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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늘이 은제하고 마지막이야?”
“그래. 오늘밤만 우리하고 자고 내일은 집에 가.”
“조금 더 있으면 안 돼? 더 있고 싶은데….”
“안돼. 선우가 낼 퇴원하면 은제도 엄마 따라 집에 갈 거야.”
“그럼 이제 못 보는 거야?”
“왜 못 봐. 이모 집에 놀러 가면 볼 수 있지.”
아내와 아들 녀석과의 대화 장면입니다. 갓 백일 지난 처제의 아이가 일주일 전부터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세 살 짜리 은제 누나가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처제의 부탁으로 아내가 밤에 아기를 데리고 자기로 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병원에서 아기를 데리고 오면 서로 보겠다고 난리입니다. 처제가 낮에 짜놓은 젖을 아이에게 줄 때면 서로 자기가 주겠다며 다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럼 누나 한 번, 동생 한 번 번갈아 가며 젖병을 물립니다.
아이들의 소망 "아기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
어설프게나마 딸아이 품에 안긴 아기는 제법 젖병을 물고 엄마 젖을 먹습니다. 젖을 먹이는 딸아이나 젖을 먹는 아이나 신기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아기 젖을 먹이던 딸아이가 우리도 "아기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며 엄마를 쳐다봅니다. 아들 녀석도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은근히 기대를 합니다. 그러나 아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엄마도 더 갔고 싶은데 이제 엄만 나이가 많아서 안돼"하며 아이들의 기대를 무너뜨립니다.
사실 아내는 딸 하나가 더 있었으면 하고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그냥 바람이죠. 둘째를 낳자마자 남편이라는 사람은 아내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예비군 훈련받으러 갔다가 정관수술을 하고 말았으니까요.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부에선 정관수술을 권장하고 부추겼습니다. 그러다 요즘 들어 여러 가지 유화책을 내놓으며 아이 낳기를 권장하는 걸 보면 격세지감이 듭니다.
젖병을 빨던 아기가 졸립다는 듯 눈을 비비고 짜증을 냅니다. 그런데 모습이 정말 귀엽고 예쁩니다. 갓난아이의 모습은 어떤 모습을 해도 예쁩니다. 하품을 하는 모습, 배고프다며 칭얼대는 모습, 졸립다며 눈을 찡그리는 모습 등 모든 게 예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예쁜 모습은 칭얼대다 어르는 모습에 까르르 웃는 모습일 겁니다.
젖을 먹이던 아들 녀석이 갑자기 젖이 남은 젖병을 보더니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날 바라봅니다. 그러면 슬쩍 묻습니다.
“아빠, 이 맛이 어떨까?”
“너 먹고 싶어서 그러지? 먹으면 안 돼. 이거 아기 밥인데.”
“먹으려고 그런 거 아냐. 그냥 맛이 어떨까 궁금해서 그래.”
“야, 너도 아기 때 많이 먹었어. 너 솔직히 말해봐. 먹고 싶어서 그러지?”
그러자 아들 녀석은 절대 아니라고 잡아떼더니 엄마의 한 번 먹어보라는 말에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그럼 딱 한 방울만 줘야 돼. 많이 주면 안 돼. 알았지?”
“알았어.”
입에 딱 두 방울을 떨어뜨려 주며 맛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달어. 근데 맛이 이상해”라고 말합니다. 아들 녀석이 먹는 걸 보더니 딸아이도 달라고 합니다. 딸아이에게도 딱 두 방울만 떨어뜨려 주고 나서 무슨 맛이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걸작입니다.
“내가 예상했던 그 맛이야.”
“무슨 맛?”
“자판기 우유 맛. 자판기에서 빼 먹는 우유하고 맛이 똑 같애.”
딸아이의 말에 아내와 난 한참을 웃었습니다. 여성의 모유 맛을 모르는 나에게 딸아이의 말은 모유의 맛을 상상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자판기 우유를 먹어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약간 비릿한 내음이 나는 그 맛을.
아기를 재우고 나서 아내와 난 아기와 우리들과의 인연을 잠시 이야기 나누며 웃었습니다. 아내가 신생아를 돌 본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4년 전엔 처남 댁 아기(갓 태어난 신생아)를 한 달 동안 키우기도 했고, 6년 전엔 동생의 아기(신생아)를 2주일 동안 집 가까운 병원에 입원시켜 간호하기도 했었습니다. 둘 다 산모들이 아이를 낳은 후 몸이 좋지 않아서이고 또한 아기가 아파서입니다.
이번 아기까지 하면 세 번째입니다. 아기를 키우면 우리 생활이 그만큼 줄어들지만 즐거움과 행복도 그만큼 많아짐을 느낍니다. 맑고 투명한 아기의 눈을 보고 있으면 우리의 마음도 맑아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내일이면 엄마 품에 안겨 집에 갈 아기가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볼에 입맞춤을 하니 아이들도 ‘나도 나도’ 하며 입맞춤을 합니다. 그 모습이 참 예뻐 아이들에게도 입맞춤을 해주고 행복한 1주일의 마지막 밤을 보내며 잠자리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