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는 수업시간마다 퀴즈놀이를 한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수업을 즐겁게 해보려는 마음에서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호기심이란 영어단어가 문제로 제시되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세 가지 힌트를 주었다.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저는 이것이 많은 학생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것만 있으면 누구나 즐겁게 공부할 수 있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 아이가 돈이라고 대답을 했다. 뜻밖의 대답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이유를 설명해보라고 했다.

"돈이야 다 좋아하잖아요. 그리고 돈이 있어야 학원도 다니죠. 돈이 많으면 엄청 예쁜 대학생 누나를 가정교사로 둘 수 있으니까 즐겁게 공부를 할 수 있고요."

"말이 되네. 그런데 네가 돈이 많으면 선생님이 왜 좋아?"
"예? 그건…."

아이는 끝내 대답을 찾지 못하고 멀뚱하게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제자의 돈을 탐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잠시 후, 나는 칠판에 나무를 한 그루 그려놓은 뒤 아이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사람이 누구죠?"
"뉴턴입니다."

"그럼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도 알겠네요?"
"예. 사과나무입니다."

"맞아요. 뉴턴은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지요. 그런데 단순히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것은 아니에요. 자, 보세요. 사과가 이 나무에서 떨어졌는데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사과를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요?

이렇게 조금 더, 조금 더. 그래도 사과는 땅에 떨어지겠지요? 그렇다면 이렇게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날 만큼 아주 높은 곳에서 사과를 떨어뜨린다면 사과는 어떻게 될까요? 사과가 과연 땅에 떨어질까요?"

아이들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답을 말해줄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스스로 답을 찾아내는 즐거움을 빼앗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눈치를 보아하니 아이들은 이미 답을 알아낸 것 같기도 했다. 하긴 그럴 법도 했다. 뉴턴도 호기심이 발동하는 순간 천재가 되었을 터이니 말이다. 이제 퀴즈의 답을 말해줄 차례였다.

"선생님은 호기심이란 말을 참 좋아합니다. 지금 호기심이 잔뜩 묻어 있는 여러분의 눈이 얼마나 예쁜지 하세요? 선생님은 대학시절에 멋진 노교수님으로부터 문학 강의를 들었는데 어찌나 공부가 재미있던지 시험공부를 따로 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때 만약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했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겠지요. 오늘 퀴즈의 정답은 호기심입니다. 돈이 아니라."

요즘 자녀들의 사교육비 때문에 말들이 많다. 정부도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는 모양이다. 욕먹을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자식을 키우면서 사교육비 문제로 고민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아이들과의 퀴즈놀이에서 그랬듯이 문제의 정답을 돈에서 호기심으로 바꾸어주면 되는 일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소화할 여유도 없이 늦은 밤까지 학원가를 전전해야 하는 아이들이 과연 지식에 대한 참된 호기심이나 목마름이 있을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더욱이 부족한 과목을 보충하는 차원이 아닌, 학교에서 공부할 내용을 한 학기 앞서 미리 배우는 식의 이른바 선수학습은 비싼 돈을 들여 아이들의 호기심만 앗아갈 공산이 크다.

가끔 아이들의 눈을 들여다 볼 일이다. 지식에 대한 내적 동기인 호기심이 없이 공부하는 기계로만 전락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덧붙이는 글 | <경향신문 교단일기>에 기고한 글에 내용을 조금 보탰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