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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버지니아 소렌슨 지음. 노경실 옭김
<봄 여름 가을 겨울> 버지니아 소렌슨 지음. 노경실 옭김 ⓒ 내인생의책
우리에게 자연은 어떤 곳일까? 단순히 즐기고 감상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공간일까 아님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우리는 늘 몸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계절의 변화를 진정 아름답고 사랑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해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되면 그 계절의 맛을 보기 위해 산으로 들로 배낭을 메고 떠나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자연의 작고 소중한 변화를 보고 느끼기보단 그저 즐김의 공간으로 찾는 것은 아닌지 싶다.

하지만 자연은 즐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지치고 팍팍한 우리의 몸과 마음에 건강한 생명을 주는 대상이기도 하다. 또한 자연 속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정이 가득 담겨있다. 그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 그리고 인간의 순수한 사랑과 정을 생생한 묘사와 필치로 그린 책이 있다. 버지니아 소렌슨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다.

어느 날 전쟁이 끝나고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던 말리의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고, 아버지를 위해 메이플 힐로 떠나는 걸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전쟁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말이 없다. 어두운 얼굴과 무겁게 내려앉은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전쟁에 나가기 전의 아버지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온 식구가 아버지의 눈치를 본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말리의 어머닌 자신이 어릴 때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았던 시골 메이플 힐로 간다. 말리 어머니에게 어린 시절 그곳은 온갖 기적이 일어나는 공간이라고 믿는 곳이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말리와 조에게도 메이플 힐은 기적이 일어나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메이플 힐의 할머니 집에 도착한 말리에겐 시골생활의 모든 게 신기하다. 눈 쌓인 숲을 바라보고 말리는 자신도 모르게 "아! 아름답다. 정말 아름답다!"며 절로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것뿐이 아니다. 장작과 석탄을 넣어 물을 지피는 난로, 어머니의 할머니가 사용했던 찬장과 찬장 속의 도구들, 벽장 한쪽에 숨어 있던 생쥐까지도 어린 말리에겐 신기함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말리와 조에게 가장 신기한 존재는 크리스 아저씨의 제당소이다. 제당소엔 수액을 뽑아 맛있는 설탕을 만드는 데 그 광경이 어린 말리에겐 기적과 같은 일로 비쳐지기도 한다. 제당소에서 나는 내음은 라일락 숲에서 나는 향기 같고, 봄의 첫 숨결로 묘사된다.

제당소에서의 힘든 노동도 이곳에선 그저 아름답고 신기하고 기적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그건 어린 아이인 조와 말리뿐만 아니라 말리의 엄마나 아빠, 크리스 아저씨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기적 속에 가장 큰 기적은 아버지의 변화다. 아버진 웃기 시작했고, 말에 힘이 들어갔고, 생기가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니다. 이웃들의 사랑 때문이다.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이 전쟁의 상처로 닫혀 있던 아버지의 마음을 녹인 것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메이플 힐은 온통 온갖 꽃들이 시나브로 피어난다. 봄이 오고, 여름이 시작되면서 말리와 오빠 조의 아름다운 모험은 계속되고, 자연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알아간다.

"초봄은 초여름의 황홀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모든 것이 쑥쑥 자라기 때문이다. 새로 나온 것들은 없었지만, 날마다 모든 것들이 점점 더 크게 자라났다. 조가 풀을 베면서 투덜거릴 때도, 아버지가 정원에 있는 잡초들을 뽑느라 정신이 없을 때도, 풀이 성큼성큼 자라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여름은 성숙의 계절이다. 풀들도 나무들도 꽃들도 성속되어 간다. 말리와 조도 자연처럼 점차 성숙되어 간다. 어느 날 조는 숲 속의 은둔자처럼 살아가는 해리 할아버지를 도와주고 염소와 닭을 얻어온다. 조는 그 염소와 닭을 키우기 위해 울타리를 치며 삶을 하나한 배워간다.

해리 할아버지는 상처받은 도시 문명을 떠나 자연 속에 묻혀 지내는 노인이다. 그는 염소와 닭과 거위들을 키우며 홍관조 한 쌍과 지낸다. 그는 숲의 사슴들과 대화를 하고, 먹이를 찾으러 온 토끼에게 풀을 주기도 한다. 그의 삶을 바라보면 위대한 자연주의자 소로우의 삶을 연상케 한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간다. 그리고 다시 겨울이 찾아온다. 그 겨울에 크리스 아저씨가 제당소의 일을 하다 과로로 쓰러진다. 그러자 크리스 아저씨를 위해 말리의 식구들과 이웃들이 제당소의 일을 도와 일을 한다.

몸이 녹초가 되고 팔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도 말리는 병원에 있는 크리스 아저씨를 생각하며 밤새워 일을 한다. 그건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메이플 힐에서의 온갖 기적을 보여준 크리스 아저씨에게 조와 말리는 이젠 아저씨에게 그들의 마음의 기적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기적은 일어난다. 맛있는 시럽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봄이 찾아오자 크리스 아저씨도 몸이 좋아져 퇴원을 한 것이다. 퇴원을 하자 크리스 아저씨는 말리를 꼭 껴안고 이렇게 말한다.

"말리야, 너 그거 아니? 너희 가족이 와서 이렇게 된 게 분명해."

그런 아저씨의 말을 들으며 말리는 해마다 새싹들이 움트고, 메이플 힐에는 언제나 새로운 기적들이 일어날 거라 생각한다.

자연은 말이 없다. 언제나 그대로 순리대로 변화한다. 그러나 자연을 바라보는, 체험하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다. 그리고 말없이 사람과 사람을 아무런 욕심 없이 엮어준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사람에 대한 뜨끈한 정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 훈훈하고 생생하게 펼쳐진 시골이야기라 할 수 있다.

자연이 아름답게 채색되어가는 가을,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이 소담하게, 살아있는 묘사로 그려져 있는 소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읽다보면 독자들은 자연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고 마음을 뜨리라 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 꽃과 잎이 그려 낸 사계절 이야기

헬렌 아폰시리 지음, 엄혜숙 옮김, 이마주(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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