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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 지리산도 단풍이 드네.
오매 지리산도 단풍이 드네. ⓒ 서종규
짧지만 긴 시간을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내일 모레가 추석인데 지리산 천왕봉에서 흘러내리는 능선에 단풍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어찌 그리 예쁜지 그 황홀함에 빠져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오-매 단풍 들겠네
추석이 내일모래 기둘리리
바람이 잦이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 김영랑 시 '오매 단풍 들겠네' 중


누이의 마음과 같이 사랑스런 단풍이 한 발 한 발 지리산 천왕봉에서 걸어 내려가고 있는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아직은 만산홍엽이 아니었습니다. 푸른 산을 차츰 수놓아 가는 저 단풍들은 내 삶의 모자이크처럼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어찌 그리 예쁜지 그 황홀함에 빠져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어찌 그리 예쁜지 그 황홀함에 빠져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 서종규
지리산 등반은 엄청난 체력 소모가 뒤따릅니다.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 보통 5~6시간 걸리지요, 내려가는 길도 보통 4~5시간 소요됩니다. 그러니 그 피곤한 몸을 주체할 수도 없었지만, 그 피곤한 생각마저 앗아가 버린 저 단풍의 황홀은 분명 산을 오르는 기쁨으로 바꾸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고속도로와 국도, 모든 길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쁨이 고향을 향하여 날아가고 있습니다. 추석을 준비하는 대한민국 모든 이의 마음은 맑은 하늘의 보름달만큼이나 밝겠지요. 그 밝은 마음들에 저 단풍을 한 아름씩 보내드립니다.

수줍은 단풍을 보자 폭포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더욱 신이 났습니다.
수줍은 단풍을 보자 폭포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더욱 신이 났습니다. ⓒ 서종규
10월 2일 밤 산을 좋아하는 ‘풀꽃산행’팀 4명이 지리산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설악산에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지리산도 천왕봉을 중심으로 하는 정상에 단풍이 들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말이죠.

아는 사람 집에서 하룻밤을 신세지고, 3일 오전 7시에 백무동에서 한신계곡을 따라 천왕봉을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단풍은 계곡 옥빛 물에 비친 제 모습을 보려고 애를 씁니다.
단풍은 계곡 옥빛 물에 비친 제 모습을 보려고 애를 씁니다. ⓒ 서종규
지리산 아랫부분은 아직도 녹음이 청청하였습니다. 간혹 붉은 단풍나무들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벚나무며 도토리나무들의 낙엽이 떨어지기는 하여도, 가을을 준비하는 나무들의 모습은 아직도 푸른 꿈을 하늘에 날리고 있었습니다.

지리산의 계곡은 어느 골짜기를 가도 항상 시원함을 더해 줍니다. 때로는 폭포로 떨어지는 물줄기며, 바위틈으로 흐르는 물줄기며, 옥빛을 띠고 고여 있는 웅덩이며, 모두 우리들의 마음을 씻어 주는 자연의 혜택이었습니다.

투명한 하늘을 향하여 펼쳐진 단풍들의 색상은 더욱 선명하였습니다.
투명한 하늘을 향하여 펼쳐진 단풍들의 색상은 더욱 선명하였습니다. ⓒ 서종규
단풍이 우리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정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8부 능선정도였습니다. 저기 저 지리산 능선엔 모자이크처럼 수놓아진 붉고 푸른 단풍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등산길은 울창한 숲 속으로 나 있어서 계속 바라볼 수는 없었습니다.

천왕봉에 오르는 길은 너무 맑고 투명했습니다. 그 맑고 투명한 하늘 아래 서서히 물들기 시작한 단풍들이 능선 양옆으로 펼쳐져 우리들을 맞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남해안의 산들이며, 북쪽으로 덕유산의 유려한 능선도 한 눈에 들어 왔습니다.

가을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 천왕봉에 와 있었습니다.
가을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 천왕봉에 와 있었습니다. ⓒ 서종규
첩첩이 겹쳐진 능선들은 점점 더 멀어지면서 환상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푸른 기운을 마음껏 우리들에게 부어 주느라고 쨍쨍한 햇살을 연거푸 내리 꽂는 것 같았습니다.

지리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모두 힘겹게 산을 오르는 듯했지만 얼굴엔 맑은 하늘이 담겨 있었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국경일을 맞아 가족 단위로 가을 산을 찾은 것 같습니다.

낮 12시 30분, 우리들은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습니다. 천왕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능선엔 이제 붉은 단풍들이 자리 잡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온 산이 붉게 물들은 만산홍엽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갓 물들기 시작한 단풍들이 더 사랑스럽게 우리들의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저 단풍의 황홀은 분명 산을 오르는 기쁨으로 바꾸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저 단풍의 황홀은 분명 산을 오르는 기쁨으로 바꾸기에 충분하였습니다. ⓒ 서종규
저 아래 촛대봉이며 토끼봉, 반야봉, 멀리 희미하게 다가오는 노고단까지 이어지는 지리산 능선에서 시작되는 단풍이 서서히 아래로 걸어 내려가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중봉과 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더욱 울긋불긋한 단풍이 어우러지고 있었습니다.

몇 번의 태풍과 폭우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금년의 농사엔 큰 기복이 없었던 것이, 좋은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추석을 바로 앞둔 우리 논밭의 곡식들이 풍요롭게 익어가고 있는 모습이 붉게 물들고 있는 지리산 능선의 단풍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리산 중봉에 펼쳐진 단풍의 발길이 아래로 걸어 내려갑니다.
지리산 중봉에 펼쳐진 단풍의 발길이 아래로 걸어 내려갑니다. ⓒ 서종규
투명한 하늘을 향하여 펼쳐진 단풍들의 색상은 더욱 선명하였습니다. 햇살을 받아 속살까지 내보이는 단풍이 간질거리자 하늘은 웃으며 출렁이는 것 같았습니다. 저 선홍의 붉음도 그렇게 아름다움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천왕봉에 와 있었습니다. 천왕봉 정상에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하다’, ‘지리산 천왕봉’이라고 새겨진 표지석 옆엔 기념촬영을 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늘어 서 있었습니다.

햇살을 받아 속살까지 내보이는 단풍이 간질거리자 하늘은 웃으며 출렁이는 것 같았습니다.
햇살을 받아 속살까지 내보이는 단풍이 간질거리자 하늘은 웃으며 출렁이는 것 같았습니다. ⓒ 서종규
천왕봉 표지석 아래 정돈된 바위에 앉아 점심을 먹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우리도 앉아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즐거운 이야기들이 넘쳐납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먹는 점심은 유난히도 맛있습니다.

추석의 밝고 맑은 보름달만큼이나 풍요로운 가을의 기쁨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넘치는 것 같았습니다. 지리산 정상에서 물들어 내려가는 저 붉은 단풍들의 아름다움과 결실의 기쁨이 추석을 맞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누이의 마음과 같이 사랑스런 단풍이 한 발 한 발 지리산 천왕봉에서 걸어 내려가고 있는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았습니다.
누이의 마음과 같이 사랑스런 단풍이 한 발 한 발 지리산 천왕봉에서 걸어 내려가고 있는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았습니다.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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