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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온정리에 아침해가 뜨고 있다. 크레인이 서있는 곳은 건설중인 면회소.
금강산 온정리에 아침해가 뜨고 있다. 크레인이 서있는 곳은 건설중인 면회소. ⓒ 안서순
지극한 평화로움 속에 아름다운 금강의 단풍이 익어가고 있다. 만물상이나 구룡연 등 1000m가 넘는 고봉에서 시작된 단풍이 막 아래로 내달리고 있다.

본래 여산(女山)이라서 그럴까, 금강의 단풍은 맑고 투명한 게 다른 산보다 유난히 색이 곱다. 금강산의 음기(陰氣)는 유별나서 현재 현대아산에서 개발해 운영하고 있는 '금강산 온천'의 남탕과 여탕이 기(氣)의 흐름이 치우치지 않게 하기 위해 날마다 위치를 바뀔 정도다.

구룡폭에 가기 위해 금강송 아래를 지나는 관광객들
구룡폭에 가기 위해 금강송 아래를 지나는 관광객들 ⓒ 안서순
천하에 아름답기로 이름 높은 여산이 누구에게 지려할까. 이 아름다운 금강의 단풍은 20일께부터 이달말께까지 절정에 이를 전망라는 게 안내원의 설명이다.

북한 핵실험 이후 북한땅과 사람들을 직접 가거나 대면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에 그나마 금강산에 가면 그쪽 소식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어 '금강산 관광'을 갔다.

친숙했던 안내원들

금강산 구룡폭포
금강산 구룡폭포 ⓒ 안서순
13일과 14일에 걸친 1박2일 코스다. 여자 안내원들은 여전히 친절했고 전설 한두개씩을 곁들인 멋들어진 설명솜씨도 여전했다.

그들은 아무일도 없는 듯 남쪽 사람들을 대했으나 오히려 남쪽사람들이 북핵의 선입견으로 서먹서먹해 했다.

단풍이 들어가는 상팔담
단풍이 들어가는 상팔담 ⓒ 안서순
그러나 그런 어색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여자 안내원들은 기차게 '명승지'에 대한 설명을 하고 나서 관광객들이 노래를 부탁하면 간드러진 목소리로 한곡 불르는 환대도 잊지 않았다.

금강산엔 아름다운 풍광과 그것을 보고 즐기려는 관광객들, 그리고 그들을 도우려는 안내원만 있었다. 첫날 구룡연을 거쳐 상팔담까지 올라갔다 오느라 일행을 따라잡기 위해 옥란관에서 급히 냉면을 먹는내 모습을 보고 여직원이 다가와 "선생님 그리 급하게 잡숩다가 체증생기면 어쩌시려구요"하며 걱정스런 얼굴을 한다.

단풍이 익어가는 만물상
단풍이 익어가는 만물상 ⓒ 안서순
두어쪽을 내어 먹어야할 감자전도 한입에 넣고 우물거리자 다시 안내원이 다가와 "걱정시럽습니다, 관광을 오셔갔구 병나시면 어쩌시려구요"한다.

한밤 스무이틀 추석 쪽달이 남아 온정리 마을 중천에 떠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기척도 없는 고요한 밤이다. 잠을 자다 깨어 고향집 안마당에 나가 선 느낌이다. 지극히 평화로운 밤이다.

단풍이 절정에 이른 만물상
단풍이 절정에 이른 만물상 ⓒ 안서순
이튿날 만물상의 웅자를 보기 위해 가파른 돌계단과 철계단을 오르느라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막 천선대 바위 위에 오르는데 "선생님 고생하셨습네다, 힘들지요" 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가무잡잡한 얼굴을 한 작은 키의 남자 안내원이다.

"아, 예. 힘드네요."

남한 관광객에게 관광안내를 하고 있는 북한 안내원
남한 관광객에게 관광안내를 하고 있는 북한 안내원 ⓒ 안서순
다른 관광객들이 힐끔거리며 지나가는 가운데 그 안내원과 제법 친숙한 대화가 계속되었다. 얘기 끝에 예전에 내가 군대생활 할 때 전방 관측소(OP)에서 포대경으로 금강산 비로봉을 보았다고 하자 그가 "기래요, 와 이거 서로 총부리를 맞댔던 적을 오늘 만났구만이"하며 농담까지 했다.

길지 않은 만남을 뒤로하고 내가 "다시 만납시다"고 작별인사를 하자 그 안내원은 "이거 원 시간이 있으면 우리집에 가서 하루 묵어가도 좋은텐데 아쉽구만요"했다.

금강산에는 계절의 변화만 있을 뿐...

냉면맛이 기가막힌 옥란관 옆을 관광객들이 지나고 있다.
냉면맛이 기가막힌 옥란관 옆을 관광객들이 지나고 있다. ⓒ 안서순
말만이라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금강산에 '핵'은 없었다. '혹시'하는 남쪽 관광객들의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금강산은 계절에 따른 변화만 있을 뿐 여전히 그 모습은 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은 그 문제가(북핵) 금강산 관광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보아서 인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 문제에 대해 남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듣고 싶어했다.

현대아산이 운영중인 현대식 금강산 온천
현대아산이 운영중인 현대식 금강산 온천 ⓒ 안서순
그들은 적어도 남쪽 사람들만큼은 자신들을 적대시하지 않기를 바랐다. "북핵이 동족을 겨냥한 비수가 아니라 호시탐탐 '자주'를 깨어 부수려는 미국에 맞선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자위책일뿐"이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만물상 절부암 앞에서 만난 한 상냥한 여자안내원은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이 분단 50여년만에 마련된 통일기초사업인데 이런 일로(북핵) 인해 다시 대립과 갈등이 조장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16일 현대아산에 따르면 북핵 이후 한때 60% 가까이 됐던 '금강산 해약사태'가 지난 13일에는 1013명 예약자 중 200여명만이 취소를 하는 등 회복세에 들어갔다고 밝히고 있다.
현대아산이 운영중인 옛 김정숙 초대소
현대아산이 운영중인 옛 김정숙 초대소 ⓒ 안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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