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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잡이로 유명한 '강구항', 이곳에는 대게를 파는 전문음식점이 빼꼭히 들어서 있다.
대게잡이로 유명한 '강구항', 이곳에는 대게를 파는 전문음식점이 빼꼭히 들어서 있다. ⓒ 김준

대한민국을 '관광민국'으로 만들려는지 작은 섬부터 큰 도시까지 주민들은 간 곳이 없고, 관광이 넘친다.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독특한 '향토맛'이 있어야 한다. 전국의 지자체들은 저마다 관광과 문화를 전략산업으로 집중하고 있다. 맛으로 경쟁할 때 승부는 '원조' 경쟁이다.

7번 국도를 돌면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원조대게' 다. 가게 간판만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대게를 둘러싸고 지자체 간에 원조경쟁을 벌인 적도 있다.

동해의 최북단 대진항에서 포항의 영일만의 구룡포까지 횟집의 수족관에는 어김없이 대게가 있다. 물론 지금 먹을 수 있는 대게는 러시아산들이다.

국도변 가게마다 너도나도 '원조대게'

정말 동해에서 나는 대게를 먹길 원한다면 때를 잘 맞춰야 한다. 바다 것들은 육지에서 나는 것과 달리 철이 있고 때가 있다. '철'이라 함은 사계절을 이야기하고, '때'라 함은 '물때'를 말한다.

대게를 먹기 위해 찾아간 강구항에서 주민들은 "12월부터 4월이 대게잡이 적기"라고 알려주었다. 이 무렵이면 영덕이든 울진이든 동해에서는 대게를 잡는다. 어떤 선박이 가서 잡느냐에 따라 영덕대게가 되고 울진대게가 되는 것이다. 대게는 묵호항으로 들어가느냐, 강구항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한일어업협정 이전까지 대게를 잡았던 곳은 공동수역이 되어 버렸다. 한때 대게를 잡기 위해 멀리 일본해역 인근까지 나갔다. 그 넓은 망망대해에서 대게를 잡기 때문에 대게를 잡는 포인트가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좋은 대게를 잡던 포인트는 '자식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강구항에서 만난 어민이 귀띔한다.

강구항의 어민들은 다른 지역의 어민들에 비해서 동해의 어떤 지역보다 일찍부터 대게잡이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술과 그 포인트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있게 동해에서 최고라고 이야기한다.

대게 잡는 포인트, 자식에게도 안 가르쳐 준다

신사임당이 그린 '게'(오죽헌 율곡기념관)
신사임당이 그린 '게'(오죽헌 율곡기념관) ⓒ 오죽헌 율곡기념관
동해에서 나는 자연산 미역
동해에서 나는 자연산 미역 ⓒ 김준
주문진을 비롯해 울진과 포항까지 곳곳에 대게를 파는 가게들이 있다. 아무래도 제대로 대게 맛을 보자는 생각에서 '강구항'까지 들어갔다.

7번 국도를 따라가는 길에는 풍력발전소가 있고, 바닷가에 조성된 작은 공원도 있다.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는 내내 동해의 푸른 바다를 한없이 볼 수 있다. 철조망 사이로 바다를 보면서 저놈의 철조망 확 걷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문득 일었다. 강원도를 지나 경상북도까지는 철조망이 이어진다.

울진과 삼척을 지나올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 '무장공비 사건'이었다. 반공교육을 제대로(?) 받은 세대다운 기억인가. 씁쓸하다. 물론 기억이라고 하는 것이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강요된 기억도 있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자발적인 경험보다는 대부분 강요된 기억인 것 같다.

강변에 들어섰다. 입구부터 심상치 않다. 가게마다 원조경쟁이 만만치 않다. 가게 앞에는 지나는 차를 붙들기 위해 너도 나도 손짓을 한다. 이럴 땐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고민된다. 특별히 잘 가는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처럼 지나다 들리는 사람은 가게를 따라 포구를 몇 바퀴 돌기 십상이다. 두 바퀴 돌고서 겨우 가게를 정했다. 특별히 가게를 정하는 기준은 없다.

제법 규모가 있는 가게들은 저마다 경쟁을 하듯 큼지막하게 방송국 이름과 방송된 날짜를 붙여 두었다. 우리나라의 음식맛은 방송국에서 평가되는 모양이다.

동해 바다 내음을 사각사각 씹는다

힘들게 선택한 가게 입구에 커다란 수족관이 4개가 입구 양쪽에 이층으로 놓여있다. 위쪽에는 오징어와 전어·전복·광어·방어·돔 등이 들어 있고, 아래쪽에는 대게와 킹크랩이 손님을 기다린다.

자리를 잡기 전에 주인이 대게를 보여준다. 한 마리에 3만원, 2~3명이면 6만원에 3마리를 먹기를 권한다. 여기에 밥과 탕이 따라나온다.

동해안을 따라돌면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늘 걱정이었다. 우선은 뭘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동해안에서 유명한 해산물을 먹으려면 적잖은 지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단체가 아닌 한두 명이 다니는 경우는 더욱 그랬다.

어민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다를 알아야 한다. 고기잡는 방법과 먹는 법, 소비자들에게 팔리는 과정 등을 이해해야 어민들을 알 수 있다. 7번 국도를 타고 돌면서 가장 비싼 식사를 했다.

대게를 준비하는 동안 나온 미역이 입맛을 돋운다. 동해안 미역은 일찍부터 임금님에게 진상할 정도로 유명했다. 아니, 임금보다는 새끼고래를 낳은 어미고래가 더 즐겨 했다.

초장에 찍어먹을 수 있도록 생미역을 상에 올려준다. 가장 동해스러운 음식이다. 미역은 일찍부터 사람들과 친한 해조류였다. 서·남해가 해태라면 동해는 미역이었다. 미역은 사각사각 씹히면서 입안에 동해 바다 내음을 그대로 전해준다. 잠시 뒤에 상에 올라올 대게를 기대하며 미역을 초장에 찍지 않고 한 입 몰아넣었다.

대게 하나로 시장기를 면한다

11월부터 4월까지 동해에서 대게가 잡히기 전에는 '러시아산'으로 만족해야 한다.
11월부터 4월까지 동해에서 대게가 잡히기 전에는 '러시아산'으로 만족해야 한다. ⓒ 김준
수심이 좀 있는 곳에 사는 대표적인 게로는 영덕의 '대게', 통영의 '털게', 서산의 '털게'를 꼽는다. 통영털게나 영덕대게는 귀한 반면, 서산의 꽃게는 비싸기는 하지만 아직도 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게들은 대부분 밤에 먹이 활동을 한다. 낮에는 모래밭에 몸을 숨기고 있다. 어두워지면 나와서 먹이활동을 한다.

갯벌을 지배하는 칠게나 농게 등 작은 게들과 달리 이들 큰 게들은 수영을 잘한다. 배를 움직이는 노처럼 생긴 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밤이면 먹이활동을 하는데 영덕에서도 '그믐게'와 '보름게'를 구분한다고 한다. 밝은 달빛에 잡은 게는 속살이 실하지 않지만, 달이 없는 그믐에 잡는 게는 속살이 꽉 차 있다고 한다.

대게를 '영덕게'라고 지명을 붙인 것은 동해안 영덕만 근해에서 잡히는 것을 으뜸으로 쳤기 때문이다. 수심 200~300m에서 서식하며 7~8년 동안 한번 탈피하여 성숙한다. 갑폭이 10여cm 이상 크기 위해서는 15년이 필요할 정도로 성장이 느리며, 대량 포획으로 자원관리에 실패해 영덕 근해에서는 멸종위기에 있다.

'대게'라는 이름은 몸이 큰 대(大)게가 아니라 대나무처럼 크고 긴 다리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는 한 마리 대게로 시장기를 면할 정도로 크고 실했다.

대게, 정신없이 먹었더니

갑자기 큰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강한 소리가 들렸다. 강한 공기가 나오는 기구로 대게를 바닥에 놓고 청소를 하듯 뿌리고 있다. 게를 기절시키는 중이었다. 솥에 넣었을 때 게가 움직이면 곤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맛있는 대게를 먹기 위해서는 30여 분을 기다려야 한다.

대게 맛의 포인트는 긴 다리에 있다. 작은 포크로 가게 주인이 먹기 좋게 손질해 준 대게를 부위별로 살을 빼 먹는다. 대게를 찾아 헤매며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 배가 고팠다.

정신없이 먹었다. 그런데 점점 먹는 속도가 느려지더니 좀 느끼해진다. 짭짤한 젓갈을 곁들였으면 하는 생각이 난다. 입맛이라는 것이 이래서 무서운 모양이다.

강구항 수산시장
강구항 수산시장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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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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