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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암사 들머리 계곡길.
ⓒ 최성민

'선암사'는 고색창연한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대표적인 옛 절로 사랑을 받아왔다. 선암사에 대한 사랑은 불교 신도보다는 매스컴으로부터 정보를 얻는 여행객이나 일반 방문객들로부터 쏟아져 왔다.

한국의 사찰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중건불사로 '대규모, 호화'를 지향하는 마당에 선암사는 그만큼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오고 있는 절로 인식돼 왔고, 이 점이 '옛 것' 또는 '우리의 원초적인 고향'을 찾는 대중정서에 호응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선암사에 대한 이런 인식은 상당 부분 사실과 거리가 있다. 즉 '고색창연'에 대한 선망을 안고 선암사에 가는 사람들은 이색적인 모습에 당혹해해야 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여행이라는 것이 늘상 멋진 것, 황홀한 풍치, 맛난 음식, 걸죽한 문화라든지 하는 부드러운 '위안물'들만 만나보는 것이 아니라면, 선암사의 의외의 모습에서 얻는 자극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소재가 될 것이다.

나는 2년여 전까지 거의 주말마다 취재를 위해 선암사에 가곤 했다. 그런데 2년이 흐른 뒤 일주일 전에 가 본 선암사는 너무나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단단한 자재의 건물이나 늘 생명이 넘쳐 흐르는 자연의 모습이 저러건대 하물며 사람의 모습이나 삶은 시시각각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을까 하는 상념에 젖게 했다.

점유권 분쟁이 손님을 맞는다

▲ 선암사 들머리엔 현재 선암사의 내분을 보여주는 플래카드가 요란하다.
ⓒ 최성민
우선 선암사 들머리에서는 서너 개의 맹렬한 플래카드가 방문객을 맞고 있었다. 선암사 운영권을 둘러싸고 선암사 재적승과 서울 총무원이 다투고 있는 모습이었다. 재적승 주장은 총무원이 선암사의 전 주지 등 일부 선암사 중견 승려들과 공모해서 선암사를 총무원 직할체제로 편입해 독재를 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그동안 선암사에서 무수히 발생한 문화재 도난 사건과 일부 선암사 간부들이 연계돼 있고, 그 간부들이 이를 총무원쪽과 결탁해 묻어버리고자 하는 계산에서 지금의 '선암사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주장도 들어있다.

선암사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점유권을 둘러싸고 조계종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여기에 지금 종단 내분으로 사분오열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이런 선암사의 복잡한 내막은 일찍이 선암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막연한 인상에 상당히 당혹감을 얹어주는 일이다.

▲ 새로 난 승선교. 일정한 크기의 돌들을 써서 매끈하게 쌓았으나 예전의 자연미를 잃었다.
ⓒ 최성민
선암사 들머리에 선암사의 문화재를 상징하는 돌다리가 있다. 이름은 '승선교'. 자연석을 아취모양으로 쌓아 자연 건축미의 극치를 이루는 것으로 아낌을 받아왔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3년 전 이 다리를 전부 허물어 보수작업을 했다. 그러나 보수작업을 거쳐 '새로 탄생한' 승선교는 예전의 승선교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어서'복원'이라고 보기엔 어쩐지 이상한 모습이다.

전에는 크고 작은 돌들을 조화롭게 섞어 쌓아서 벽면의 들고남이 매우 자연스럽게 다가왔는데, 새로 난 것은 일정하게 잔 돌들을 촘촘하고 반듯하게 쌓아 말쑥하기는 하지만 인공미를 숨길 수 없다.

보수된 돌다리, 부도밭 뒤에 세워진 차 체험관

▲ 선암사 부도밭.
ⓒ 최성민
▲ 건축중에 선암사 전통차 체험관.
ⓒ 최성민
승선교에 닿기 직전에 선암사 부도밭이 있다. 바로 그 뒤에 지금 국비와 순천시 예산 30억원을 들여 '전통차 체험관'을 짓고 있다. 이 또한 '새로 짓거나 고치지 않아(물론 보수는 하지만)' 좋게만 보였던 선암사의 인상과는 거리가 있는 일이다.

선암사엔 5천여평의 차밭이 있고 내가 수년 전부터 선암사의 차에 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 이후 선암사 차에 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매우 커졌는데, 선암사는 이참에 전통차 체험관을 지어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좋은 차로써 대중에게 보시를 하려는 것인지 목적은 알 수 없다.

다만 절집의 차는 '선다일미'의 차원에서 스님들의 참선수행을 위한 보조수단임에 본분이 있다. 그러나 선암사에서 동안거나 하안거를 하고 있다는 소식은 끊어진지 오래다. 참선수행의 전당인 선암사의 칠전선원은 늘 비어있다.

지금 고대광실로 짓고 있는 선암사 전통차 체험관을 보면, 차가 절집 자체의 수요에도 부족할 정도로 스님들의 참선수행이 진지해야 할 절집 본연의 모습과 퍽이나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것이 주는 공허감의 크기는 오늘의 선암사가 갖는 실재와 허상의 차이만큼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참선수행의 요람이었던 선암사 칠전선원. 지금은 겨울과 여름철 마다 있어야 할 동안거 하안거 마저 끊긴 채 정적에 싸여 있다.
ⓒ 최성민
▲ 선암사 차밭. 칙덩쿨로 덮여 쇠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최성민

덧붙이는 글 | * 선암사 가는 방법

호남고속도로 선암사(승주)나들목으로 들어가서 핸들을 틀지 않고 이정표를 따라 곧바로 3km를 올라가면 닿는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선암사까지는 5시간 정도 걸린다. 기차로는 순천에서 내려서 간다. 순천역에서 선암사까지 시내버스가 다닌다. 선암사 주변에 식당과 민박집 등 숙식시설이 많다. 선암사 앞 상사호 호숫가에 '호텔 아젤리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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