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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어머님은 떠나셨어도 언제나 변함없는 미소로 그 자리에 계십니다.
ⓒ 한명라

얼마 전,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이 저에게 쪽지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승완아, 이게 뭔데?"하고 쪽지를 펼쳐보았더니, 연습장에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시(詩) 한편이 쓰여져 있습니다.

"오늘 국어시간에 쓴 시인데요, 학교 축제기간 동안에 제 시를 시화전에 출품한다고 선생님께서 액자로 만들어 오래요."

아들이 썼다는 시를 단숨에 읽어 내려갔습니다. 결코 길지 않은 아들의 짧은 시에는 3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님의 손주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서 제 마음을 울렁이게 했습니다.

"그래 알았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엄마랑 함께 표구점에 들러서 액자로 만들어 달라고 하자"

그날 이후, 아들과 시간을 내어 표구점을 찾아가 액자를 부탁했더니 며칠이 지나자 액자가 다 완성이 되었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를 받고 표구점을 찾아가서 처음 액자를 대하는 순간, 연습종이에 대충 연필로 쓴 시를 읽었던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을 느끼게 합니다.

특히 '나 어릴 적 시골가면 아이구~ 내 새끼 왔네~ 반겨주던 울 할머니'라는 구절에서 평소 손주를 환한 웃음으로 반갑게 맞아 주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라서 제 마음을 찡하게 했습니다.

▲ 아들이 쓴 시(詩)가 담긴 액자입니다.
ⓒ 한명라


요즘 같은 장마철,
어릴 적 나 이뻐해 준
할머니

그리움이 높고 높은
하늘에 닿네

나 어릴 적 시골가면
아이구~ 내 새끼 왔네~
반겨주던 울 할머니

몇 년전 할머니
돌아가실 때 나와 함께
울고 또 울던 비

아직도
내 마음에서 함께 우는
고마운 비.


▲ 어머님이 생각날 때, 아이들과 함께 혹은 저 혼자서 찾아가는 산소입니다.
ⓒ 한명라

어머님께서는 당신 살아 생전, 타인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유별났던 개구장이 손주를 애지중지 아껴주시고 사랑과 관심을 듬뿍 나눠주시기를 아까워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던 늦은 봄에 어머님께서 가족들의 곁을 떠나신 후, 어머님이 그토록 사랑하던 손자, 손녀들이 어쩌면 할머니께서 베풀어 주셨던 깊은 사랑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은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 교복을 입은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절실하게 느껴졌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저렇게 늠름하고 씩씩하게 자란 손주의 모습을 보신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중학교 입학식이 있었던 주말, 교복을 입은 아들딸과 함께 어머님 산소를 찾아가 어머님께 두 아이의 모습을 보여 드리고, 큰절을 하도록 했습니다. 아이들이 할머니의 사랑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살아주기를 바라는 남편과 저의 배려였습니다.

이번에 아들이 쓴 시를 읽으면서, 아들 또한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을 잊지 않고 마음속에 잘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마 어머님께서도 개구장이였던 손주가 당신을 생각하며 쓴 시를 읽으신다면 "에고, 요놈의 손아~"하시면서 얼굴에는 기분 좋은 웃음을 하나 가득 지으실 거라고 저는 확실하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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