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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막바지 귀성 행렬이 한창인 지난 5일 오전, 서울 도심은 한산했고 도로에는 가끔씩 빈 버스들만 다니고 있었다.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한 대학로도 마찬가지. 상가 대부분이 가게 문을 닫고, 마로니에 공원은 여남은 비둘기들만이 여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혜화동성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무리의 동남아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들은 필리핀 사람들로 성당에서 막 예배를 마치고 나와 오랜만의 휴일 오후를 즐기려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주노동자들이 추석연휴를 어떻게 보내는지 알고 싶다고 말한 뒤 동행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들은 흔쾌히 허락했고 그렇게 나는 그들과 함께 하게 됐다. 그들은 한국에서 처음 맞는 연휴에 들떠 조금은 설레 보였다. 서로 소개를 했고 그들은 나를 미스터 김이라고 불렀다.

난생처음 가이드가 되다

▲ 2006년 10월 5일 창경궁. 첫나들이를 기념하며 단체사진을 찍었다. 첫줄 왼쪽 본 기자.
ⓒ 김현수
그 친구들은 대부분 한국에 온 지 5개월 정도 됐고 20대에서 30대 후반이었다. 의정부, 평택, 부천, 인천, 안산, 광주(경기) 등 각기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휴일마다 혜화동성당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이들 중 프레지던트라고 불리는 로빈(Robin)은 "우리는 성당 주변의 지리를 잘 모른다"며 "좋은 곳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난 그들에게 창경궁을 소개했고 친구들도 첫 나들이의 시작에 한껏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창경궁으로 이동하는 도중 헨리(Henry)로부터 그동안의 한국 생활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한국은 산이 많고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며 "매우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필리핀은 지금 경기가 매우 안 좋다고 한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한국, 일본, 캐나다 등 다른 나라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기도 필리핀에 있을 때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지만 한국에 와서는 청바지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일이 고되지 않나?"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계속되는 일이 좀 힘들기는 하지만 필리핀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하지만 이어 그는 한국사람들에 대한 불만도 털어 놓았다. 회사 사장님은 자신들이 몸이 아파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적절치 못한 대우에도 아무 말 할 수 없는 것이 지금 그가 처한 상황. 그가 처음 한국에 와서 배운 말은 "이쪽이쪽", "빨리빨리"였다고 한다. 그것은 많은 작업량을 제한된 시간에 끝내기 위해 사장님이 항상 하는 말이었다. 그의 양쪽 손목에 난 상처는 힘든 공장생활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는 또 한국 사람들의 차별에 대해 이야기했다.

"필리핀은 섬이 많아 외국 관광객이 많은데 우리는 외국인들을 친구로서 대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우리를 낮게 생각하며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필리핀 친구들과 고궁 나들이

▲ 로빈이 창경궁 명정전 앞에서 안내판을 유심히 읽고 있다.
ⓒ 김현수
우리는 약 15분을 걸어 창경궁에 도착했다. 입장료는 1000원이었는데 계산을 하려고 하자 짐(Jim)이 나의 입장료를 내주었다. 나는 뜻밖의 선물에 고마움을 전하며 그들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명정문을 지나 명정전에 다다르자 로빈은 안내판을 유심히 읽기 시작했다. 왕이 거쳐 했던 곳이라고 하자 그들은 신기한 듯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창경궁 넓은 마당 한 켠에 전통놀이 체험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팽이, 제기차기, 널뛰기 등이 있었는데 이 친구들은 특히 청동으로 만든 항아리에 화살을 던져 넣는 놀이인 투호를 좋아했다. 리차드(Richard)는 몇 번의 시도 끝에 항아리 속에 화살이 들어가자 연신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웬디(Wendy)는 널뛰기를 보고 시소와 비슷하다고 하며 연습 삼아 뛰어보기도 했다.

우리는 많은 곳을 돌아보지는 못했다. 나는 식물원, 호수 등 다른 곳도 소개하고 싶었으나 친구들이 아침을 거르고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창경궁을 나왔다.

할머니 5000원만 깎아주세요~

▲ 필리핀 친구들이 전통놀이인 투호를 즐기고 있다.
ⓒ 김현수
우리는 점심메뉴로 감자탕을 선택했다. 나는 평소에 자주 가던 감자탕 집으로 그들을 안내했고, 그 친구들은 뚝배기 하나를 뚝딱 해치우고 공기밥 하나 더 시켜먹을 정도로 식성이 좋았다. 식사가 끝난 뒤 일행 중 총무 역할을 맡고 있는 콜린(Colin)은 주인 할머니께 애교를 떨며 말했다

"할머니 우리 많이 먹었으니까 5000원만 깎아주세요."
"아이구 그래, 한국 와서 고생하는데 깎아줘야지."

주인 할머니는 그 모습이 귀여운지 흔쾌히 깎아주셨다. 결국 콜린은 알뜰하게도 5000원을 깎는데 성공했고 나는 이 친구들이 식성뿐만 아니라 생활모습까지도 한국 사람이 다됐구나 생각했다.

이번엔 나도 지갑을 꺼내려는데 프레지던트인 로빈(Robin)이 음식 값을 계산하려고 했다. 괜찮다는 내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필리핀 친구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내겠다며 나를 말렸고, 이번에도 고마움만 가지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서는 한국사람 못지않은 따뜻함과 구수함이 배어 나왔다.

▲ 필리핀 친구들과 점심으로 감자탕을 먹고난 후. 왼쪽 두번째가 콜린(Colin). 오른쪽이 헨리(Henry)
ⓒ 김현수
음식을 먹고 난 뒤 나는 친구들을 노래방으로 안내했다. 콜린은 이번에도 아줌마 기질을 발휘해 1시간 값으로 2시간을 얻어내는 능력을 보여줬다. 못 말리는 살림꾼이었다. 2시간동안 필리핀 친구들은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려는 듯 열심히 노래와 춤을 추며 즐거운 오후를 보냈다.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노래방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낸 뒤 밖으로 나왔다.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그들은 이제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헨리(Henry)는 함께 찍은 사진들 중 하나를 내게 선물로 주었다. 그들은 일일이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또 오늘 함께 해서 너무 반가웠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 노래방에서 시간을 보낸 뒤 즐거워하는 필리핀 친구들.
ⓒ 김현수
저녁이 되자 대학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모두들 추석 연휴를 여유롭게 즐기려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 내가 만났던 필리핀 친구들도 있었다. 민족의 명절 한가위. 그들에게 추석은 우리가 느끼는 만큼 의미 있는 날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해를 보내고 그 결실을 기다리듯 그 친구들에게도 이 계절은 마음속에 품었던 소중한 꿈들이 이뤄지길 바라는 시기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타국에서 보내는 첫 추석이 그 친구들에게 즐겁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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