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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산의 형상화하였다고 하는 불국사 범영루의 석축
수미산의 형상화하였다고 하는 불국사 범영루의 석축 ⓒ 김성후
보통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하늘과 땅 위 그리고 지하세계까지 연결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세계의 중심이 되는 산을 수미산(須彌山)이라 부릅니다. 수미산의 사방으로 4주(州)가 있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남쪽에 자리 잡은 염부제(閻浮提)라는 곳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과거와 현재에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저지른 행위의 결과로 윤회를 하며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됩니다. 새로운 존재란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사람, 하늘에서 태어나는 것으로 6가지의 모습이라 이를 일러 육도윤회라고 합니다.

불에 타고 얼음에 어는 지옥의 모습을 그린 보림사 명부전의 지옥도벽화
불에 타고 얼음에 어는 지옥의 모습을 그린 보림사 명부전의 지옥도벽화 ⓒ 김성후
지옥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수미산의 바깥에 철위산(鐵圍山)이 있는데 그 철위산 밖에 또 하나의 철위산이 있다고 합니다. 이 두개의 산 사이에 8개의 큰 지옥이 있습니다. 살아있을 때 아주 나쁜 행동을 많이 저지른 사람이 지옥에 태어나는데 이곳은 몸이 불에 타고, 얼음에 얼고, 칼이나 톱으로 몸을 자르고 찢는 등 온갖 고통이 가득한 세상이라고 합니다.

아귀는 사람이 사는 염부제에도 살고 염부제 아래 아주 깊은 곳에서도 사는데, 살아있을 때 질투하고 나쁜 마음으로 10가지 나쁜 행동을 일삼아 아귀로 태어납니다. 아귀는 몸은 산처럼 크고 입은 바늘구멍만하여 늘 굶주린 존재라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아귀는 몸이 가마솥만하거나, 입이 바늘구멍만하거나, 토한 것을 먹거나, 똥을 먹거나, 피를 먹는 등 36가지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축생으로는 벌레나 곤충, 물속에서 살아가는 짐승, 하늘을 나는 짐승, 땅 위에 사는 짐승 등이 있습니다. 해치지 않는 짐승이 있는가 하면 남을 잡아먹는 짐승이 있기도 합니다. 사람이 다양한 종류의 축생으로 태어나는 이유는 잘못된 견해로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거나, 노력하지 않고 재물을 탐하거나, 아무런 이익도 없는 논쟁을 펼치거나, 잘못된 제사를 받들어 모시는 등의 행동의 결과에 의한 것입니다.

수라는 아수라의 줄임말인데 두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귀신의 무리로 악마의 형상으로 신통한 힘을 가진 부류이며 다른 하나는 축생의 무리로 큰 바다 밑 수미산 곁에 산다고 합니다. 우리가 보통 수라라고 하면 제석천과 그 권속인 사천왕과 싸우고자 하는 전쟁을 좋아하는 악마의 무리를 말합니다.

사람은 우리 이야기니 설명을 하지 않고 하늘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불교의 하늘는 특이하게 1개의 하늘이 아닌 아주 많은 하늘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불교는 이 세계는 욕계․색계․무색계(欲界․色界․無色界)라고 하는 3개의 세계가 있는데 이 안에 28개나 되는 하늘이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사람은 욕계(欲界)에 사는 존재인지라 착한 일을 많이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욕계 중의 하늘 또는 색계나 무색계에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하늘 중 답사를 하는 사람들이 욕계(欲界)의 사천왕천(四天王天), 도리천(忉利天), 도솔천(兜率天) 그리고 색계(色界)의 범천(梵天) 정도는 자주 접하게 되므로 알아두시면 좋을 듯합니다.

사천왕천은 절에 들어갈 때 거의 만나게 되는 사천왕이 다스리는 하늘나라입니다. 그 위로 도리천이 있는데 여기는 제석천이라는 신이 다스리는 하늘나라입니다. 더 위로 올라가면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석가모니가 마야부인의 뱃속으로 내려오기 전에 수행을 한 하늘나라이었으며, 장차 부처가 될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하늘나라입니다. 마지막으로 범천은 색계에 있는데 힌두교에서 모든 중생의 창조주였던 범천왕이 다스리는 하늘나라입니다. 제석천과 범천은 힌두교의 신을 불교에서 수용한 결과로 부처의 오른쪽과 왼쪽에서 호위하고 있다고 합니다.

불교 우주관에서 말하는 수미산은 보편적인 종교에서 가지는 우주의 중심이 되는 산을 상징하며, 이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이 있고 땅 밑으로 내려가고 또 하늘로 올라가는 수직적인 구조입니다. 물론 수미산 밖으로 바다와 산이 겹겹이 이어지는 수평적인 공간도 있습니다만 절의 공간구조와 비교하여 볼 때 우리는 수직적인 공간구조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공간의 가치와 공간의 이동

똑같은 크기와 똑같은 넓이의 공간이라도 그 가치는 엄청나게 차이가 많이 납니다. 쉽게 땅이라는 공간의 가치를 돈으로 헤아려 보도록 하죠. 이 방법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해하기는 쉬울 겁니다. 서울의 중심지에 있는 땅 1㎡는 수억 원까지 나가는 곳이 있는가 하면 지방의 심심산골의 땅 1㎡는 수백 원도 하지 않기에 당연히 그 가치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한편 공간은 재산적인 가치 이외에도 다른 의미에 의해 그 가치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내가 태어난 곳, 내가 처음으로 데이트한 곳 등 나에게만 색다른 의미가 남아있는 장소라면 그 공간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종교적인 신념 즉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의 신앙과 관련이 있는 공간이라면 높은 가치를 지닐 것 또한 자명한 일입니다.

절이라는 공간은 아시다시피 불교를 믿는 사람에겐 부처가 계시는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닌 곳입니다. 중요한 만큼 아무나 쉽게 들어올 수 없는 상징적인 장치를 해두었는데 그것이 바로 문(門)입니다. 문은 단절된 공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공간이 단절된 경우를 보면 강이나 산 등으로 가로막힌 자연적인 경우가 있으며, 담이나 벽을 쌓은 인위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강은 다리나 배로 건너가야 하며, 산은 고갯마루를 지나야 하며, 담으로 둘러싼 공간은 문을 지나야 합니다.

경계를 나타내기 위해 일부러 얕게 쌓은 천은사 일주문과 헛담
경계를 나타내기 위해 일부러 얕게 쌓은 천은사 일주문과 헛담 ⓒ 김성후
절에 들어가려고 할 때 처음 만나는 일주문 옆으로 담이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실제 담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문 좌우로 보이진 않지만 상징적인 담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후로 만나는 천왕문이나 해탈문 등도 당연히 그 옆으로 담이 있어 이쪽과 저쪽이라는 공간을 구분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함부로 부처님께서 계신 절 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니까요.

절이 많은 문을 지나야 할 정도로 가치가 높은 공간이라면 절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의 가치 또한 높아져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은 스스로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요? 절에 놓인 각각의 문을 지날 때마다 절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나쁜 마음을 먹거나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고, 세속의 때를 벗고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즉, 절 안으로 이어지는 많은 문 앞에서 나쁜 마음이나 행동을 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를 조금 어렵게 이야기하면 통과의례(通過儀禮)라고 하는데 세속적인 나의 존재는 죽이고 난 다음 성스러운 존재로 다시 새롭게 태어남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나쁜 모습을 가진 것을 죽이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거듭함으로써 성스러운 공간에 적합한 인물로 다시 태어나며 마지막엔 부처의 세계까지 들어갈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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