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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학교는 정규학교로 인정받지 못해 대학진학에 불이익을 당하는 등 차별을 겪고 있다. 사진은 대만 국기가 펄럭이고 있는 서울 연희동 한성 화교학교.
화교학교는 정규학교로 인정받지 못해 대학진학에 불이익을 당하는 등 차별을 겪고 있다. 사진은 대만 국기가 펄럭이고 있는 서울 연희동 한성 화교학교. ⓒ 우먼타임스
[이재은 기자] 화교들은 말한다. 자신들은 반은 한국인이고 반은 중국인이라고. 반면 한국인들은 말한다. 화교는 한국 땅에 사는 중국인일 뿐이라고.

한국 국민과 동일하게 세금을 내며 백 년 이상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이방인으로 맴돌고 있다. 화교 학생의 대학 입학을 막고 귀속 재산에 화교자본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던 화교압박정책의 잔재들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화교 선거권 인정, 차이나타운 활성화, 국가인권위원회의 화교학교 학력 승인 권고 등의 움직임 속에서 화교 사회는 흠뻑 고무된 분위기다. 아직 넘어야 할 험난한 산은 많지만, 언젠가는 자신들도 대한민국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는 한국 화교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화교 여성들의 삶을 조명해 봤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화교 인구는 약 2만1천명이다. 6·25전쟁 이전에는 8만명이 넘는 화교가 있었지만 이승만정부 시절 차별적인 화교압박정책으로 인해 많은 화교들이 다른 국가로 이주해 갔다. 남아 있는 화교들은 주로 중국음식점, 한약방, 약국, 여행업 등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상당수의 화교들은 "한국만큼 화교가 살기 어려운 나라는 없다"고 말한다. 3대째 중국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화교 여성은 "최근 한국 정부가 중국과의 무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화교를 가교로 활용하고자 하는데 오랜 세월 홀대받고 차별당한 한국 화교들 중 누가 진심으로 세계 화상(華商)들에게 한국으로 오라고 설득할 수 있겠는가"라며 "한국만큼 화교에게 폐쇄적인 나라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주민등록증 발급 안 되고 화교학교 학력 인정 안 돼

이들이 한국을 살기 힘든 나라로 손꼽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주민등록증 발급이 되지 않아 겪는 어려움, 화교학교 학력 불인정, 화교들을 차별하는 각종 정부 정책들이다. 예를 들어 화교들은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지 않아 인터넷 쇼핑몰 창업이 어렵다. 일부 홈페이지는 가입 절차에 내국인과 외국인을 구분하여 가입을 하도록 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홈페이지는 사용 중에 실명 확인을 하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 입력 단계에서 항상 오류 창이 뜬다.

화교학교의 학력 불인정 역시 화교들이 토로하는 커다란 불만 중 하나다. 현재 화교학교는 학력을 인정받는 정규 학교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국내 대학에 진학하려면 검정고시를 봐야 한다. 한국 학교로 전학도 불가능하다.

더욱이 대부분의 대학들은 외국인 특별전형 자격 요건을 부모가 모두 외국인인 '순수 외국인'의 자녀로 제한해 놓고 있어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화교들은 자녀의 대학 진학을 위해 위장이혼을 하기도 한다.

이 같은 위장이혼은 화교와 한국인의 이혼율을 높인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서울 연희동에 있는 한성화교학교 입학부처 관계자는 "많은 화교 학생들이 한국 대학으로 진학하고 싶어 하다 보니 이 같은 편법이 이용되고 있다"며 "위장이혼이 실제 이혼으로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반면 학생들은 학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 데서 오는 불편함에 대해 '소속감 부재'를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한성화교학교에서 만난 리치우(가명·16) 학생은 "학력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학력 인정이 되지 않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학생으로 취급받지 못한다"며 "뭔가 문제가 있는 집단의 아이들로 보이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

많이 완화됐지만 여전히 화교들을 억제하는 규제들도 이들이 한국 사회에 융화되지 못하는 이유다. 중국인 채용 절차 간소화, 창업자금 지원 및 금융거래 불편 해소, 화교학교의 학력 인정, 화교 기업인 출입국 절차 간소화 등 제도 개선 없이 화교들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기는 힘들다고 화교들은 전한다.

한편, 위축돼 왔던 화교들의 위상을 강화하는 동시에 각국 화교들의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지난해 세계화상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했는가 하면, 지난 2001년 인천시 차이나타운을 포함한 월미도 일대를 관광특구로 지정, 120억원을 들여 차이나타운 활성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내놓은 '인천 차이나타운의 활성화 방안'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 방안은 차이나타운 내 중국 인력 채용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하고, 화교 영주권자에게는 창업자금 지원 혜택을 부여하는 등 제도 지원을 강화해 국내 경제 활성화와 국제 화교자본 유입을 유도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외국인도 아니고 내국인도 아니고
여성교육지원 '사각지대'

최근 화교와 한국인들 사이의 결혼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 문제를 도와주는 단체나 프로그램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결혼이주여성들의 국내 정착을 돕기 위한 결혼이민자지원센터(여성가족부 위탁)가 있지만 화교는 결혼이주여성이 아니기 때문에 원칙상 지원 교육 대상에서 제외된다.

화교 여성들은 대부분 자신이 자란 지역사회에서 자생적으로 한국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터득해 가기 때문에 막상 한국 남성과 결혼했을 때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혼란을 경험한다고 호소했다.

서울 명동에서 중국집을 운영하고 있는 한 화교는 "한국인은 화교를 '한국에 대해 잘 아는 외국인'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화교들은 초·중·고교 모두 화교학교를 나오고, 화교들끼리 어울리며 살아왔기 때문에 한국 문화나 한국 정서에 대한 인지 수준이 낮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자녀의 대학 입학을 위한 위장이혼 등을 포함한 이혼율이 크게 증가하고 있어 화교 여성들의 눈높이에 맞는 결혼 정착 프로그램, 자활 및 취업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편 화교 여성계 내부에서는 차세대 여성 리더를 육성하는 모임과 화교 여성들 간의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과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담도경 서울교대 평생교육원 교수(화교 3세)는 "화교 인구 감소, 젊은 화교들의 개인주의 성향 증가 등의 이유로 끈끈한 네트워크를 자랑했던 모임들이 정체되고 있는 경향"이라며 "화교의 정체성을 잇고 각국 화교들 간의 네트워크를 활성화할 수 있는 차세대 리더를 키워내는 것이 화교 사회의 과제"라고 말했다.

현재 화교 여성들의 네트워크는 친목을 다지는 수준의 '화교부녀회'와 한국 남성과 결혼한 화교 여성들의 모임인 '매화동심회' 등이 있다.


한국에서 성공한 화교여성 조미옥 (주)아시안푸드 대표
'어린 나이-외국인신분-여자'... 약점 딛고 강한기업으로

"어리고, 외국인인데다 여자라는 세 가지 약점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조미옥 (주)아시안 푸드 대표(36)는 중식 패밀리 레스토랑 '샹하이 문', 캐주얼 레스토랑 '뮬란', '샹하이 댈리' 등을 운영하고 있는 중식 프랜차이즈 사업가다. 한국 화교 여성으로는 드물게 성공한 케이스로 손꼽힌다.

그는 화교 3세로 부모가 물려준 중식당을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 프랜차이즈 중식당으로 변신시켰다. 부모와 형제들이 평생을 모아 번 돈으로 투자한 2백여 평 규모의 식당이 건물주의 부도로 경매 위기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식당 경영에 뛰어들었다.

"당시 제 나이 스물넷이었어요. 얼마나 어려요. 하지만 돈을 벌어야 했고, 식당도 구해야 했기에 잘 나가는 메뉴들을 분석하면서 한국인들이 원하는 메뉴 세트를 개발했죠."

다행히 노력이 결실을 맺어 식당을 다시 찾을 수 있었고 안산에서 제일 큰 중식당으로 자리 잡았다. 식당이 안정되자 그는 대형 마트와 백화점 담당자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중식당 입점을 제안했다. 하지만 ‘어린 외국인 여자’라는 꼬리표가 항상 그를 따라다녔다.

심지어 식당에서도 수표로 계산을 하려고 외국인등록증을 내밀면 식당 주인의 시선이 차갑게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주민등록증처럼 생긴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고서야 비로소 한국 화교로서 정체성을 찾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특히 은행에서 대출받을 때, 건물을 구입할 때는 한국에서 화교 여자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절감했다.

"소유권 제한으로 주택과 상가 구입하기가 어려워요. 사업을 하기 위해 대출을 받으려면 담보나 한국 남자 신원보증인이 있어야 하는데 화교사회에서만 성장한 여자들이 한국 남자를 신용보증인으로 세우기란 하늘에 별 따기죠."

화교였기에 감당해야 했던 설움은 모든 직원을 사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로 승화됐다. 적어도 자신과 한솥밥을 먹는 화교들은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재력을 갖춘 화교 사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오기가 생긴 것.

"어느 날 보니 우리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화교)들에게 꿈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사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었어요."

현재 그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식당의 점장은 대부분 그와 함께 일했던 화교들이 맡고 있다.

조 사장의 또 다른 꿈은 ‘진짜 차이나타운’을 만드는 것이다.

화교들의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한국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발하고, 급조한 타운이 아니라 화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삶의 터전을 일구고, 그곳에서 여러 세대가 삶을 풍요롭게 가꿀 수 있는 차이나타운. '화교의, 화교를 위한, 화교에 의한' 차이나타운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는 힘과 자본을 가진 화교 여성이 되는 것이 바로 그의 두 번째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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