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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딩호 가는 길의 폐허가 된 인가. 사막의 상처처럼 남아있는 풍경
애딩호 가는 길의 폐허가 된 인가. 사막의 상처처럼 남아있는 풍경 ⓒ 최성수

트루판은 뜨겁다 못해 몸이 온통 익어 가는 것처럼 덥다. 그늘만 들어서면 시원한 느낌이 들 정도로 습도가 낮기는 했지만, 오히려 타클라마칸 사막보다도 높은 온도라 정신이 없을 정도다.

더위뿐만 아니라 몸이 지친 탓도 있을 것이다. 밤중에 카슈카르에서 비행기를 타고 우루무치에 도착했고, 다음날 다시 아침부터 잠을 설치며 버스로 트루판으로 이동한 탓이리라.

트루판, 화주(火州)라는 다른 이름이 있을 정도로 온도가 높은 곳이다. 두 번째 트루판 방문이다. 트루판 시내에 내리면서 나는 인간의 판단이란 얼마나 단순한 것인가를 생각했다.

몇 해 전 처음 트루판을 방문했던 기억은 이렇게 덥지 않았다. 공기도 상쾌하고 느낌도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리자마자 혹독한 더위다.왜일까? 곰곰 생각하다 지난 여행 때 트루판에 도착하는 날 아침에 비가 내렸다는 것을 떠올렸다.

일 년에 겨우 20mm 남짓 내린다는 비가 그날 아침에 내렸다. 그리고 사막에는 홍수가 지고, 트푸판은 상쾌했다. 그 첫 여행의 기온이 오히려 특별한 것이었다. 본래 진면목이 이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트루판은 더위 때문에 숨쉬기조차 힘들다.

아이딩호(艾丁湖) 가는 길

자동차가 지나간 길에도 소금꽃이 피어 날리는 애딩호 가는 길
자동차가 지나간 길에도 소금꽃이 피어 날리는 애딩호 가는 길 ⓒ 최성수

포도 덩굴이 가로수를 이룬 길을 지나 트루판 빈관에 여장을 풀고, 나서기 힘든 몸을 마음이 끌고 길을 떠난다.

아이딩호를 향해 출발이다. 여행 일정을 짤 때 아이딩호를 넣자는 내 말에 여행사에서 난색이었다. 관광지도 아니고, 가겠다는 사람도 없고 해서 가기 힘들다는 말이었다. 나는 아무 것도 볼 게 없어도 좋으니 무조건 가겠다고 우겼다. 몇 차례 옥신각신 끝에 일정에 넣기는 했는데 현지 사정에 따라 못 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왜 굳이 아이딩호를 고집했던가? 아이딩호 가는 길 내내 나는 나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그만큼 아이딩호 가는 길이 힘들었다는 뜻이다.

아이딩호 가는 길은 인생과 같다. 처음 트루판 외곽까지는 그야말로 안온한 길이다. 눈부시게 흰 백양나무가 다른 오아시스 도시처럼 이열 종대로 길가에 늘어서 있다. 서로 어깨 겯고 단 한 점의 모래 먼지도 허용할 수 없다는 늠름한 자세로 서있는 백양나무는 아름다움을 넘어 당당함까지 갖추고 있다.

길가로는 수로가 이어져 있고, 그 수로에는 맑은 물이 흐른다. 그 물은 천산의 눈 녹은 물을 끌어들인 것이다. 중국 3대 공정의 하나(만리장성, 경강대운하)인 카얼징이 물의 원천이다.

트루판의 중심은 해발 -60m라고 한다. 천산의 아득한 높이와 트루판의 낮은 해발 차이를 이용해 만년설 녹은 물을 지하 수로로 이곳으로 흐르게 만든 것이다. 그것도 인간의 힘으로 지하 수로를 뚫었는데 그 총 길이가 5000㎞에 이른다니 규모도 놀랍거니와 그런 일을 한 의도가 무섭기까지 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만들면서 세상을 떴을까?

트루판은 인공적으로 만든 수로의 물로 이루어진 인공 오아시스다. 풍부한 물로 주로 포도를 생산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포도가 나는 곳이기도 하다. 밤낮의 일교차가 크고, 사막이라 벌레도 드무니 좋은 포도가 생산될 수 있는 것이다.

트루판 교외의 수로에서 설거지 하는 아이들. 수로가 오아시스의 삶을 가능케 한다.
트루판 교외의 수로에서 설거지 하는 아이들. 수로가 오아시스의 삶을 가능케 한다. ⓒ 최성수

트루판이 돌궐어로 ‘풍요로운 땅’이라는 말이라는데 그 뜻대로 트루판은 물도 풍부하고 과일도 풍부하다. 도시 곳곳이 포도 덩굴이고, 목화밭이고, 옥수수 밭이다. 밀밭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풍요로움은 거기까지다. 도시를 벗어나 무한정 이어진 사막 길에는 풍요와 대조되는 황무지만 존재한다. 황무지로 한없이 달려가는 길이 바로 아이딩호 가는 길이다.

봉고차 비슷한 지프는 냉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후끈후끈한데, 햇살을 가릴 가림 판 하나 없어 우산을 펼쳐 써야 겨우 숨을 쉴 만하다. 차를 타기 전에 산 얼음 생수로 연신 얼굴과 팔에 문지르며 가는 아이딩호 길은 정말숨막히는 아득한 길이다.

가도가도 끝을 알 수 없는 황무지, 낙타 풀만 등성 듬성 돋아나 있고, 폐허가 되어버린 옛 마을들이 군데군데 상처처럼 남아있다. 포장되지 않은 길은 굴곡이 심해 붕 떴다 떨어지는 것이 몇 초마다 이어지는데 길 위로도 소금이 햇살에 말라가고 있다. 앞차가 일으키는 먼지조차 하얀 소금 먼지 같은 아이딩호 가는 길, 그 길을 몇 시간 달리다보면 자신이 그대로 사막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 같은 아득함이 절로 가슴을 짓누른다.

아이딩호,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낮은 땅

해발 -154미터의 애딩호 표지석. 중국에서 가장 낮은 땅, 그곳은 온통 지열의 열기로 가득하다.
해발 -154미터의 애딩호 표지석. 중국에서 가장 낮은 땅, 그곳은 온통 지열의 열기로 가득하다. ⓒ 최성수

좀처럼 닿을 것 같지 않던 아이딩호에 마침내 도착한다. 그러나 거기 어디에도 호수는 없다. 이름만 호수이고 물은 보이지 않는 곳, 해발 -154m의 아이딩호는 위구르어로 달빛의 호수라는 뜻이다.

차에서 내리자, 그래도 차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뜨겁다. 이미 저녁 무렵이 다 되었지만 오히려 더위는 더 심하다. 가만히 서 있어도 몸 아래부터 서서히 불에 달구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호수 입구에 작은 웅덩이를 파 놓고, 트루판 사람 여럿이 목욕을 한다. 물을 만져보니 제법 따끈하다. 염수욕이란다. 짠 호수의 물을 이용해 목욕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환한 미소가 번진다.

호수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들어갈수록 땅이 무르다. 앞서 가던 아내가 갑자기 발을 푹 꺾는다. 뻘밭에 발이 빠진 때문이다. 더 이상 진입 불가다. 하긴 더 가봐야 아무 것도 없다. 아득한 저 끝으로 흰 호수가 바라보일 뿐이다. 그러나 그 흰 호수도 물이 아니다. 소금이다. 쨍쨍한 햇살에 물은 말라버리고, 소금만 남아 제 몸을 말리고 있는 것이다. 신기루처럼 눈앞에 소금밭만 아득하다.

아득히 흰 소금만 제 몸 말리는 애딩호. 겨울이면 호수로 차가 들어가 소금 덩어리를 캐 온단다.
아득히 흰 소금만 제 몸 말리는 애딩호. 겨울이면 호수로 차가 들어가 소금 덩어리를 캐 온단다. ⓒ 최성수

호수에서 되돌아 나오는 사람들이 디딘 발자국마다 순식간에 하얗게 소금 꽃이 피어오른다. 그 소금 꽃이 그 사람이 지니고 살아온 삶의 무게처럼 느껴진다.

겨울이면 트럭이 호수 속으로 들어가 소금덩어리를 캐낸다는 아이딩호, 그 막막하고 숨막히는 열기 속에 내 존재의 무게조차 하얀 소금처럼 지워지는 곳, 그래서 아이딩호에서 돌아오는 길은 마음속에서 무엇이 하나 빠져나가 버린 것처럼 허전하고 허망하다.

툭툭 떨어져 금세 지평선으로 사라지는 붉은 노을과 갑자기 찾아오는 어스름한 농가의 풍경들, 어둑어둑한 사막 길로 꼴을 베 싣고 돌아오는 위구르 사람들의 당나귀 마차가 마음을 아득하게 만든다. 길 한가운데 경운기 한 대가 오도 가도 못하고 서있다. 나무를 너무 많이 실어 오르막길이 힘에 부쳤나보다.

비탈길에 멈춰 선 그 경운기를 피해 버스에서 내린 길옆으로 당나귀 마차 가득 꼴을 베 오는 위구르 소녀가 눈에 띈다.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느냐고 묻자 소녀는 환하게 웃으며 표정을 지어준다. 마치 오래 전에 만났던 옛 이웃처럼, 그렇게 소녀의 웃음은 스스럼이 없다.

돌아오는 길, 마차 가득 꼴을 베오던 소녀가 생끗 웃어주었다. 애딩호의 웃음이 저럴까?
돌아오는 길, 마차 가득 꼴을 베오던 소녀가 생끗 웃어주었다. 애딩호의 웃음이 저럴까? ⓒ 최성수

아마도 아이딩호의 모습은 그 소녀의 그 환한 웃음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막막하고 숨막히는 길 끝에 저토록 환한 웃음이 있다는 것을, 아이딩호는 내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교하고성, 그 시간 속의 옛 마을

트루판 하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포도, 그리고 교하고성이다. 달디단 포도를 먹으며 걷는 트루판의 포도 가로수 길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의 끝에서 만나는 교하고성(交河故城)은 쓸쓸하다.다 무너지고 본래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조금만 남은 고성의 햇살 속을 걷노라면, 교하고성의 옛날로 떠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교하고성은 차사전국(車師前國)의 성이다. 차사국은 기원전 약 2세기 때의 나라다. 이천 년이 넘는 그 아득한 세월의 자취가 교하고성에는 고스란히 배어 있다.

교하란 말 그대로 두 물줄기가 서로 교차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성은 물줄기가 교차하는 사이에 섬처럼 놓여 있다. 버드나무 잎과 같은 모양으로 이루어진 성은 강물에서 무려 40m나되는 높이에 있다. 어디 한 군데도 적이 쳐들어 올 수 없도록 된 천혜의 요새다. 흙은 쌓아서 성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있는 흙을 아래로 파내려 만든 성이기도 하다.

교하고성 벼랑 끝. 아득한 아랫쪽 강가에서 자란 포플러가 제 머리를 흔들며 성을 넘겨다보고 있다.
교하고성 벼랑 끝. 아득한 아랫쪽 강가에서 자란 포플러가 제 머리를 흔들며 성을 넘겨다보고 있다. ⓒ 최성수

성 끝의 벼랑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한 높이에 절로 오금이 저린다. 강물 근처에서 자란 포플러들이 성의 아래쪽에서 바람에 한들거리는 풍경은 다 삭고 스러져 가는 성의 잔해들과 대조를 이루어 나그네의 마음을 더 애잔하게 만든다.

이곳이 바로 유명한 이기(李頎)의 시 <전쟁터로 떠나는 노래(古從軍行)>의 무대다. “맑은 날 산에 올라 봉화를 바라보고/ 저물 녘 교하 강물에 말 물을 먹인다(白日登山望烽火/黃昏飮馬傍交河)”하는 시구의 교하가 바로 여기다.

성의 내부에는 절터나 궁궐터 등이 흔적만 남아있다. 세월은 저렇게 모든 것을 자연의 일부로 돌려버린다. 고창국에 속했다가 결국은 당나라의 일부가 되어버린 차사전국의 슬픈 운명처럼, 교하고성은 제 발 아래 포플러와 포도 과원을 거느린 채, 21세기의 여름 하루를 또 그렇게 스러지고 있다.

교하고성은 차사전국의 성이다. 버들잎 모양의 땅에 만들어진 성 아래에는 강물이 교차된다. 천혜의 요새다.
교하고성은 차사전국의 성이다. 버들잎 모양의 땅에 만들어진 성 아래에는 강물이 교차된다. 천혜의 요새다. ⓒ 최성수
삼장법사를 극진히 대접한 고창국왕

고창고성(高昌故城)은 고창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고창국은 당나라에게 멸망한 국문태(麴文泰)가 왕이었던 나라다. 국문태는 삼장법사 현장의 인도 구법 여행에 큰 도움을 준 왕이다. 현장은 이곳 고창국에서 열흘 정도 머물 계획이었으나, 국문태의 강요에 가까운 부탁으로 더 머물 수밖에 없었다. 국문태는 고창국 사람 모두를 현장의 제자로 만들고, 그를 나라의 도사(導師)로 삼겠다며 떠나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국문태는 심지어 직접 시중을 들며 현장에게 식사대접하기도 했고, 설법에 나갈 때는 자신을 발판으로 밟고 올라가도록 하는 등 극진한 대접을 했다. 인도로 가야 할 현장은 결국 나흘간의 단식으로 겨우 고창국을 벗어날 수 있었다.

떠나는 현장을 위해 국문태는 네 명의 소년을 출가시켜 시중을 들게 했고, 왕복 20년간의 여비에 해당하는 황금 백 냥, 말 30마리, 인부 25명을 딸려 보냈으며 도중의 여러 오아시스 나라들에게 직접 편지를 써 현장의 무사한 인도 행을 부탁했다고 한다.

국문태가 온갖 준비를 다 해주며 현장에게 부탁한 것은 돌아오는 길에 다시 고창국에 들러 3년간 설법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현장은 국문태의 준비와 도움으로 인도 행을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었다.

고창고성, 현장법사를 기념하는 비문이 있는 곳. 그러나 옛 모습은 없고, 새로 쌓아놓은 것이다.
고창고성, 현장법사를 기념하는 비문이 있는 곳. 그러나 옛 모습은 없고, 새로 쌓아놓은 것이다. ⓒ 최성수

그러나 고창고성은 그런 옛 일을 기억조차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입구로 들어서는 곳부터 온통 장사치들로 혼잡하다. 꼬치를 구워 파느라 연기가 진동하고, 말방울을 흔들며 사라고 외치는 아이들로 정신이 없다.

성 안으로 들어서면 또 당나귀 마차꾼이 마차를 타라고 마구 재촉이다. 걸어가기에 너무 더운 날씨 탓도 있지만 걸어가면서 볼 만한 유적조차 별로 없어 보인다. 성의 끝부분으로 가면 옛 왕궁 터와 현장법사를 기념하는 비문이 있던 자리가 나온다. 몇 해 전 왔을 때는 그 비문이 있던 곳이 비록 무너져가고 있었지만,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완전히 새로 만들어놓았다. 그래서 그런지 옛 정취는 없고 인공만 남아있는 것 같다.

원래 고창고성은 진흙과 버들가지, 마른 풀을 섞어 만든 벽돌로 건축했다고 한다. 그런데 인근 농부들이 그 성을 헐어다가 밭에 비료로 쓰면서 성이 다 무너지게 되었단다. 그런 슬픈 사연을 간직한 고창고성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에서 단순한 관광지로 남아있을 뿐이다.

돌아 나오는 길, 빈 당나귀 마차를 모는 소년 하나가 마차에 누워 휘파람을 불며 우리 곁을 스쳐간다. 저 소년은 고창고성의 슬픈 운명을 알고나 있을까?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가는 시간, 어둑어둑해지는 트루판의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사막에서의 삶과 역사를 생각한다. 모래 알갱이처럼 버성기며 사막의 일부분처럼 살아온 사람들이 만들어낸 역사의 유물 또한 그 사막의 모래로 돌아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모른다.

내 삶 또한 저런 한 줌의 먼지처럼 스러질 지도 모르는 것, 어쩌면 내가 내 삶의 전부라고 발 디디고 살아온 이 땅의 삶도 모래사막을 걷는 것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발길이 모래 속으로 푹푹 빠져드는 것만 같다.

화염산 중턱의 낙타. 문득 내 발길도 사막을 디디듯 푹 빠지는 것 같다.
화염산 중턱의 낙타. 문득 내 발길도 사막을 디디듯 푹 빠지는 것 같다. ⓒ 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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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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