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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하게 서있는 Imperial Gate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Imperial Gate ⓒ 김동희

그들의 원래 집은 술탄 아흐멧이었다. 술탄 아흐멧에 위치하고 있는 토카프 궁전. 오스만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그 곳에 첫 번째 집을 지었다. 이스탄불의 일곱 개 언덕 중 첫 번째 언덕에 그들의 집을 지었다. 이 곳은 이스탄불을 감싸고 있는 보스포러스 해, 골든 호른, 마르마라 해 세 바다가 모두 보이는 곳이었다. 그들의 집은 그들의 전통이 물씬 풍기는 그런 곳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보스포러스 해변가에는 베시크타시(Besiktas)라는 목조 작은 별궁이 있었다. 이 목조 궁전이 있기 전에도 그 곳에는 작은 목조 궁전이 있었다고 한다. 보스포러스를 좋아하던 술탄 압둘 메지드는 13년에 걸쳐 이곳에 새로운 궁전을 지었다. 그곳은 예전에 그들이 살던 집과는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유럽 어딘가에서 그대로 가져 다 놓은 듯한 궁전, 그것이 바로 돌마바흐체 궁전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것을 잠시 놓아두고 유럽 닮기를 원했다.

궁전의 높은 벽은 그 입구를 지키고 있는 근위병의 자태를 닮았다. 콧대 높아 보이는 그는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어도, 사진을 찍어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무리 그의 얼굴 바로 앞에 얼굴을 대도 꿈쩍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검게 그을린 얼굴을 보니 안쓰럽다. 입구 한 구석에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근위병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얼굴은 여느 이십대 청년의 해맑은 얼굴인데 어떻게 단상에만 올라가면 저렇게 변하는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름다운 정원이 보인다. 한 가운데 분수대와 그 주변에 즐비하게 심어진 꽃들. 역시나 이곳이 터키인가 싶을 정도로 정형화된 유럽의 정원이다. 이 곳을 지나면 돌마바흐체 궁전의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유럽 미술사 시간에 많이 들은 바로크 양식과 로코코 양식, 그리고 오스만 양식으로 지어진 이 곳은 셀람리크(Selamlık), 하렘(Harem)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해주는 공식 행사를 위한 홀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셀람리크(Selamlık) 앞의 정원
셀람리크(Selamlık) 앞의 정원 ⓒ 김동희

돌마바흐체는 혼자서는 아무 곳도 들어갈 수 없다. 셀람리크 입구에서 그리고 하렘 입구에서 시간마다 있는 가이드를 따라 가야만 한다. 혼자서 아무 설명 없이 그냥 보는 것보다는 가이드가 설명을 해준다는 것이 큰 장점이지만 그가 모든 설명을 마치고 가자고 하면 아무리 더 있고 싶어도 따라가야만 하는 것이 단점이다.

셀람리크는 술탄의 공간이다. 그가 집무를 보던 곳이며 외국 대신들과 손님들과 교섭을 주관하던 곳이다. 이에 반해 하렘은 여성들의 공간이다. 1층은 하인들의 공간이고 2층은 술탄의 가족들이 사용하던 공간으로 나누어져있다. 좁은 복도에는 19세가 유럽 작가들이 그린 오스만제국의 모습들이 걸려져 있다. 이것 역시 그들 고유의 세밀화가 넘치는 토카프 궁전과 다른 점이다.

셀람리크(Selamlık)안 술탄의 집무실
셀람리크(Selamlık)안 술탄의 집무실 ⓒ 김동희

하렘에서 볼 수 있는 침실
하렘에서 볼 수 있는 침실 ⓒ 김동희

하렘에 있는 블루 홀(Blue Hall), 핑크 홀(Pink Hall)뿐만 아니라 조그만 홀에는 모드 샹들리에들이 달려있다. 이 샹들리에들을 보기 위해 돌마바흐체에 온다고 할만 하다. 대부분의 이 샹들리에들은 유럽에서 주문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저 보기만 해도 화려하다. 그 중 압권은 역시 공식 행사를 위한 대형 홀에 있는 샹들리에이다. 36m 높이의 천장에 달려있는 이 샹들리에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선물한 것으로 무게만 4.5톤이라고 하니 그 사치스러움은 그 무게만큼이나 큰 것 같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선물했다는 4.5톤의 상들리에에 매달려 있는 행사용 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선물했다는 4.5톤의 상들리에에 매달려 있는 행사용 홀 ⓒ 김동희

하렘에서 가장 엄숙하게 본 곳은 바로 터키의 국부인 케말 아타튀르크가 마지막 숨을 거둔 침실이다. 1938년 11월 10일 오전 9시 5분 간 경화를 이기지 못하고 그는 세상을 떠났다. 터키인들이 그렇게 존경하는 그가 죽은 그곳엔 터키의 국기가 그려진 붉은 이불이 덮여 있다. 그 붉은 이불 속의 초승달과 별이 왜 이렇게 사람을 숙연하게 만드는지 자리를 뜨기가 힘들었다. 아마도 많은 터키인이 아직까지 존경하는 사람이었기에 더 그랬을 거다.

‘도대체 그는 어떤 지도자였길래 죽은 후에도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을까. 그들은 얼마나 그를 존경하길래 거리마다 그의 이름을 붙이고 거리마다 그의 동상을 세웠을까.’

여러 군데를 돌면서 그 아름답다는 샹들리에와 여러 유럽 스타일의 가구들을 보는데 어느 순간 더 이상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의 설명은 호화로움을 수치로 환산해 말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갇힌 공간에서 계속되는 화려함을 보고 있으니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터키의 모습이 아닌 이 궁전이 터키에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뭔가 따로 노는 느낌이라고 할까.

바다로 나있는 문 앞에 앉았다. 바다를 바라보며 왜 그들은 유럽을 원했는지 생각해본다. 근대화에 뒤쳐진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서 유럽의 사상이 필요했을까? 그들의 사상으로는 일어서지 못했을까? 지금 터키는 또 한번 유럽에 속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유럽이 될 수 없다. 그들의 삶과 생각은 유럽과는 너무 다르다. 그들에게 다가가 이야기 해주고 싶다. 그들의 진짜 모습이 더 멋지다고.

터키의 국부 케말 아타튀르크가 숨을 거둔 침실
터키의 국부 케말 아타튀르크가 숨을 거둔 침실 ⓒ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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