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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쉬즘> 표지
<마광쉬즘> 표지 ⓒ 인물과 사상사
문고리 당기기 1992년 10월 29일.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마광수 교수는 그의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가 외설이라는 이유로 전격 구속,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그해 12월 28일, 그는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다음 해 그는 직위해제 되었으며 1995년, 대법원 상고심에서 상고 기각 후 해직되고 시간강사로 남게 되었다. 질곡의 늪 속에서 모진 고통을 감내하던 1998년에 이르러서야 그는 사면복권 되고 연세대학교에 복직했다.

그러나 그는 동료 교수들의 집단 출척(공격적 따돌림)에 충격을 받아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으며 휴직하고 만다. 다시 복직했지만, 여전히 이 사회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는 그가 오랜 숨고르기 끝에 다시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9월 28일, 자신의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낸 아포리즘 묶음 <마광쉬즘>을 펴낸 그는 세상을 향해 이중성을 버리고 솔직해지라며 일갈한다.

그는 일관되게 '야(野)한 정신'을 주장한다. 정신보다는 육체, 과거보다는 미래, 국수주의보다는 세계적 보편성, 집단보다는 개인, 질서보다는 자유, 관념보다는 감성, 명분보다는 실리, 획일적 교조주의보다는 자유분방한 다원주의를 추구하며 가치를 두는 세계관이다. 이런 그의 사상을 제자들은 '마광쉬즘'이라 일컬었다.

지난 1995년에는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의 진상과 재판과정, 마광수의 문학세계 분석을 묶어 연세대 국문학과 학생회 이름으로 <마광수는 옳다>를 제자들이 펴냈다. 이 글 제목 '마광수는 여전히 옳다'는 거기서 차용한 것이다. 이 글은 서평이지만, 한편 서평이 아니다. '세상을 향한 그의 솔직한 시각에 온전히 동조하는 이'로서 지난 27일 마광수 교수와 나눈 대담과 <마광쉬즘> 내용을 여과 없이 뭉뚱그려 낸 글일 뿐이다.

제가 이상한가요? 우리 사회가 이상한 거 아니고?

마광수(55) 교수
마광수(55) 교수 ⓒ 이동환
- 지난 세월이 지긋지긋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쯤해서 적당히 시류와 타협하고 살면 존경(?)과 명예도 얻을 텐데 편하지 않을까요?
"태생이 반골입니다. 이제 와서 변하면 마광수가 아니지요. 90년대 이후, 내 삶이 고통뿐이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우리 사회가 '이상한 사회'인 탓이지요.

사실, 우리 사회처럼 곳마다 매춘이 은밀히 허용되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룸살롱이다, 단란주점이다, 노래빠다, 무슨 성인PC방이다, 대딸방이다, 심지어 주택가까지…. 낮에는 온갖 점잖은 척 하다가 밤이면 남모르게 끼리끼리 묵인하는 음란한 행위들은 괜찮고, 드러내 상상하고 표현하면 안 된다니 어이없을 뿐입니다."

- 말씀하신 부분에 동의합니다. 우리 사회 도덕적 잣대의 이중성에 대해 저는 그 부조리한 원인이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썩은 정치 전통과 관계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갖은 도덕적 규율로 체면치레에만 신경 썼지, 밤이면 기생집(고급 룸살롱)에 붕당끼리 모여 상대 파당 죽이기 아이디어나 짜다가 기생들 불러들여 충성주와 하사주에 성상납까지…. 오늘날 정치판이 그 판박이요, 일반 성인사회까지 그런 문화(?)가 뿌리내린 것 아니냐 하는 의문이지요.
"그래서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잖아요. '도덕성'을 외치지 말고 '솔직성'을 회복하라. 타인의 표현자유를 억압하지 말고 자신의 이중성을 돌아보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는 게 아니라 자유가 너희를 진리에 이르게 하리라. 뭐, 말장난 같지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권력의 대물림이나 패거리주의, 그런 것들의 뿌리가 워낙 견고해서 사실 우리나라는 현재도 그렇지만 미래도 당분간은 불투명합니다."

<마광쉬즘> 책 속으로 잠깐 들어가기 "한국에는 유미주의(또는 탐미주의)의 역사가 없다. 김동인이 <광염 소나타> 등의 작품에서 유미주의를 시도했지만 나이를 먹은 뒤 곧바로 역사소설로 돌아섰다. 요즘 작가들도 똑같다. 50만 넘어도 '변절'을 해 역사소설, 민족대하소설 같은 쪽으로 돌아선다. 한심한 일이다. 유미주의가 없는 문화란 겉껍데기 '이데올로기'에의 복종일 뿐이다(중략).

박정희에 대한 추모 열기는 박근혜에 대한 지지 열기로 계승된다. 이것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권력의 대물림'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이다. 정치적 마조히즘이라 볼 수 있다. 친일파의 자손들은 다 출세하였고,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은 다 굶어죽었다. 권력의 대물림 현상은 학계에서도 발견된다. '보스'에 대한 충성과 아첨 없이는 교수되기가 힘들다.

나는 1979년 28세의 나이로 홍익대 교수가 되었는데, 공정한 공개채용 절차에 의해서였다. 그래서 교수가 된 다음에도 나 혼자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1984년에 연세대학교에 갈 때도 첫 공채에 응모하여 들어갔다. 그때 국문과 교수들 중에는 내가 들어오는 것을 꺼리는 교수가 더 많았다. 연세대에 들어가서도 나는 아첨과 충성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1989년 1월에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출간했을 때, 국문학과 선배 교수들이 한데 뭉쳐 나를 '인민재판'하고, 다음 학기 강의권을 박탈하는 초법적 횡포를 저지른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미운 털'이 박혀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모든 처신을 내 마음대로 했기 때문이었다. 문단에도 '문학 권력'이 있고 학계에도 '학문 권력'이 있다. 학문 권력의 경우, 공부는 하지 않고 학교 내의 감투(보직)만 좇아도 그가 나이를 먹으면 '학계의 원로'로 대접받을 수 있다. 또 '학술원' 회원이 될 수도 있다. 왜냐고? 학교 안에서 권력을 잡으면 그만큼 부하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권력…, 권력…, 권력이란 무엇인가? 죽고 나면 뜬구름이 되는 게 권력 아닌가? 죽고 나면 문인은 작품만 남고, 학자는 논문만 남는다. 우리나라는 문단이든 학계든, 조폭집단과 다를 게 없다."

모난 돌은 좋은 돌이다

마광수 교수 서재. 꽤 큰 공간임에도 정리정돈이 깔끔하다 못해 윤이 난다. 한강 쪽으로 난 너른 창을 통해 아침 햇살이 가득 넘쳐들었다. 그의 사색 공간인 서재만큼은 외모와 달리 결코 섬약하지 않았다.
마광수 교수 서재. 꽤 큰 공간임에도 정리정돈이 깔끔하다 못해 윤이 난다. 한강 쪽으로 난 너른 창을 통해 아침 햇살이 가득 넘쳐들었다. 그의 사색 공간인 서재만큼은 외모와 달리 결코 섬약하지 않았다. ⓒ 이동환
- 어제 동료강사 상갓집에서 한 후배가 그러더군요. 괜히 마광수 교수 편드는 기사 썼다가 선배님까지 이상하게 몰리는 거 아니냐고 말이죠. 웃었습니다만, 편 어쩌고 하는 말이 왠지 뒤가 개운치 않더군요.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이분법적 편 가르기와 그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한 것 같아 쓸쓸했고요.
"늘 그런 식이죠. <즐거운 사라> 재판 때 제 쪽 증인으로 K대 M교수가 나왔는데 당시 그 대학 총장이 그러더래요. 나가지 말라고, 마광수랑 똑 같은 사람 된다고…(웃음). 더 기가 막힌 건 검찰 쪽 감정인으로 나왔던 S대 L교수가 펄펄 뛰더군요. 작품 속에서 사라가 끝까지 반성(프리섹스에 대해)을 안 한다고요. 문학박사라는 사람이 그 정도니 우리네 문단이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모난 돌은 무조건 나쁘다 이거죠."

- 그래도 그 때(1992년)보다는 교수님 바라보는 시각이라든가 사회 상황이라든가 지금이 훨씬 좋아지지 않았나요?
"아닙니다(단호하게)! 똘레랑스가 없는 사회, 여전합니다. 세상은 저만치 앞서 가고 있는데 정치나 학계 쪽은 아직도 수구(守舊) 그대롭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기득권 지키기 뿐이지요.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모 국회의원이 검찰총장에게 질문이랍시고 대뜸 이럽디다. 경고 받은 자들, 이를테면 마광수 같은 사람 왜 잡아들이지 않느냐고 말이죠. 검찰총장 대답이 걸작입디다. '검토해보겠습니다'라고요."

- '변절'이라는 단어를 놓고 말씀 나눴으면 합니다. 어쨌거나 세상은 변했고 예전보다는 분명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을 추종하는 제자들이 꽤 될 텐데, 왜 교수님보다 더 야한 소설가가 안 나올까요?
"저도 그게 의문이에요. 아마…, 세상 따라 변하는 게 아닐까요? 20대 때에는 정말 열정과 순수만으로 대들던 친구들도 30대가 넘어가고 40대가 되면 전부 수구 쪽으로 돌아선다 이 말이지요.

이해는 해요.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으니까요. 또 모난 돌로 살아온 저를 보더라도 고개가 외로 돌겠지요. 변하지 않는 제가 오히려 이상한 거죠. 오죽하면 제가 윤동주에 대해 너무 일찍 죽었기 때문에 변절할 시간이나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겠습니까? 이완용이도 처음에는 독립협회 회원이었거든? 지금 서대문 독립문에 걸린 글씨가 이완용이 쓴 거예요. 특히 제가 문학을 하니까 하는 얘긴데, 문단에 줏대 없이 시류만 좇은 변절자들이 수두룩하지요.

한국서정시의 대부로 추앙받고 있는 시인이 5공 때 쓴 '전두환 예찬시' 보세요.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중략).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임에게로 오시나이다'라는, 단군 이래 가장 아름다운 시어(?)를 남길 정도니 말 다했지요. 문단의 원로라는 사람들 가운데 솔직히, 아닌 사람이 누굴까 고민스러울 정도입니다."

- 마지막으로, 바라고 계신 게 있나요?
"바랄 게 뭐 있나요? 다만, 11월 말이면 제 소설 <유혹>이 나오는데 당장 그게 걱정이에요. 또 음란이니 뭐니, 난리 날 게 빤하거든요. 우리 사회가 솔직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게 바람이라면 바람일까요? 물론 희망은 없어 보이지만…."

문 닫고 나오기 <마광쉬즘>은, 마광수 책이라면 고개부터 젓고 보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물론 그의 장기, 섬뜩할 정도의 성(性)적 담론이 주류지만 정치계, 종교계, 학계를 바라보는 올곧은 시각과 그가 아니면 도저히 던질 수 없는 화두로 가득하다. 성적 담론마저 깊이 들어가 보면 그가 음란해서가 아니라 넘치도록 솔직해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상이 온통 잘 난 사람으로 넘쳐난다. 온갖 이슈와 무슨 정신으로 곳마다 물마 천지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왠지 불안할 정도다. 아니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부터, 내 주변 모두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 오직 한 사람, 내가 알고 있는 한, 마광수는 오롯이 혼자다. 그는 오늘도 서재에서 그의 말마따나 '육체적으로 차츰 낡아가고 있는 중이므로(중략), 시나 소설 같은 작품을 통하여 솔직한 대리배설을 시도'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마광쉬즘> 인물과 사상사(값 9800원)
바로가기 클릭 ☞ 마광수 교수 사이버 홈

기사후기 

지난 10월 27일(금), 마광수 교수와 인터뷰하기 위해 나는 전날 한잠도 잘 수 없었다. 동료강사 부친상을 챙겨야 했으므로 새벽 5시에 귀가해 옷만 갈아입고 부랴부랴 동부이촌동 마 교수 댁으로 향했다. 7시 30분쯤, 언저리 목욕탕에서 잠깐 쉬기로 했다. 휴대전화 알람을 9시 30분에 맞춰놓고 오전 10시 약속시각을 지키려했는데 너무 깊이 잠들고 말았다. 깨어 보니 10시 30분. 당황한 나는 문자 메시지로, ‘의왕시에서 출발하느라 좀 늦는다’고 거짓말을 했다(차가 막힌다는 암시). 바로 전화가 왔다.

“걱정 말고 천천히 오세요. 저, 시간 많아요(웃음).”

이 면을 빌어, 단아한 가을단풍처럼 편하게 대해주신 마광수 교수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 올린다. 아울러 빤한 거짓말까지 해서 죄송하다는 말씀도….


마광쉬즘 - 마광수 아포리즘

마광수 지음, 인물과사상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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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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