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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쿨 호수 가는 카라코럼 하이웨이. 저 길을 따라 파미르 고원을 지나 파키스탄으로 가고 싶은 꿈을 꾸다.
카리쿨 호수 가는 카라코럼 하이웨이. 저 길을 따라 파미르 고원을 지나 파키스탄으로 가고 싶은 꿈을 꾸다. ⓒ 최성수
길 가로 공동묘지가 나타난다. 이슬람 양식의 공동묘지다. 그 무덤을 보니, 무덤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환경을 닮는 것 같다. 우리네 무덤이 초가지붕 모양이라면, 위구르 사람들의 무덤은 꼭 이슬람 사원을 닮았다. 사원의 정면 문과 같은 무덤 앞의 묘지석이 눈길을 끈다.

길 가로 번화한 노점상이 늘어서 있는 곳에 멈춰 과일들을 산다. 사막의 과일은 다 맛있다. 하미과도 사고, 수박도 사고, 사과에 포도, 배까지 한 보따리 산다. 그냥 쓱쓱 옷에 닦아 한 입 베어 문다. 달고 시원하다. 일교차가 심한 사막의 기후 때문인지, 당도가 높다. 포도는 특히 더 달다.

몇몇 일행은 아침을 잔뜩 먹고도 난을 또 산다. 금방 구워낸 빵의 따끈따끈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라, 사지도 않은 내가 더 많이 손을 내민다. 살짝 깨를 뿌려 화덕에 구운 난은 더 고소하다.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 가득 주체 할 수 없는 고소함이 가득 찬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이렇게 먹는 일이다.

길 가의 과일 노점상. 갖가지 과일이 싸고 풍성하다. 포도는 달고, 배는 시원한 사막의 과일 잔치.
길 가의 과일 노점상. 갖가지 과일이 싸고 풍성하다. 포도는 달고, 배는 시원한 사막의 과일 잔치. ⓒ 최성수
다시 출발한 버스가 점점 산 속으로 들어간다. 산이라고 해도 역시 풀 한 포기 없다. 가슴을 막아서듯 우뚝 솟은 아득한 산이 오른 쪽에 서 있고, 왼쪽으로는 거센 물줄기가 흐르는 강이다. 물은 흙빛이다. 햇살은 쨍쨍한데, 물살은 마치 빗줄기가 쉬지 않고 퍼부어 불어난 것처럼 거세다. 이 강이 개자하(蓋孜河)란다. 천산과 곤륜산이 만나는 곳에서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다는 물은, 곳곳에서 길을 파헤치며 흐른다.

바위 벼랑을 끼고 돌아서자 차선 하나가 푹 패여 있다. 패인 아래로 거센 물줄기가 아직도 모자라다는 듯 또 길을 파며 흐르고 있다. 바라보면 무서운 마음까지 든다.

한참을 달린 차가 검문소에 이른다. 파키스탄과 가까운 곳이라 이 검문소에서 검사를 받아야 통과할 수 있단다. 차에서 내려 여권을 들고 공안의 확인을 받는다. 검문소 주위로는 허름한 가게들 몇과 산 빛깔 그대로인 사람들의 집이 있다. 검문소를 통과하는 관광객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도 있다.

국경 가까운 지역이라 통행자 모두를 검문한다. 검문소 근처에 사는 아이의 모습.50년대 어느 날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국경 가까운 지역이라 통행자 모두를 검문한다. 검문소 근처에 사는 아이의 모습.50년대 어느 날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 최성수
이 길이 바로 카라코럼 하이웨이다. 카라코럼은 검은 계곡이라는 뜻이다. 검은 흙으로 이루어진 산, 그곳에 닦은 길이 카라코럼 하이웨이다. 고속도로라고는 하지만 히말라야를 넘는 곳은 도로 폭이 3미터도 되지 않으며, 비포장에 곳곳이 무너져 차의 통행이 자주 막힌다는 곳이다. 이 고속도로를 계속 이어 달리면 파키스탄의 이슬라바마드에 이른다.

카슈카르에서 이슬라바마드까지, 그 길을 다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번 여행은 지금 가고 있는 카리쿨 호수까지 만이다. 그 꿈을 훗날의 기약으로 남기고 달려가는 카리쿨 호수 가는 길은 못다 이룬 꿈처럼 아름답다.

호수에 비친 설산이 아름다운, 카라쿨 호수

한동안 달리던 차가 잠시 길 가에 멎는다. 길 아래쪽으로 제법 큰 호수가 있다. 카리쿨 호수인가, 유명하다는 그 호수가 별반 크지 않다, 생각을 하는데, 그곳은 카리쿨 호수가 아니라 유사하(流沙河)란다.

유사하는 <서유기>에서 삼장법사와 손오공 일행이 사오정을 만난 곳이다. 그냥 만들어낸 지명인 줄 알았더니, 실제 존재하는 곳이다. 아니 어쩌면 서유기에서 따와 이름을 나중에 지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풍경은 늘 궁금증만 불러온다.

삼장법사가 사오정을 만난 곳 유사하. 모래산이 눈처럼 곱다.
삼장법사가 사오정을 만난 곳 유사하. 모래산이 눈처럼 곱다. ⓒ 최성수
나는 거세게 부는 바람에 맞서며, 호수 건너편의 산을 바라본다. 산 위로 희디흰 눈이 쌓여있는 것 같다. 그런데 눈 치고는 색이 좀 이상하다. 자세히 보니, 눈이 아니라 모래다. 모래가 산 위에 눈처럼 얹혀 있는 것이다.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흩날리며 날마다 자세를 바꿔 앉는 유사하의 모래는 아름답고 신기하다.

다시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 더 달리고 나자, 눈앞에 커다란 호수가 나타난다. 카리쿨 호수다. 카리쿨리(喀拉庫勒)라고도 불린다. 위구르 어로는 검은 호수라는 뜻이란다. 평균 수심이 30미터이며, 해발 3,600미터에 자리 잡은 고산 호수, 빙하가 녹은 물이 모여 이루어진 빙식 호수인 카리쿨 호수 너머에는 눈부신 설산이 사방에 어깨를 겯고 이어져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설산이 바로 무즈타크봉(慕士塔格峰)이다. 산 높이가 7546m인데, 빙산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답고 장엄하다.

카리쿨 호수의 비췻빛과 설산의 눈부심의 조화
카리쿨 호수의 비췻빛과 설산의 눈부심의 조화 ⓒ 김희년

호수가 아름다운 것은 설산이 있기 때문. 곤륜산의 눈 녹은 물이 만들어낸 카리쿨 호수는 아득하다.
호수가 아름다운 것은 설산이 있기 때문. 곤륜산의 눈 녹은 물이 만들어낸 카리쿨 호수는 아득하다. ⓒ 최성수
무즈타크봉은 곤륜산맥에 있는 산이다. 우리 조상들은 곤륜산맥을 우리나라 모든 산들의 시원지로 보기도 했다. 백두대간의 가장 남쪽에 있는 해남 두륜산이 백두산과 곤륜산의 글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 역시 곤륜산을 산의 출발지로 인식한 데서 나온 주장일 것이다.

바라보는 무즈타크의 설산도 아름답지만, 눈부시게 푸른 호수에 비친 설산도 아름답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주변의 삭막한 풍경과, 생명의 원류가 용솟음 칠 것 같은 눈부신 설산, 그리고 비취빛 카리쿨 호수의 물빛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풍광은 부드러우면서도 웅장하다.

잔잔한 바람조차 상쾌한 카리쿨 호수 주변을 카자흐 족이 끄는 말을 타고 돌아본다. 말 위에서 바라보는 호수는 더 푸르다. 물에 몸을 담그면, 온 몸에 저 비췻빛이 물들 것 같다.

저 설산을 넘어 가면 또 다른 세상이 있을까?
저 설산을 넘어 가면 또 다른 세상이 있을까? ⓒ 최성수
중국 운남성 여강의 루구호에도 가 보았고, 세상에서 가장 큰 호수인 바이칼에도 가 보았지만, 카리쿨 호수는 그것대로 독특한 느낌이 있다. 루구호나 바이칼이 눈 번쩍 뜨이게 하는 맑음과 푸르름, 싱그러움을 준다면, 카리쿨 호수는 맑고 푸르면서도 아득한 느낌을 준다. 그 아득함은 아마도 사막의 모래바람과 웅장한 곤륜산맥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욱한 모래먼지에 가려있는 것 같은 호수, 그러나 더없이 푸른빛의 호수, 카리쿨은 그렇게 아득한 세월을 제 빛깔로 살아온 것이리라.

마른 날 홍수 때문에 길이 막히다

카리쿨 호수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내 마음은 파미르 고원을 넘어 파키스탄 쪽으로 달려간다. 이 길을 되돌아 만년설의 산줄기를 따라 자꾸 가면 중국의 국경 도시 타시쿠르간이다. 거기서 발길을 재촉하면 파키스탄 땅이고, 훈자 마을을 거쳐 이슬라바마드까지, 마음은 자꾸 그 길을 달려간다.

그러나 몸은 마음과 반대로 다시 카슈카르를 향한다. 왔던 길이니 다시 돌아간다고 특별히 볼거리가 있을 것 같지 않았는데, 한참을 달리던 버스가 멈춘다. 길 앞에 여러 대의 버스와 트럭, 승용차들이 밀려 있다.

쨍쨍한 햇살 아래 홍수 진 길. 온도가 올라 설산의 눈이 녹아 길을 막는다.
쨍쨍한 햇살 아래 홍수 진 길. 온도가 올라 설산의 눈이 녹아 길을 막는다. ⓒ 최성수
무슨 일인가, 버스가 서자 얼른 내려 본다. 차들이 밀려있는 앞쪽으로 가니 길이 끊겨 있다. 아까까지도 멀쩡하던 길이 움푹 패여 있고, 길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가로질러 시꺼먼 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다. 얼마나 센지 잘못 디디면 휩쓸려 갈 것 같다.

마른 날, 쨍쨍한 햇볕 아래 갑자기 홍수가 진 것이다. 여름철이라 날씨가 갑자기 더워지면, 오후에는 이렇게 물이 불어난단다. 빙하가 그만큼 빨리, 많이 녹아 물이 늘어나 홍수를 나게 한다는 것이다.

홍수난 길을 건너다 바퀴에 돌이 박힌 버스. 똥침 맞은 차라며 우리 모두 웃었다.
홍수난 길을 건너다 바퀴에 돌이 박힌 버스. 똥침 맞은 차라며 우리 모두 웃었다. ⓒ 최성수
며칠 전에 파키스탄 넘어가는 쪽의 길이 이렇게 홍수가 나 끊겨 많은 사람들이 포크레인의 바가지에 짐과 자신을 싣고 건너기도 했단다. 기사 몇 명이 작은 삽을 들고 개울이 되어버린 길로 들어섰지만, 역부족이다. 물은 점점 불어나고, 차들은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이러다가 호수 근처의 파오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주변의 설산을 구경하고, 자꾸 불어나고 거세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는데, 어디서 커다란 포크레인이 나타난다. 길이 끊긴 것을 알고 보수하러 온 것이란다. 그 포크레인이 몇 차례 왔다 갔다 하며 길을 다시 만들고 나자, 차들이 재빨리 물을 건넌다. 그러는 중에서 물줄기는 자꾸 거세지면서 금방 만들어 놓은 길을 허물어 버린다.

앞에 서 있던 버스가 물탕을 튀기며 지나간 길을 우리 차도 덜컹이며 건넌다. 모두들 환호성을 지른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이건 쨍쨍한 햇볕 아래 홍수를 만난 격이다.

앞서 건넌 버스가 조금 가더니 갑자기 멈춰 선다. 뒷바퀴 한 쪽이 두 개인데, 물을 건너는 동안 그 사이에 커다란 돌멩이가 끼어버린 것이다. 우리 차의 기사를 비롯한 여러 명의 기사들이 내려 힘을 합쳐 그 돌멩이를 꺼낸다. 한동안의 씨름 끝에 바퀴에 박힌 돌이 빠져나오자 또 모두들 환호성이다. 누군가, 똥침 맞은 버스라고 하는 바람에 웃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설산 또 설산. 저 설산이 사막에 오아시스 마을을 있게 한다.
설산 또 설산. 저 설산이 사막에 오아시스 마을을 있게 한다. ⓒ 최성수
햇살이 물살을 만들고, 햇볕이 홍수를 지게 하는 카라쿨 호수 가는 길, 그 길을 등에 두고 우리는 다시 카슈카르로 돌아온다. 삭막한 산길과 우당탕탕 거센 물줄기가 큰 강을 이루는 길을 거쳐, 다시 이열종대의 백양나무들과 푸른 숲과 옥수수 밭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에 출발한 오아시스 도시 카슈카르다. 그러나 몸만 돌아왔지 마음은 카리쿨 호수 어느 곳에 두고 온 것 같다.

거세게 흐르던 물줄기와 주름 가득한 산들, 눈부시게 흰 만년설 너머 카라코럼 하이웨이 저쪽, 곤륜산맥의 어느 능선이나 혹은 파미르 고원의 어느 바람 속에 마음을 두고 왔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그 마음을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이 길을 달려야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그날 밤 나는 수십 번도 더 한 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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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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