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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장애인들의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04년부터 진행해오던 '장애인영업장소 지원사업(아래 영업장소지원사업)'이 160억원을 들여 건물을 매입하고도 2년여간 활용방안을 찾지 못해 결국 재매각 하기로 결정돼 장애인 창업지원 사업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16일 노동부(장관 이상수)와 25일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사장 박은수, 이하 장애인공단)의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배일도 의원의 제기로 밝혀졌다.

배 의원은 "대통령의 즉흥적인 지시 사항에 근거하여 복권기금에서 200억을 받아 추진된 이 사업은 천호동 소재 건물과 대지를 157억에 구입하였으나, 사업 한번 못하고 건물을 구입당시 그대로 방치하다 2006년 9월11일 다시 매각추진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160억 건물매입 후 2년간 방치 후 매각절차 진행

▲ 매입 후 2년간 방치하다가 재 매각하는 천호동 소재 건물
ⓒ 위드뉴스
배 의원은 "이 과정에서 연구용역비, 건물 관리비, 회의비, 감정평가료, 부동산 중개 수수료 등으로 약 4억이 넘는 예산을 낭비했고, 기존에 진행되고 있던 '장애인영업장소 전대지원' 사업에 배정된 2006년도 예산도 동 사업을 전제로 10억이 축소되어 결국 장애인들에게 피해만 가중시켰다"고 밝혔다.

영업장소 지원사업은 지난 2004년 2월 23일 청와대에서 제6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대회 수상자들을 초청해 오찬을 갖던 중 노무현 대통령이 장애인의 애로사항을 물었고 참석 장애인들이 "기능올림픽에서 수상을 해도 취업이 어렵고 담보부족 등으로 융자를 받을 수 없어 창업이 어려우니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됐다.

장애인들의 애로사항을 들은 노 대통령은 즉석에서 배석한 당시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신필균 이사장(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에게 "공단에서 건물을 하나 마련하여 장애인이 창업할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고 이 지시에 의해 본격적인 장애인영업장소 지원사업이 시작되었다.

재원마련은 같은 해 4월 노동부를 포함한 정부부처의 합의에 따라 국무총리산하 복권위원회의 복권기금 중 2004년 200억, 2005년 100억을 지원하는 것으로 확정했다. 재원 마련이 확정되자 노동부는 장애인공단에 추진단을 구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구체적인 사업진행을 위해 추진단은 장애인단체 전문가들의 의견수렴과정과 창업컨설팅 업체 등의 의견을 수렴했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단체 전문가들은 단일 집합건물이 아닌 장애인들이 희망하는 상권이 형성된 지역에서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요구했다.

추진단은 이러한 요구사항을 바탕으로 토론회와 장애인공단 직원 의견수렴, 장애인 창업관련 실무자 간담회 등 각종 여론 청취 결과를 토대로 2004년 8월 30일 최종적으로 '창업 희망 장애인이 제시하는 영업장소(개별상가)'를 공단에서 매입하여 지원하는 방안으로 결론을 내렸다.

정부, 의도적 '대형 단일 집합건물' 매입

사업계획을 결정한 추진단은 2004년 11월부터 본격적인 건물 매입 작업에 돌입했다. 건물매입은 대한공인중개사 협회, 전국부동산중개업 협회 등의 추천을 받아 같은 해 11월 26일 영업장소 선정 심사회의를 개최하고 장애인계 2명, 컨설팅계 3명, 공공기관 3명, 정부 1명 등 9명의 선정위원들이 서울과 대구지역의 건물 4곳을 매입하기로 하고 본격적인 현장실사 작업을 진행했다.

이런 와중에 같은 해 12월 2일 갑자기 알이인터페이스(주)가 서울시 강동구 천호동 소재 대지 591평, 지하 2층 지상6층의 건물을 160억에 추가 접수하자, 8일 2차 선정위원회를 개최하고 결국 천호동 건물을 매입하는 것으로 확정하고 급히 매입 절차를 밟았다.

배 의원은 천호동 건물 매입과 관련 "노동부와 추진단이 원칙에 벗어난 매입으로 장애인 영업장소 지원사업이 물거품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장애인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인 '전국적으로 장애인들이 제시하는 상권지역'의 건물 매입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의견수렴을 무시한 채 대형 단일 집합건물로 결정이 났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외곽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의 대형 건물에 장애인들이 집단적으로 사업장을 차린다면 현실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선정회의서 '대형 유통업체 지원설 유포'

▲ 2년간 방치된 건물 앞에는 노점상들이 자리하고 장사를 하고 있다.
ⓒ 위드뉴스
이러한 입지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선정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당시 선정위원으로 참석했던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선정회의에서 "단일 집합건물이 아닌 장애인들이 원하는 지역의 소규모 건물을 매입할 것을 강하게 주장했다"고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2차 선정위원회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이미 추진단이 특정 건물을 마음에 두고 그 방향으로 몰아간 것 같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추진단 관계자가 2차 선정회의에서 "대형 집합건물을 매입해도 전문 유통회사인 이랜드그룹이 운영에 대한 노하우를 제공할 것이며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70점 이상을 주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이랜드그룹과는 해당 건물의 운영과 관련한 논의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배 의원은 당시 해당 건물은 부동산 담보 설정은 물론이고 소송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추진단이 선정위원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사전에 알리지 않고 선정을 강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업장소 지원사업은 건물 매입 이후 난관에 부딪친다. 장애인공단은 건물 매입 직후 실무 TF 구성과 함께 7명의 전담팀을 꾸린다. 건물 리모델링 및 내부 인테리어 비용으로 우선 사용할 수 있도록 복권위원회에 2005년도에 배정된 100억원을 요청하고 '천호동 집합 건물 위탁운영 사업자 선정' 작업을 추진한다.

그러나 복권위원회가 100억원의 예산 요청에 대해 "사업 실효성이 떨어지므로 사업 전체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해 보고 그 결과에 따라 예산 집행을 한다"고 결정함에 따라 장애인공단은 내부인테리어와 리모델링 컨설팅 용역계약을 유보한다.

장애인공단은 위탁운영과 관련해 2005년 5월부터 이랜드그룹 등 전문 유통회사들과 수차례 협의를 시도했으나 해당 업체들의 거부로 좌절을 맛본다. 이후 영업장소 지원사업에 대해 남서울대학 산학협력단에 6천만원 금액의 연구용역을 수의계약으로 진행하고 그동안 비공개로 진행하던 위탁운영사업자 선정을 신문 광고를 통해 공모했다.

공모와 함께 (주)롯데마트, 농협하나로마트, (주)까르푸 등 16개 유통전문회사에 사업자 모집안내 및 사업설명회 참석요청 공문을 발송했으나 2005년 7월 19일 설명회에는 (주)세이프건설 1곳만이 참가했고 신청업체는 단 한 곳도 없었다.

2년간 표류 끝 '사업 포기'

▲ 2년간 방치로 인해 건물은 흉물스럽게 주변환경까지 오염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위드뉴스
위탁운영사업자 선정 실패로 표류하던 영업장소 지원사업은 2005년 12월 15일 고용촉진위원회를 통해 최종적으로 장애인영업장소 지원사업을 중단하기로 하고 장애인계의 반발을 우려해 사업추진 지연에 대한 유감 표명과 대체사업(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이 후 천호동 건물은 근 1년여간 흉물스럽게 방치되다가 지난 9월 11일 국정감사를 앞두고 매각공고를 게재했고 10월 16일 유찰되었다. 현재 해당 건물은 30일까지 전자입찰이 추진중에 있다.

입찰과 관련 해당 건물 인근의 부동산 관계자들은 노동부가 제시한 230여억의 감정평가액으로는 계속적으로 유찰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고 있다. 그 이유는 해당건물 인근에 대형백화점과 대형유통업체 2곳이 영업을 하거나 들어서기 위해 공사를 진행하고 있어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해당 건물 앞에서는 노점상들이 건물 앞 전체를 차지하고 장사를 하고 있다.

장애인영업장소 지원사업에 투입된 예산 가운데 건물의 매각대금은 매각이 이루어질 경우 다시 복권위원회로 귀속될 예정이다. 노동부와 장애인공단은 다른 대체사업을 원하고 있지만 200억의 예산을 투입해 진행하던 사업이 2년간 표류하다가 무산된 것으로 볼 때 재투자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를 놀라게 한 장애인 기능인들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장애인 창업. 이 꿈을 이루기 위해 300억의 예산을 들여 진행하던 장애인영업장소 지원사업이 정부당국과 관련 종사자들의 무성의한 정책집행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기술력을 가지고 당당하게 비장애인과 겨뤄보겠다는 야심찬 기대는 2년의 진통 끝에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http://withnews.com)'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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