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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름날 초록 빛깔의 들깨
여름날 초록 빛깔의 들깨 ⓒ 이기원
추석 지난 가을 황금빛깔 들깨
추석 지난 가을 황금빛깔 들깨 ⓒ 이기원
아침 이슬을 머금고 자라던 초록 들깨가 가을 들녘에선 황금빛으로 단장을 했습니다. 가을 햇살도 황금빛 들깨 잎새 위에서 눈부신 황금빛이 되어 함께 어우러집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들깨 밭 너머로 농가가 보입니다. 오랜 세월 험한 세파에 시달린 남루함이 듬뿍 묻어납니다. 그 남루한 농가 지붕 위에도 눈부신 가을 햇살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여물어가는 들깨 대궁 위에 앉은 잠자리
여물어가는 들깨 대궁 위에 앉은 잠자리 ⓒ 이기원
잎에 노란 물이 들면서 들깨도 탱글탱글 여물어갑니다. 들깨 대궁 위에 그림처럼 잠자리가 앉아 있습니다. 들깨 알이 제대로 익어 진한 갈색으로 변할 무렵이면 농부의 마음은 바빠집니다. 부지깽이도 덤벙일 정도로 바쁜 가을걷이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여름 장마 끝난 뒤 비다운 비 한 번 내린 적 없이 쾌청한 날이 이어졌으니 들녘의 곡식이 잘 여문 풍년입니다. 하지만 주름진 농부들의 얼굴이 환하지만은 않습니다. 자식처럼 애지중지 기른 곡식 여문 걸 보면 뿌듯하지만, 땀 흘린 대가를 받기 쉽지 않은 탓에 가슴 한구석이 무너집니다.

그래도 굳게 들녘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있습니다. 평생을 살아온 삶의 터전을 떠날 수 없는 탓입니다. 숨 쉬며 살아온 날들의 대부분을 들녘에서 땀 흘렸습니다. 그 땀방울로 아들, 딸 키워 도회지로 내보냈습니다. 이승에서 삶을 마감하는 날이 곧 저 들녘을 떠나는 날입니다.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 들녘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 들녘 ⓒ 이기원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 들녘에 서면 눈부신 햇살처럼 아름다운 이들의 삶이 떠오릅니다. 처연해서 더 아름다운 이들의 삶도 가을 들녘처럼 노랗게 물들고 있습니다. 가을 들녘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을 한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가을입니다
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
윗녘 아랫녘 온 들녘이
모두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
말로 글로 다 할 수 없는
내 가슴속의 눈물겨운 인정과
사랑의 정감들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해 지는 풀섶에서 우는
풀벌레들 울음소리 따라
길이 살아나고
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
불빛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
작은 흙길에서
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 <가을>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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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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