고 학교로 왔다. 젖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늘 학교 옆 할머니 집에 들어가 젖을 먹였다. 쥐가 찍찍거리며 돌아다니는 그 할머니네 집은 거의 창고 같았다. 어두운 곳에 앉아 아기에게 젖을 먹이던 깔라푸나가 말했다.

"참, 이번 주에 어떤 남자가 올 거야."
"남자? 누구?”
"응… 어릴 때부터 날 좋아했던 사람인데…."

어릴 때부터 그녀를 좋아했다는 남자는 그녀의 이혼 소식을 듣고 다시 그녀를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결혼할 때 복잡한 계산이 따르는 인도에서 깔라푸나의 재혼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어둠 속에 바라 본 그녀의 눈가에 얼핏 슬픔이 서린 듯 보였다.

사실 그녀는 아직도 결혼한 여자의 차림으로 다니고 있었다. 남편이 결혼의 표시로 걸어준 목걸이와 발찌를 하고 가르마 위엔 빨간색 물감을 찍었다. 그걸 보면 누구나 그녀가 결혼한 여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게 그녀에겐 살아가기 편한 방식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녀가 행복했으면. 그래서 우리의 손바닥 점괘가 다 맞았다며 하하 웃을 수 있기를.

ⓒ 왕소희

덧붙이는 글 | 미디어 다음, 행복닷컴에 함께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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