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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07 School Calendar 1학기 내용
2006-2007 School Calendar 1학기 내용 ⓒ 강희정
미국 학교에서는 가을에 첫 학기를 시작한다. 학기가 시작되면 처음에 1년간의 학사 업무 일정표를 나누어 준다. 아이들이 받아온 연간 일정표에는 학교 가지 않는 날과 겨울 방학과 봄 방학, 그리고 6월 초에 시작되는 여름 방학이 나타나 있다.

일정표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날들이 표시되어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수업을 늦게 시작하는 날이 있고, 학부모 면담 후에 쉬는 날도 있으며, 학생들은 쉬고 선생님들만 일하러 학교에 오는 날도 있다.

학교의 연간 일정이 개별 학교 단위로 편성되지 않고 지역 교육구에 따라 결정되는데,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속해있는 교육구에서는 1년에 두 학기에 걸쳐 5일 간의 ‘학교 늦게 가는 날’(Late start day)이 있고, 학기 별로 하루씩 ‘학부모 면담 후 휴일’(Teacher conference compensation day)이 있으며, 2학기가 시작되는 첫날은 ‘선생님들 일하는 날’(Teacher work day)로 되어 있다.

이런 날들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일까? 학생들이 학교를 늦게 오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들이 쉬도록 하는 데에 그 뜻이 있다면 왜 방학 기간 중에 그것들을 포함하지 않은 것일까?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이런 날들이 왜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하고 그러려니 하고 보통 넘긴다. 그런데 이런 질문들은 미국 학교와 한국 학교 간의 차이를 이해할 때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2006-2007 School Calendar 2학기 내용
2006-2007 School Calendar 2학기 내용 ⓒ 강희정
먼저, ‘학교 늦게 가는 날’(Late start day)을 살펴 보자. 이 날은 학생들이 두 시간 등교를 늦게 하도록 되어 있다. 학생들이 두 시간 늦게 오는 동안 교사들은 ‘전문성 신장을 위한 시간’(PDT: Professional Development Time)을 갖는다. 바꾸어 말하면, 이 날은 교사 연수를 받는 날이다.

교직에 종사하면서 가르치는 교과목에 관한 지식 외에도 교사들은 여러 가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교사들은 다양한 연수를 받아야 한다. 미국 학교에서는 이러한 연수를 받기 위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을 쪼개거나 혹은 교사가 방과 후에 별도로 시간을 내거나 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해 처음으로 맞는 ‘학교 늦게 가는 날’은 9월 28일 이었고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는 ‘과목별 학업 성취도 평가(Achievement Test)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연수가 있었다. 이 날의 연수를 위하여 전문강사가 초대되고 모든 교사들이 연수를 들으러 학교도서관에 모였다. 학생들이 학교에 오지 않았으니, 교사들은 학생들이 떠들거나 사고 치거나 하는 문제에 신경 쓰지 않고 연수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을 듯싶었다.

아이들 학교에 근무하는 리즈(Liz Schilla) 선생님에 따르면, 이런 연수들이 교사들이 실제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구체적인 문제들을 다루기 때문에 필요 적절하고 아주 유용하다고 한다.

9월 28일 현재, 도서관에서 연수를 받고 있는 선생님들
9월 28일 현재, 도서관에서 연수를 받고 있는 선생님들 ⓒ 강희정
다음으로, ‘학부모 면담 후 휴일’ (Teacher conference compensation day)은 말 그대로 교사가 학부모 면담하느라 보낸 시간을 대신하여 하루씩 쉴 수 있도록 정한 날이다. (사진의 학교 달력에는 No School – Teacher Conf. Time/Conf. Comp Time이라고 되어있다.)

학부모 면담일(Teacher conference day)은 1, 2학기에 걸쳐 두 번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때 주로 학부모들은 선생님으로부터 자기 아이의 학과 과목에 대한 이해 정도나 성적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나 사회성 발달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 자녀의 학교 생활에 대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의 근무 시간이 아침 8시 10분부터 오후 3시 45분까지 라고 한다. 학부모 면담은 교사들이 수업을 끝낸 뒤에 이루어진다. 학부모 면담을 위하여 학생들의 수업 시간을 단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직장이 있는 학부모들이 퇴근 후에 올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기도 하다.

교사들은 학부모 면담을 위하여 이틀 동안 오후 4시부터 시작하여 7시까지 시간을 낸다. 이때 학부모 면담 시간 리스트를 미리 주어 학부모가 원하는 시간을 선택하도록 하되 대체로 한 사람당 15분 이내로 마친다. 한 학급의 학생들은 대체로 20명이 넘지 않는다. 따라서 교사가 이틀에 걸쳐 방과 후에 서너 시간을 내면 모든 학생에 대한 면담을 마칠 수 있다.

학부모들은 선생님과 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지만, 시간은 제한되어있다. 어떤 선생님들은 알람 시계를 옆에 두고 시간을 맞추어 놓아 학부모들이 너무 많은 이야기를 늘어 놓아 시간을 초과하는 것을 방지하기도 한다.

‘학부모 면담 후 휴일’은 이처럼 교사가 업무시간 외에 학부모 면담에 할애한 시간만큼 하루를 휴일로 정하여 보상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선생님들이 1년간 몇 일 일할 것인가에 관한 계약이 체결되어 있다. 연간 계약 근무시간 외에 일하는 시간에 따른 보수가 별도로 주어지지 않는 한, 그만큼 하루를 쉬도록 하며 무보수로 일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사들이 자신이 맡은 업무 내용과 업무 시간을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들이 편안하게 연수를 받고 있는 모습
선생님들이 편안하게 연수를 받고 있는 모습 ⓒ 강희정
끝으로, ‘선생님들 일하는 날’(Teacher work day)은 학생들은 집에서 쉬고 선생님들만 일하러 학교에 나오는 날이다. 위에 제시된 달력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1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의 이틀(8월 29일과 30일)과 2학기가 시작되는 첫 날인 1월 22일이 그것에 해당한다.

이 날은 선생님들이 1학기 또는 2학기를 시작하면서 수업 계획을 세우거나 학생기록카드를 수집하는 등 학기 시작과 관련한 일을 하는 날이다. 선생님들이 수업을 하지는 않지만 이 날은 보수를 받는 근무 시간에 포함된다. 학기를 새로 시작하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나는 것을 감안하여 별도의 시간을 마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더욱 그러하지만, 학기 초는 새로운 학기 준비작업으로 인해 교사들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시기이다. 학기 초 이루어져야 하는 준비작업을 가르치는 일과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업무 부담이 과중하여 신체적, 심리적 부담을 교사가 떠안아야 한다. 이러한 부담을 줄이고 학기 초 준비작업을 따로 할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이 ‘선생님들 일하는 날’이다.

이 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분리하여 학기 준비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한 것은 교사의 부담을 더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준비 작업을 별도로 마친 후에 학생들을 맞이하게 된다면 교사들은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됨으로써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준비되고 잘 짜여진 수업 계획에 따라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어 수업의 질이, 준비 작업 시간이 없는 경우보다 높아질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상대하지 않으면서, 분주하지 않게 학기가 바뀜에 따른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도록 배려하는 것은 단지 교사를 배려하는 것만의 의미가 아니라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시스템 속에 포함된 아이디어라고 볼 수 있다.

취재에 도움을 주신 리즈 선생님
취재에 도움을 주신 리즈 선생님 ⓒ 강희정
이상에서는 연간 일정표에 근거하여 미국의 학교에서 교사들에 대하여 어떻게 제도적으로 배려하는지를 살펴 보았다.

교육 체제나 문화가 서로 다른 우리 나라와 미국의 학교를 두고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현재의 교육 형태를 만들어낸 역사적인 맥락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두 나라의 교육 현실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역사적인 뿌리가 다르면, 콩과 팥이 서로 다르듯이 서로 다른 모습을 띨 수밖에 없다. 두 나라 간에 서로 다른 점에 대하여, 한 쪽의 시각에서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올바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한국과 미국의 교육 체제의 뿌리가 다를지라도, 가르치는 일은 교사의 가장 본질적인 업무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두 나라 모두 가장 확실하게 붙잡아야 할 중심 가지이다. 가장 중요한 가지를 중심으로 다른 비본질적인 가지들을 쳐내는 일들 또한 두 나라가 다 같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사에게 가르치는 일 외에도 다른 많은 부담을 안겨주는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본질에 충실할 수 있는 체제로 바꾸는 노력이 보다 시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국 오하이오 주에 있는 어느 도시의 교육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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