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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고정미
중동의 작은 나라 요르단과 카타르가 유엔사무총장 선출 과정에서 낯을 붉히는 일이 벌어졌다. 같은 아랍국가인 카타르가 후보에 참여한 요르단 왕자 대신 머나먼 나라 한국의 반기문 장관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반기문 장관은 9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단독 후보로 추천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사무총장 당선이 기정사실처럼 된 상황이다.

열받은 요르단, 카타르주재 자국 대사 전격소환

요르단 정부는 지난 3일 카타르 주재 자국 대사를 전격 소환했다. 전날 실시된 차기 유엔사무총장을 뽑는 4차 예비투표에서 카타르가 자이드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 대신 반기문 장관을 지지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와 사촌 관계인 자이드 왕자가 지난 9월 초 UN 사무총장 후보 참여를 선언하자 곧이어 카이로에 모인 아랍 연맹국가들은 만장일치로 공개적인 지지를 선언하였다.

요르단 정부 기관지 <페트라뉴스>가 지난 9월 11일자 <차이나데일리>를 인용해 "5개 상임이사국 중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이미 요르단 왕자를 지지하기로 함에 따라 미국과 중국의 입장이 난처해졌다"고 보도하며 자국 후보를 위한 지원에 돌입한 바 있다 .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 이사 10개국 가운데 기권 1표를 제외한 나머지 9개국과 상임이사 5개국 모두가 반기문 장관을 지지한 지난 4차 예비투표에서의 찬성 14표는 찬성 2표, 반대 8표, 기권 5표에 그친 자이드 왕자 본인은 물론 그나마 체면치레라도 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요르단 정부의 바람에 찬물을 끼얹었다.

마로우프 바킷 요르단 수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부 대변인 나셀 쥬데가 발표한 것에 따르면 상황은 보다 심각했다. 카타르는 4차 예비 투표가 끝나는 시점까지도 자신들이 반기문 장관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했다는 것이다.

또 4일 아랍 에미레이트 최대 일간지 <칼리지 타임지>에는 요르단 외무장관 압델 일라 카팁이 아랍연맹 수반 아물 무사에게 요르단과 카타르의 현 상황을 보고한 브리핑 내용이 실렸다.

지난 3, 4차 투표에서 1표 이상을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카타르 대표는 반기문 장관만 지지하고 요르단 후보는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이 보고의 핵심이다.

반면 카타르 외무장관 세이크 하마드 빈 자셈 알 타니는 아랍연맹의 결의는 요르단에서 후보를 내기 6개월 이전 태국을 지원키로 한 것이였다고 항변했다.

팔레스타인 인구가 다수이면서도 친미적인 요르단

이슬람문화를 공유하고 아랍어를 공용어로 쓰는 카타르가 아랍 연맹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요르단 후보 지지 결의안을 무시하면서 인도를 넘고 중국을 지나 머나먼 한국의 반기문 장관을 지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참여정부가 공들인 제3국 외교의 적극성이라든가 UN 개혁에 필요한 인물로 반기문 장관이 최적의 인물이라는 세간의 평가는 별도로 두고 카타르가 한국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보다 구체적인 원인을 중동 패권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는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이라는 시각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전체 인구중 팔레스타인계가 400만(60%)인 요르단은 이집트, 이스라엘, 사우디, 시리아, 이라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동의 가난한 중립 왕정 국가이다.

이웃 이집트와 함께 중동에서 유일하게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채택하고 친미 성향이 강한 이슬람 산유국 사우디와 외교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을 맺었으니 요르단과 팔레스타인의 긴장관계는 오히려 자연스럽다. 인구의 60% 이상이 팔레스타인계인 요르단 왕정의 고민은 다단계 피라밋 조직 만큼이나 복잡 다단하다.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를 지지하는 레바논의 헤즈볼라, 그 배후에 있는 시리아, 또 그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이란은 외부의 적이니 논외로 하더라도 요르단 국내에 있는 팔레스타인계 인구의 하마스에 대한 지지는 요르단 정부의 고민의 깊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세습왕정이지만 이란과 가까운 카타르

유엔 사무총장으로 유력시 되고 있는 반기문 장관.
유엔 사무총장으로 유력시 되고 있는 반기문 장관. ⓒ 연합뉴스
카타르는 아랍에미레이트 위쪽에 위치한 인구 70만의 반도국으로 수니가 75%를 차지하는 역시 이슬람 왕정 국가이다.

세습을 통해 대부분의 정치권력이 유지된다는 점은 이웃 사우디아라비아, 아랍 에미레이트, 바레인과 유사하나 언론활동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아랍권의 시각을 대변하는 알 자지라 방송이 바로 카타르에 있다.

카타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긴밀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여 왔으나 근래 들어 국제 무대에서 이란과의 관계 구축에 많은 정성을 들이고 있다.

이스라엘, 미국과 가까운 요르단이 팔레스타인, 이란과 가까운 카타르와 대립하는 모습은 종교, 언어의 동질성을 초월한다는 점에서 다소 흥미롭다.

지난 99년 요르단 내에서 하마스의 대변인 역할을 담당하던 이브라임 고쉐가 요르단에서 추방되어 카타르로 망명한 사건이 있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박을 받은 요르단 정부는 이브라임을 포함한 3명의 하마스 관련 팔레스타인계 요르단인을 추방시키는 결정을 한다.

2년이 지난 2001년 6월 이브라임은 망명지 카타르에서 출발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비행기를 내려 요르단 입국을 신청하지만 요르단 정부는 일언지하에 이를 거절한다.

이브라임을 태우고 온 카타르 국적 비행기에 다시 태워서 카타르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압박하던 요르단과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카타르 정부간의 줄다리기는 이후 2주일 동안 계속되고, 이브라임이 암만 공항에서 시위하는 동안 양국 관계는 더욱 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양국 갈등에 어부지리 얻은 반기문

이브라임 고쉐가 요르단 국왕에게 보낸 자필 친서의 서신이 요르단 방송에 공개되고, '입국을 허락해 준다면 하마스와의 모든 정치적 관계를 청산하겠다'는 서약을 압둘라 국왕이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갖춘 다음에야 본 사건은 수습의 길을 걷지만 이로 인해 땅에 떨어진 카타르의 자존심은 여전히 앙금으로 남게 된다.

이듬해인 지난 2002년 8월 요르단 정부는 자국내 활동 중인 알 자지라 방송국 지부의 폐쇄와 라이센스 반납을 명령한다. 사사건건 요르단 정부와 대립하던 알 자지라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요르단의 입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보도를 한 것이 발단이 됐다. 1998년 이래 두 번째 폐쇄명령이었다.

친미ㆍ친이스라엘ㆍ친사우디인 요르단과 친이란·친팔레스타인을 표방하는 카타르가 벌이고 있는 지역내 갈등의 수혜자가 아이러니하게도 반기문 장관으로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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