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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함께 읽기〉책 겉그림
〈신영복 함께 읽기〉책 겉그림 ⓒ 돌베개
경기도 부천에 있는 신학대학원에 다닐 무렵 나는 가끔 온수역 근처에 있는 성공회대학교에 간 적이 있다. 친구 하나가 그곳 신학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까닭도 없지 않았지만 그보다는 신영복 교수를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함이 더 컸다.

그곳 대학교는 다른 대학교에 비해 울타리가 크지 않았다. 건물도 서너 개뿐으로 단순했다. 축구나, 야구나, 달음박질을 하며 맘껏 뛰놀 수 있는 드넓은 운동장도 없는 듯했다. 자유롭게 활개치며 공연할 수 있는 광장도 없는 듯했다. 보이는 것 자체는 그야말로 단조로웠다.

그런데도 학생들과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젊은 학생들은 물론이고 나이 많은 어른들도 오고 갔다. 건물 자체야 보잘 것 없었지만 그 속에 들어찬 사람들, 이른바 교수들이 그만큼 영향력을 지닌 까닭이었다. 그 한가운데에 신영복 교수가 있었으니, 그야말로 그는 그 숲 속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나는 신영복 교수를 한 번도 만나 뵙지 못했다. 청강을 하려고 해도 강의시간에 때를 맞추지 못했다. 물론 내가 다니는 대학원의 수업 시간을 비우고서 한 번쯤 들어봄직도 좋았겠지만 그때는 그렇게 간이 크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야 많이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만 꼭 얼굴을 뵙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그분이 쓴 책을 통해 그분을 만나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책 속에서 그분을 만나고, 그분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느새 그분의 얼굴을 대하는 듯 황홀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더불어 숲 1·2>, <나무야 나무야>, <엽서>, <강의>가 그러했다.

사실 내가 처음 접한 책은 <더불어 숲 1·2>이다. 그것은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그곳의 채취와 역사, 문화와 종교,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통해 무엇을 내다보며 함께 연대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준 책이었다.

그것을 먼저 읽은 뒤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대했다. 무슨 책이든 한 번 깊은 향취를 맛보면 그가 쓴 책들을 모두 섭렵해보고픈 마음이 들지 않던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그랬고, <나무야 나무야>, <엽서>, 그리고 <강의>도 그랬다.

그 책들 모두는 이제껏 펴낸 책들의 핵심이라 생각되는 <강의>에서 역설한 바와 같이 '관계론'을 중심에 두고 있었다. 앞선 한 사람이 뒤이어 따라오는 아홉 사람의 발걸음을 이끌기보다는 비록 더디더라도 함께 발을 맞춘 열 사람의 발걸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홀로 우뚝 선 나무보다는 모든 나무들이 키 재기 하지 않고 오순도순 한마음으로 어울려 아름다운 숲을 이루는 삶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신영복 함께 읽기>(돌베개·2006)는 신영복 교수의 인간적인 면을 더 깊이 알 수 있는 책이었다. 그가 여태껏 세상에 내 놓은 책들이 어떤 배경 속에서 흘러나오게 되었는지를 알려 주고 있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의 신영복과 대학생 시절의 신영복은 어떠했는지, 그 주변 어린 친구들과 동료들, 그리고 선배와 후배들은 어떻게 신영복을 느끼고 있는지, 20년 20일 동안 감옥에 갇혀 지냈던 죄수신분으로서 신영복은 어떠했는지, 감방 동료들에게 신영복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출옥 후 20년 동안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과연 그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었는지, 그 제자들은 신영복을 향해 뭐라 말하는지 등을 들을 수 있다.

"이 시절 그는 별로 말이 없었다. 예전에 즐겨하던 예지 넘치는 유머나 해학도 없었고, 사건과 관련된 언급도 별로 없었다고 기억된다. 그는 이미 삶의 문제가 아닌 죽음의 문제와 대면하고 있는 듯 보였고 언어 너머 침묵에 드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같은 방에 수감된 병사들의 한 많은 사연이나 억울한 하소연을 들어주는 데는 후했고, 억울하게 중형을 받고도 변호사 구할 형편이 못되는 병사들을 위하여 '항소 이유서'를 써 주는 데는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289쪽)

"그렇지만 내가 정작 그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것은 단지 그의 책에 담겨 있는 성찰과 사상의 깊이 때문만이 아니다. 그와 한솥밥을 먹으며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발견한 신영복은 그의 책만을 읽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같은 도사나 도인이 아니라 가장 평범하고 성실한 생활인이다. 그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여럿이 함께 담소를 나눌 때 가장 재미있는 농담을 던지는 사람이고, 함께 자장면을 시켜 먹고 나서는 누구보다 먼저 자리를 치우고 청소를 하는 사람이다. 그의 그런 모습은 그의 글이 세속을 초월한 도사의 잠언이 아니라 실천하는 생활인의 진솔한 자기표현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349쪽)

"종교는 인간의 속 깊은 곳을 넘나드는 것이다. 통혁당의 활동 속에서 인적이 없는 새벽길을 오간 그런 삶을 걸으시면서 내면의 여행을 깊이 하신 선생님은, 분명 종교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예비 사제들인 신학원생들의 신부 수업에 가장 적합했던 곳이 바로 합수리 농촌야학의 연장인 선생님의 합수리 야외 수업장이었다. 견해가 다른 이들을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했고, 몸에 상처를 입히면서까지 자신을 보호해야 했던 사람들의 속내를 깊이 헤아릴 줄 알아야 하는 예비신부들의 수업은,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다." (356쪽)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신영복 선생이 보여준 면면들이 너무나도 다채롭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그가 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진정 한 얼굴만을 내비치고 있을 뿐이다. 그의 실천적인 삶, 그것이 곧 얼굴로, 그리고 가르침으로 나타난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던지는 말과 내 삶이 일치하는지, 깊이 반성하게 된다. 이 세상의 선생은 많되 참된 스승이 없는 까닭은 말만 무성할 뿐 실천적인 행함이 뒤따르지 않는 까닭에서다.

이는 교회와 교인들을 돌보며 설교를 하고 있는 목사도 다르지 않다. 목사는 그야말로 무수한 설교 곧 말을 쏟아 낸다. 하지만 진정으로 실천하는 목사는 얼마나 될지 짐작할 수 없다. 나도 그 축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아무쪼록 이 책을 통해 신영복 선생의 얼굴을 다시 뵐 수 있어서 기쁘다. 그가 보여준 모습은 그저 글 꾀나 쓰고 말 꾀나 하는 나부랭이 선비와 전혀 다르다. 그야말로 한 시대를 등에 짊어지고 고뇌하며,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실천적인 스승이다. 말과 행동이 그의 얼굴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어찌 그분의 얼굴을 닮고 싶지 않으랴.

신영복 함께 읽기

강준만 외 지음, 돌베개(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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