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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자료사진).
ⓒ 이종호
4년 전의 일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에 담임선생님과 함께 반 아이 전체가 서울에 가서 지금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이하 '박 이사')를 만나고 돌아왔다. 아들은 가서 직접 박 이사를 보고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며 가족에게 자랑을 했다.

그 당시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교육철학이 남달랐다. 전태일·함석헌·장준하 등의 자료와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공책에 잘 정리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보고 담임을 정말 잘 만났다고 아들에게 말해주었다. 박 이사와의 만남도 담임선생님의 교육철학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아들은 기부운동에 대해 말했다. 그 당시 박 이사는 아름다운가게를 운영하며 수입의 1% 나누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었는데, 그에 관한 이야기가 아들에게 큰 감명을 준 것 같았다. 아들은 그를 '박원순 변호사'라고 부르며 그 만남을 가슴속에 소중하게 간직했다.

희망제작소에 전념하겠다더니... 혹시?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요즈음 박 이사의 이름이 신문에 자주 거론되고 있다. 나도 아들도 무척 존경하기에 그에 관한 기사가 나오면 어떤 내용인가 관심을 두고 봤다. 여권에서 그를 대권후보 영입 대상에 포함했다는 것과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본인의 말이 주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제(4일) <경향신문>에는 '대선서 어떤 일 할지 고민'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서 박 변호사는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만큼 정치에 맞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음 대선에서 후보들이 감성적 논쟁보다 정책 중심의 경쟁으로 가도록 만드는 것에 그가 관심을 많이 두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를 보며 그의 말이 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해석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워낙 우리나라 정치형태가 엉망이니 직접 뛰어들어가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낸 것으로도 읽힌다. 이전에 완강하게 정치 참여를 반대하고 오로지 현재하고 있는 희망제작소 일에 전념하겠다는 발언과는 분명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심지어 희망제작소 측의 부인에도 일각에서는 희망제작소가 박 이사의 대권 도전에 대비한 베이스캠프가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삼성의 지원은 어울리지 않는다

어제 <한겨레신문>은 내가 모르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김기원 방송대 교수의 '걸리버 삼성과 진보세력'이란 제목의 기고문인데, 삼성이 박 이사의 희망제작소에 7억원을 지원했고, 더 큰 돈이 드는 사업도 서로 협의한 바 있다는 내용이었다. 김 교수는 운영상의 어려움을 주로 삼성에 기대는 연구소가 얼마큼 독립적이고 진보적일 수 있을지 걱정했다.

김 교수는 박 이사가 재벌과의 생산적 긴장을 이야기하지만, 근년에 그의 활동에서 긴장된 관계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요즘 진보의 위기는 도덕적 우위가 흔들린 데서부터 시작된 것이니, 진보세력이 우선 삼성의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글을 읽으면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물론 희망제작소를 운영하는 데에 많은 돈이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위의 내용은 그동안 참여연대에서 시민운동을 오랫동안 하면서 사회정의와 균형잡힌 경제정책을 위해 애써온 박 이사의 평소 언행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지난주 <한겨레신문>은 국민에게 존경을 받고있는 박 이사의 글과 사진을 실으며 2006년 수습사원 모집 광고를 냈다. 박 이사는 그 글에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만들어가려는 젊은이에게 한겨레의 문을 두드리라고 권고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신선한 광고를 본 젊은이들이 호감을 갖고 많이 응모를 했을 것이다.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혹자는 이렇게 말할는지 모른다. 그렇게 국민에게 존경을 받고 있고 오랫동안 인권변호사로 약자의 편에 서서 운동을 해왔는데 당연히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대선에 출마해야 된다고 말이다.

혹자는 또 이렇게 말할는지 모른다. 요즈음 자본주의 시대에 건전한 취지의 시민운동이라 하더라도 일정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대자본이 필요하니 당연히 재벌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이다. 언제까지 삼성과 등을 돌리고 살 것이냐며 이참에 대화합을 모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이다.

요즈음 신문에 오르내리는 박 이사에 관한 기사에서 불안한 느낌이 든다. 그동안 그가 쌓아왔던 유·무형의 아름다운 꿈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 어렵고 힘든 시절 우리 앞에 서서 사회정의와 민주화를 외쳤던, 그래서 더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그의 모습이 조금씩 빛을 바래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물론 이것은 기우일 수 있다. 박 이사 당사자는 여전히 옛 이미지 그대로 우리 곁에 서서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데, 주위에서 쓸데없이 뒤흔들고 중상모략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제발 그것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귀가 큰 박 이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쓴소리에 틀림없이 귀를 기울여줄 것임을 나는 믿는다. 이 모든 충고가 진심으로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노파심에서 나오는 소리임을 그는 겸허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는다.

나의 소망을 말한다. 박 이사가 지금까지 그가 살아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생활했으면 좋겠다. 늘 어려운 사람 편에 서서 그들의 행복을 위해 헌신했던 '시민운동가 박원순'의 모습을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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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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