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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보통 산행을 인생길의 축소판이라 한다. 오를 때는 끝도 없는 길을 꾸역꾸역 올라가려니 힘이 들고, 내려갈 때는 천길 낭떠러지 길을 조심해야하니 또 힘들다.

그나마 산행 중간 중간에 아름다운 절경과 시원한 바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지친 심신과 포기하고픈 마음을 그네들이 일으켜 세워주기 때문이다. 포기하고픈 인생 길목의 중간 중간에 따뜻한 사람들, 시원한 사람들로 인해 다시금 새 힘을 얻는 것도 다 같은 흐름일 것이다.

산행은 그만큼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준다. 인내와 끈기, 도전과 겸손, 집념과 깊은 사고를 얻게 한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폐쇄적이고 고집스러워지기가 쉽다. 산행은 그러한 자기 본위의 삶에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는 것과 같다. 늙은 고임과 썩음을 그만큼 도려낼 수 있는 까닭이다.

"백두대간은 나에게 고통을 재현하여 체험케 했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전율케 했으며, 공포조차 얼어붙을 무서운 모습으로 우리의 인내를 시험했으며, 삼복의 끔찍한 산속 더위로 우리의 영육을 말라붙게 하면서 우리를 가르쳤습니다. 엄한 스승, 자상한 누나, 업혀서 자란 엄마 같은 이모, 친한 친구, 어렵기만 한 아버지 같은 여러 모습으로 나를 가르쳤습니다. 큰 스승이오, 진정한 스승이었습니다."

이는 박용기 님이 쓴 <백두대간에서 산이 되리라>(소나무·2006)에 나오는 머리글이다.

그는 30년 넘게 인쇄업에 몸을 담아 왔다. 그 세월 동안 성공가도를 달렸던 오르막길 인생도 경험했고, IMF로 인해 끝없이 추락하는 막다른 낭떠러지 길도 만났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결코 구사일생하지 못했을 남다른 사연도 안고 있다. 그런 인생의 회한과 기쁨을 백두대간을 오르며 더욱 뼈저리게 느끼고 깨달았다.

백두대간 종주기는 결코 산을 짓밟고 정복하는 일이 아니었다. 산과 함께 호흡하는 일이요, 산과 함께 희노애락을 맛보는 일이었다. 산 속에서 새벽을 깨우는 새벽닭이 되기도 했고, 80도 가까운 가파른 암릉을 벌벌 기어올라가는 개미가 되기도 했고, 흰 눈의 광풍에도 아랑곳없이 걸어가는 광야의 목마가 되기도 했다.

그런 모습들은 그림 속 화폭 같이 아름답기만 하다. 하지만 실제 산행은 예측할 수 없는 고통이 뒤따른다. 덕유산 '할미봉'을 오르려다 발을 헛디뎌 이승에서의 생을 마감할 뻔 했던 아찔한 순간이 그것이요, 세조 임금이 시를 읊었다고 하여 '문장대'라고 이름 붙였다는 그곳의 철계단에서 손발이 굳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고소공포증이 되살아난 것도 그것이요, 조령산 암릉지대에서 미끄러진 탓에 왼쪽 발꿈치와 무릎에서 철철 피가 흘렀던 것도 그것이다.

더욱이 2004년 3월 6일, 100년 만에 내린 폭설로 인해 대관령 진고개 길이 막혀버렸는데, 그때 길을 잃었던 것도 더욱 힘든 일이었다. 그 때 그는 흰 눈이 몰아치는 광풍과 맞서 싸워야 했고, 그 까닭에 흰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장님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랬던 까닭에 허기진 산 속에서 집어 삼켰던 식은 김밥도 그 맛은 그야말로 남달랐을 것이다. 춥고 속이 빈 심장에 채워 넣었던 따끈한 커피 한 잔의 위로는 그 무엇과도 바꾸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자신들을 위해 길목 안내자가 되어 준 산행 사람들, 밥과 물을 건네준 산골 사람들의 손길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은인들이었을 것이다.

"과연 나는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을 더 잘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경영자인가? 과연 나는 내가 이룬 조그만 성취에 주변의 분노나 비난이 없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과연 나는 어느 시점에서 그와 같은 청부정재를 이루고 그 열매를 주변과 나누는데 인색치 않을 것인가? 이것이 백두대간을 걸으며 끊임없이 품고 고민하는 화두였다."(257쪽)

2002년 6월 1일에서 시작하여 2004년 7월 6일에야 끝마쳤던 백두대간 종주기를 통해 그가 밝히는 속내다. 백두대간 종주기는 지리산 천왕봉을 시작으로 강원도 진부령에서 그 끝을 맺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끝이 아닌 시작일 것이다. 비록 백두대간을 오르는 산행은 끝마쳤을지 몰라도 인생길 산행은 다시금 시작되기 때문이다.

숲속에서, 암릉 위에서, 산 정상에서 만유를 사색했던 그 깨달음으로, 직선적이고 공격적인 현대인의 인생길과는 달리 좀 더 따뜻하고 온정을 느낄 수 있는 정서적인 인생길 산행을 굳건하게 걸어가길 바란다.

백두대간에서 산이 되리라

박용기 지음, 소나무(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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