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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랑의 샘이 있다. 이 사랑은 주면 줄수록 다시 채워진다.
ⓒ 박철
저는 요즘 아침산행에 푹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새벽 6시20분쯤 집에서 출발하여 구봉산 산봉우리 몇 개를 휘돌아 집에 도착하면 오전 9시가 됩니다. 산속에 서 지내는 시간이 하루 중 제일 행복합니다.

구봉산은 산세가 험하지 않아 누구나 산보삼아 오르기 쉬운 산이지요. 며칠 전 지도를 보다 부산의 끝자락에 구봉산이 위치해 있고, 위로 올라가면 태백산맥과도 맥을 잇고 있는 명산이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산이 높지 않다고 우습게보면 안 되겠더군요.

요즘 구봉산에서는 가을의 절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른 아침인데도 풀벌레 소릴 들을 수 있습니다. 단풍나무 잎이 새색시처럼 홍조를 띠고 있고, 활엽수들은 옷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낙엽을 밟고 지나갈 때 들을 수 있는 사각거리는 소리는 천상의 그 어느 소리보다 아름답습니다.

구봉산의 매력 중 하나는 샘터(약수터)가 많다는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만도 10개가 넘습니다. 아침산행 길에 적어도 5~6개의 샘터를 지나가게 됩니다. 아침 공복에 샘터에서 받아 마시는 샘물 맛은 기가 막히지요.

샘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샘물을 받으려고 페트병을 들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바가지로 물 한 모금 받아먹는 것조차 미안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샘터는 분명 물은 잘 나오는데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 마음이 넉넉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랑의 샘물로 가득 차 있다.
ⓒ 박철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물이 오염되어 수질검사에서 식수로서는 부적합하다는 판명이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나가는 등산객으로부터 그 얘길 듣고 한동안 마음이 허전해 졌습니다.

똑같은 산인데 어떤 샘터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어떤 샘터는 단 한 사람도 찾아오는 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물인 것 같은데 어떤 물은 사람의 몸을 이롭게 하는 물이고, 어떤 물은 사람의 몸을 해롭게 하는 물이라는 것이지요.

오늘 아침 산길을 내려오다 아무도 찾지 않는 샘터 벤치에 잠시 앉았습니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의 비슷한 환경에서 살고, 하루 3끼 밥 먹고 사는 것은 똑같은데,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느낌을 주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지만, 어떤 사람은 남의 마음을 찌르고 아프게 하고, 자기가 제일이라고 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나쁜 느낌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불순물에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자기 자신이 오염되었기 때문에 자정능력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요?

한 줄기 샘물 같은 사람, 그런 사람에게는 삶의 깊이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대하면 대할수록 깊은 그윽한 느낌을 주고 울림을 줍니다. 샘물 같은 사람 옆에만 있어도 내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 구봉산 만수 샘터에서 아내와 함께.
ⓒ 박철
샘물 같은 사람은 장자(壯者) 각의(刻意)에 나오는 다음 한 대목과 같은 사람입니다.
純粹而不雜, 靜一而不變, 淡而無爲, 動而以天行

내 식으로 풀어보면, "순수하여 아무 것도 섞이지 않고 정일(精一)을 지켜 변하지 않으며 담담하여 인위를 떠나고 움직일 때는 그대로 행동한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샘물같이 맑고 고요한 사람, 누구에게나 그윽한 느낌을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고, 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뉴스앤조이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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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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