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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 콩 두드리는 모습
마당에서 콩 두드리는 모습 ⓒ 김현
"할머니, 뭐해요?"
"어이구. 우리 손주 새끼들 왔구나. 어서 오거라."

마당에서 콩타작을 하다 말고 장모님이 일어나며 아이들을 맞이한다. 주말마다 오는 처남은 안 왔는지 장모님 혼자 콩을 두드리며 털고 있었다.

"혼자 하세요? 이 많은 걸."
"그럼 혼자 하지 누가 있던가. 얼른 자네도 와서 하소. 혼자 할랑게 심심하고 팍팍하구만."

옷을 갈아입고 막대기를 들고 콩을 두드리는데 재미있어 보였는지 아이들이 자기들도 하겠다며 달려든다. 먼지 나니까 다른 데서 놀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달려들더니 막대기 하나씩을 집어 든다. 아들녀석은 아예 장화까지 신고 달려든다.

"할머니, 그냥 막 때리면 되는 거예요?"
"막 때리면 콩이 다 튀어나가니까 적당히 때려야 해. 근데 너희들이 때릴 힘은 있나 모르겠구나."
"에이 할머니도 우릴 무시해요. 우리 누나랑 나 힘 얼마나 세다구요. 한 번 보실래요?"

그러더니 콩대를 한줌 모아놓고 때리기 시작한다. 할머니의 힘없다는 말에 아들 녀석이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나 보았다. 그런 외손자를 바라보고 장모님이 껄껄 웃으신다. 그러면서 너무 세게 때리지 말라고 한다.

딸아이도 아들 녀석과 함께 콩대를 두드리다가 갑자기 "콩 너는 죽었다"하며 저만치 밖으로 튀어나간 콩을 주우러 간다. 그런데 딸아이의 '콩 너는 죽었다'는 말에 할머니가 한 마디 한다.

"녀석아, 콩을 죽이긴 왜 죽여? 콩이 먼 메뚜기라도 되냐? 죽이게.
"참 할머니도, 이거 시예요 시이..."

"시가 뭐다냐."
"시가 뭐긴요. 동시지 동시."

"애기들이 쓴 걸 말하는 거냐. 근데 시에 콩이 왜 나와?"
"몰라요. 교과서에서 배웠어요."

얘들도 제법 한 몫 합니다.
얘들도 제법 한 몫 합니다. ⓒ 김현
딸아이와 장모님의 말을 듣고 있던 아내가 둘의 대화가 재미있다며 깔깔거리며 웃는다. 옆에서 콩을 두드리고 있던 나도 웃음이 난다. 다만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아들 녀석만 눈을 깜박거리며 쳐다보고 있다가 동시란 말을 알아듣고 덩달아 따라 웃는다.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은 장모님은 한글을 잘 모른다. 거기에 평생 농사만 지으며 사신 분이니 시니 소설이니 하는 말들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딸아이가 갑자기 콩을 주우러 가며 '콩 너는 죽었다'고 하며 시니 뭐니 하니 알아듣지 못 할만 했다. 그런데 장모님이 딸아이한테 그 시를 읊어보라고 한다.

"예지야. 너 거 머시냐. 콩인가 뭔가 죽었다는 거 한 번 들려줘 보그라. 할미 한 번 들어보게."
"할머니, 나 다 모르는데…."

"괜찮아 야. 모르면 니 아빠가 알려줄 게 아니냐. 선생이니께 알것지 뭐."
"그래. 한 번 해봐. 아빠가 너 알려줄 거야."

아내까지 나를 끓여 들여 딸아이에게 시를 읊도록 재촉하자 "웃으면 안 돼. 알았지?"하더니 시를 읊는다. 그런데 잘 모른다고 하더니 장난기까지 섞어가며 시를 읊는다. 한 손으론 콩을 두드려가면서 말이다.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콩, 너는 죽었다." - 김용택


딸아이가 마지막에 '콩, 너는 죽었다'를 읊으며 주먹을 불끈 쥐자 콩타작 마당은 이내 웃음 바다가 된다. 그런데 시를 듣고 있던 할머니의 말이 더 걸작이다.

"콩이 쥐구녕에 들어갔으니 죽긴 죽겠구나."

요즘 농촌은 벼 베기나 콩타작 같은 가을일로 정신이 없다. 하루의 노동을 하다 보면 육신은 물먹은 솜처럼 축축 늘어지고 피곤하다. 홀로 농사를 짓고 계시는 장모님도 하루 일과를 대충 마치면 끙끙 앓으며 주무신다. 그런 장모님에게 딸아이의 웃음 주는 시 읽기가 잠시나마 피곤함을 풀어주었으면 싶다.

마당에 가득 쌓인 콩
마당에 가득 쌓인 콩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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