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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5시, 본인이 소속된 모임에 속한 한 노총각의 결혼식이 열렸다. 식후 동료들과 간단한 술자리도 마련했다. "자기야 오늘은 일찍 들어와야 된다. 내일 오세암 가려면 술도 적당히 마시고." 이렇게 시작된 잔소리 전화는 계속 이어졌으나 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경.

대충 씻고 잠을 청해야만 22일 새벽 2시에 일어나 오세암 가는 버스에 오를 수 있다. 새벽 2시, 아내가 깨우는 소리에 거리로 나섰다. 친구들과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오는 경우는 많았지만, 어떤 목적 아래 새벽에 움직인 적은 별로 없었다.

새벽 3시에 대구를 출발한 버스는 어둠을 헤치고 설악산으로 쏜살같이 달린다. 많은 사람들이 잠을 청해보지만 오세암에 대한 기대감으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서너 번 휴게소에 들러 휴식을 취한 후, 오전 8시경 도착한 내설악의 인제군 용대리. 작년 이맘 때 한번 다녀온 용대리는 새벽안개와 더불어 우리를 반겨주었다.

직장생활, 자영업을 주로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종교 단체에 속한 아내의 모임은 매년 이런 식으로 여행한다. 일요일 새벽 일찍 출발해서 밤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무박 2일의 아주 전투적인 여행을 한다. 물론 목적은 성지순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의 유일한 특권이 아닐까 싶다. 믿음 없이 이렇게 무리한 여행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돈을 준다고 해도.

▲ 백담사 계곡 앞 돌탑(위) 백담사 전경(아래)
ⓒ 임석교
미리 준비한 아침식사를 하고 백담사까지 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얼마 전부터 문제가 제기된 셔틀버스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아슬아슬한 백담사 계곡을 끼고 좁은 도로를 바람같이(시속 40~50km) 달려 우리를 백담사 입구에 내려놓는다.

셔틀버스는 모두 9대인데, 성수기에는 약 20분 간격으로 배차된다고 한다. 지난해 왔을 때만 해도 백담사에서 운영했지만 지금은 마을 자치단체가 운영하고 있다. 셔틀버스는 37인승으로 정원을 가득 채워 이렇게 매일 달린다고 한다(지난해엔 버스에 정원을 무시하고 사람들을 가득 태워 콩나물시루의 콩나물이 된 경험이 있는 본인은 다행이다 싶었다).

짧은 시간 백담사 부처님을 친견하고, 오세암으로 가기 위해 오색찬란한 단풍 속으로 발길을 향했다. 약 3시간 걸리는 6km의 전투 산행이 시작됐다.

오세암에서 하룻밤 머물고 내려오던 여행객들은 "조심해서 잘 다녀오라"고 정다운 인사를 건넸다. 붉은색으로 물든 단풍과 졸졸졸 흘러내리는, 투명한 계곡물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2개의 꼴딱고개를 제외하면 누구나 쉽게 오세암에 갈 수 있다지만, 역시 평소 운동을 하지 않은 본인에겐 힘든 산행임이 분명했다. 작년과 같이 또 후회했다. 운동할 걸.

▲ 단풍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 임석교

▲ 1시간 30분 가량 올라가 만난 영시암의 대웅전
ⓒ 임석교

▲ 꼴딱고개는 발바닥을 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 임석교
약 1시간 30분 동안 걸어가니 문수도량인 영시암이 나타났다. 약수 한 잔과 더불어 짧은 휴식을 취한 뒤 또다시 자연 속으로 스며들었다. 조금 더 어려운 산행이 시작됐다.

▲ 오세암 입구의 붉게 물든 단풍
ⓒ 임석교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겨울, 식량을 구하러 마을로 내려간 노승을 기다리다 지친 어린 동자승이 관세음보살의 도움을 받아 성불했고, 그때부터 암자 이름이 바뀌었다는 오세암이 울긋불긋 물든 단풍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 오세암 관세음보살 부처님과 천진관음보전
ⓒ 임석교

▲ 범종각 전경
ⓒ 임석교

▲ 오세동자를 모시고 있는 동자전 전경
ⓒ 임석교

▲ 동자전 내부와 기도하는 모습
ⓒ 임석교

▲ 오세동자가 성불한 오세전
ⓒ 임석교
관세음보살과 오세동자를 친견하고, 몇몇 분은 기도를 올렸다. 전투여행은 이렇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3시간 정도 내려오는 동안, 단비가 우릴 맞아줬다. 가슴 속 깊이 세분의 부처님을 모시고 돌아온 시간은 새벽 1시.

오늘(23일) 아침 뉴스를 보니 설악산 일대에 비가 세차게 내리고 바람도 강하게 불고 있다고 했다. 어제 우리 일행이 내려올 때 많은 사람이 올라갔는데, 아마 모두 고립되었을 것이다. 얼마 전 폭우로 많은 피해를 입은 지역이기에 더욱 가슴이 아프다. 아무쪼록 별일 없었으면 좋겠다. 고립된 모든 여행객, 불자들이 무탈하기를 기원한다.

오세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에 속한 백담사 부속암자이다. 7세기 중반,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여 관음암(觀音庵)이라고 했다. 1643년(인조 21)에는 설정(雪淨)대사가 중건했는데, 다음과 같은 관음설화가 전한다.

설정대사는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키웠는데, 월동준비를 위해 양양장터에 갈 때 며칠 동안 먹을 밥을 지어놓고 4세 된 조카에게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법당 안의 관음보살)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고 부르면 너를 보살펴줄 것이다"라 이른 후 새벽에 길을 떠났다.

그러나 밤새 폭설로 고개를 넘지 못하고 다음해 3월에 돌아오니 법당 안에서 은은한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보니 방 안은 더운 기운과 향내로 가득 차 있고 죽었을 것라고 생각했던 조카가 목탁을 치며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다. 조카가 관음상을 가리키며 "저 엄마가 밥을 주고 놀아주었어"라고 하여 대사는 관음상 앞에 합장하며 예찬을 올렸다고 한다.

이와 같이 동자가 관음의 신력(神力)으로 살아난 것을 기리기 위해 이곳의 이름을 오세암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888년(고종 25)에 백하화상(白下和尙)이 중건했다. 현존 당우로는 법당·승방·객사·산신각 등이 있고, 근처에 석물들이 남아 있다. 이 암자는 설악산에 있는 암자 가운데 제일 아늑하며 김시습·보우선사·한용운 등이 거쳐간 곳으로도 유명하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안><시골아이>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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