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할부지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돌아가신 지 올해로 30년이 더 넘은 우리 할부지가 사진 속에서는 살아 계십니다.
우리 할부지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돌아가신 지 올해로 30년이 더 넘은 우리 할부지가 사진 속에서는 살아 계십니다. ⓒ 이승숙
우리 할부지는 등이 약간 굽어서 걸을 때면 둥그렇게 몸이 휘어 있었어요. 출타를 하실 때면 갓 쓰고 두루마기 입고, 하얀 백고무신을 신고 나가셨죠. 엄마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할부지 백고무신을 깨끗하게 씻어서 말리곤 했어요.

출타하셨다 돌아오시면 "일아~" 하고 우리를 부르셨어요. 내 남동생 이름이 '승일'이였거든요. 그래서 항상 "일아~~" 하며 우리를 부르셨어요.

엄마는 항상 할부지 밥을 맨 먼저 펐어요. 보리쌀을 깔고 그 위에 쌀을 조금 얹어서 지은 밥은 맨 보리밥이었어요. 엄마는 쌀밥만 주걱으로 살살 모아서 할부지 밥그릇에 담았어요. 그리고 겟띠뱅이(밥그릇 뚜껑)를 덮어서 곱게 할부지 상에 올렸죠.

할부지 잡수실 밥상은 항상 따로 차려 드렸어요. 할부지 상에 오르는 반찬들은 부드러운 게 많았죠. 계란찜도 찌고 가지나물도 무쳐서 상에 올렸어요. 가지나물 무친 거 먹고 싶어서 건너다 보면 엄마는 늘 이랬어요.

"아~들이(애들이) 가지나물 묵으마 헌디~이(곪은 상처) 생긴다."

그 말 듣곤 침만 꿀떡 삼키며 젓가락을 다른 데로 돌렸지요.

할부지 상은 사랑방에 차려드리고 다른 식구들은 안방에서 두레상에 둥글게 둘러앉아 밥을 먹었어요. 얼마쯤 먹다가 엄마는 물을 떠서 할부지 방으로 갑니다. 그리고 밥상을 물려 왔어요. 할부지가 밥상 물릴 때만 기다리던 우리는 남기신 반찬이랑 밥을 내려다 먹었어요.

울 할부지는 일년 삼백육십오일 항상 식사량이 일정하셨어요. 밥그릇에 담긴 밥을 항상 겟디뱅이(밥뚜껑) 하나쯤은 남기셨어요. 입맛이 있어도 꼭 그만큼만 잡수셨고 입맛이 없어도 그만큼은 잡수셨어요. 할부지가 남긴 밥은 내 동생이 먹거나 내가 먹었어요. 보리쌀이 듬성듬성 섞인 하얀 쌀밥은 입안에서 그냥 막 넘어갔어요.

울 할부지는 책읽기를 참 좋아하셨어요. 할부지가 운율에 맞춰 음을 넣어서 책을 읽으면 안방에서 숙제하던 우리도 소리 내서 책을 읽었어요. 책이 귀하던 시절이라 막내삼촌은 할부지가 읽으실 책을 구해오느라 공부 많이 한 동네 친구에게 맨날 책을 빌려오셨어요.

할부지는 책을 보다가 자리를 비울 때면 책에 때가 묻을까봐 실겅(시렁) 위 함지에 넣어두었어요. 그러면 언니랑 내가 꺼내서 몰래몰래 읽었어요. 언니는 엎드리고 내가 그 위에 올라가서 책을 꺼내 읽었지요. 언니가 없을 때는 나 혼자서 베개를 몇 개 받치고 그 위에 올라서서 꺼내기도 했어요.

그 때 몰래몰래 읽었던 책들은 대부분 뜻도 모르는 책이었어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너무 지루해서 중간에 던져 버렸던 책이었고 <삼국지> 1권은 재미있어서 몇 번을 읽었지요. <빨간 머리 앤>도 <키다리 아저씨>도 그리고 <괴적 루팡> 시리즈도 다 그 때, 국민학교 다닐 때 읽었습니다.

우리 할부지는 대동아 전쟁 때 강제징용을 당하셨대요. 북해도 탄광에서 죽을 고생을 하셨대요. 일을 하시다가 다쳐서 다 죽게 돼서 돌아오셨대요. 뼈를 상해서 피골이 상접한 얼굴로 오셨대나 봐요. 그래서 우리 할머니는 할부지 살리려고 똥물까지 내려서 먹였다고 그러시더군요.

할부지는 축농증이 있어서 맨날 코를 푸셨지요. 하루에 한 장씩 넘기는 달력은 종이가 얇고 보드라웠어요. 할부지는 그 달력을 알마춤한 크기로 착착 잘라놓고 맨날 맨날 코를 푸셨어요. 사랑방 옆문을 열고 퉤퉤 하며 누런 가래침을 뱉곤 하셨죠.

우리 할아부지가 편찮으셔서 자리에 누우셨을 때 철없는 우리는 그저 복숭아 통조림이나 젤리 같은 맛있는 것들을 먹을 수 있어서 좋기만 했어요. 큰 물 건너 마을에 사시는 왕고모가 다녀가시고 밀양이나 유천, 그리고 청도에 사시는 고모들이 다녀갔습니다. 그러고도 계속 사람들이 맛난 것을 사들고 문병을 왔지요.

할부지가 누워 계시던 사랑방 벽장 속에는 황도 깐지미(통조림)도 있었고 백도 깐지미도 있었어요. 입에 넣으면 그냥 솔솔 녹는 과자들이 많이 있었어요. 고모들이나 집안 친척분들이 문병 오시면서 사온 것들이었지요. 우리 형제는 그거 얻어 먹는 재미에 사랑방을 늘 기웃거렸지요.

할부지는 돌아가실 때 그 동안 모아두었던 용돈을 꺼내서 일일이 손자 손녀들에게 농갈라주라(나눠주라고) 그러셨대요. 언니부터 막내 동생까지 나이 순으로 공평하게 나눠주라 그러셨대요. 할부지 돌아가시고 아버지랑 엄마가 우리 형제들 둘러앉혀 놓고 그 돈 나눠주셨어요. 우리는 할부지가 우릴 생각하는 그 깊은 사랑은 챙기지도 못하고 그냥 공돈이 생겨서 좋아라만 했어요.

우리 할부지는 식전에 일어나셔서 꼭 논을 둘러보고 오셨어요. 잠시도 쉬지 않고 새끼 꼬고 책을 읽으셨지요. 할부지는 몸을 좌우로 가볍게 흔들면서 노래하듯이 음을 맞춰 책을 읽으셨지요. '어~, 어~, 어~, 어~' 하며 중간 중간에 받쳐주던 그 추임새도 생각납니다. '일아~' 하며 부르시던 할부지의 따스한 사랑을 떠올려 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