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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낙엽 ⓒ 안준철
학교 정문 앞에 떨어져 있는 나뭇잎들은 낙엽일까, 아니면 쓰레기일까? 그것이 나에게 중요한 이유는 내가 시인이라서? 아니다. 내가 정문 앞 청소 담당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문제를 혼자서만 고민하는 것이 왠지 아쉬운 생각이 들어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진 것은 내가 시 나부랭이를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정문 앞에 떨어져 있는 나뭇잎들이 낙엽일까요, 쓰레기일까요?"
"쓰레기입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답이 합창처럼 울려 퍼진다. 무슨 질문을 던지면 딴 짓을 하거나 엉뚱한 대답을 하기 일쑤인 아이들이 어쩐 일로 이번에는 하나같이 입을 모아 우렁차게 대답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답이 아니다. 나는 적이 실망을 하고 이렇게 다시 묻는다.

"그럼 학교 교정에 떨어진 나뭇잎은 낙엽일까요, 쓰레기일까요?"
"쓰레기입니다."

낙엽
낙엽 ⓒ 안준철
아이들은 여전히 망설임이 없었다. 하긴 같은 질문에서 정문을 교정으로 바꾼 것뿐이니 같은 대답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도 혹시 아이들이 정문 앞을 통과할 때와 학교 교정을 거닐 때와는 어떤 정서적인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나는 잠시 시들해졌다가 뭔가 머리에 번쩍 떠오르는 것이 있어 다시금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그럼 학교 뒷산에 떨어진 나뭇잎은 낙엽일까요, 쓰레기일까요?"
"낙엽입니다."

"오, 그렇지. 그것은 낙엽이지. 헌데 학교 운동장에 떨어진 나뭇잎과 산에 떨어진 낙엽과 무슨 차이가 있지?"
"산에 떨어진 것은 치우지 않고 그냥 놔두잖아요."

그럼 정문이나 운동장에 떨어진 것도 그냥 놔두면 되지 않느냐고, 하마터면 나는 그렇게 말할 뻔했다. 다행히도 그 말은 입안에서만 맴돌다가 사그라졌다. 만약 아이들이 내 말을 듣고 청소를 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문이나 교정에 떨어진 나뭇잎은 정녕 낙엽이 될 수 없을까?

교정에 떨어진 나뭇잎은 낙엽이 될 수 없을까?

낙엽
낙엽 ⓒ 안준철
학교가 산기슭에 자리한 까닭에 아이들은 아침마다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오르막을 올라가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 산비탈에 심어진 십여 그루의 벚나무가 봄이면 분홍빛 속살이 보일 듯 말 듯한 하얀 꽃잎을 하르르 떨어뜨리고, 가을이면 바람결에 하염없이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그 지점이 바로 내가 맡은 청소구역이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은 청소를 하고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보면 어느 새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다. 애써 청소를 한 아이들의 처지에서는 힘이 팽길 만도 하다. 나는 아이들을 위로한답시고 이렇게 말을 해준다.

"금방 떨어진 것들은 쓰레기가 아니라 낙엽이야. 저 나뭇잎들도 하루라도 낙엽으로 살다가 쓰레기가 되든지 해야지 너무 야박하잖아. 너희들도 내일 등교할 때 저 낙엽을 밟고 가면 바스락 소리도 나고 해서 좋겠고…."

몇 해 전의 일이다. 청소시간에 한 아이가 은행나무를 발로 마구 차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해마다 그 무렵이면 학교 교정에 유일하게 서 있는 은행나무가 아이들에게 수난을 받곤 했으니까 말이다.

나무에 달려 있거나 땅에 떨어져 한껏 가을 분위기를 자아내던 노란 은행잎들이 운동장 청소를 하는 아이들에게는 매일 같이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한낱 귀찮은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내가 다가가는 것도 모르고 발로 나무를 열심히 차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때가 되면 다 떨어질 텐데 왜 발로 차는 거야?"
"짜증나잖아요."
"짜증내지 말고 감상을 해봐. 이 노란 은행잎이 얼마나 예쁘니?"
"그래도 귀찮잖아요."


나는 잠시 할말을 잃고 말았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땅에 떨어질 신세라면 하루아침에 한꺼번에 다 떨어져 주는 것이 청소하는 아이들로서는 고마운 일일 수도 있으리라.

나를 우울하게 한 것은 아이들의 무딘 색채감각과 관련이 있었다. 나는 황금빛으로 물든 은행나무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을 읊조리며 황홀하고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는 아이들이 있어 주었으면 했던 것이다.

'아, 저 노란 빛이 어디에서 왔을까? 그리고 저 하늘, 저 하늘의 쪽빛은?'

사람들은 시는 시인이 쓰고, 그림은 화가가 그려야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가을 교정에 뚝뚝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을 보고 그런 낭만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꼭 시인이거나 화가여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국민 대다수가 학교에서 십년 넘게 배운 시와 노래와 그림이 소수의 예술가들을 위한 것만은 아닐 텐데도 말이다.

낙엽
낙엽 ⓒ 안준철
그 무렵, 나는 낙엽이 뒹구는 교정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 다녔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낙엽이 있으면 허리를 숙이고 줍곤 했다. 재수가 좋은 날은 낙엽 대신 한 편의 시를 줍기도 했다.

허리를 숙이고 낙엽을 줍는다
허리를 숙일 때의 천천한 동작을 즐긴다
땅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는 것도 좋다
작은 것들이 커 보인다
겨울을 나려는 듯, 함께 먼 길을 가는
땅에 사는 작은 생명들
허리를 숙이고 낙엽을 줍다보면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 같다
자연히 낙엽 줍는 손길도 늦어진다
성급히 쓸다보면 쓰레기가 되는 것들이
허리 숙여 천천히 주우면 낙엽이 된다 -자작시, '낙엽 줍기'


학교 정문 앞에 떨어져 있는 나뭇잎들은 낙엽일까, 아니면 쓰레기일까? 그것이 나에게 중요한 이유는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성급히 쓸다보면 쓰레기가 되는 것들이, 허리 숙여 천천히 주우면 낙엽이 되는'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불행하게도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지만 말이다.

그것은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이 사회의 조급증 탓이 아닐까. 성급한 어른들이 성급한 아이들을 만든다. 이번 가을에 다시금 내 마음에 새기는 금언이다.

덧붙이는 글 | <사과나무>에도 원고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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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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