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수협에서 선임한 노무사가 노조의 협상안을 들고와서 이사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정태현
노사분규가 계속되던 구룡포수산업협동조합이 16일 0시 40분경 조합장의 사직서 접수로 일단락되었다. 김모 조합장은 직원을 상습 폭행했다는 비난을 받으며, 조합측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었다. 이로서 조합장은 4선째 6개월여 만에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퇴진하게 되었다.

구룡포수협(구·영일수협)은 당분간 김경룡 수석이사의 조합장 대행체제로 운영되며 5일 이내에 선관위에 신고한 뒤, 30일안에 새로운 조합장선거를 치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거명되는 조합장후보는 4-5명선. 현재로선 ‘기다렸다'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모두 말조심을 하는 분위기다.

이번 선거는 현직 조합장이 없는 상태에서 선거를 치르게 되어 후보자가 난립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조율을 통한 후보자 추대의 의견도 솔솔 불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구룡포수협은 지난 4월부터 임·단협을 벌여오다가 조합장이 직원에 대한 폭력을 "교육적 차원의 매"라고 해명한 것이 원인이 되어 노조가 크게 반발했다. 이후 임금협상보다는 '조합장 퇴진'을 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강경투쟁을 벌여 왔다.

그러다 지난 13일, 7명의 상무와 상임이사, 노조지부장 등 9명의 임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조합장은 전격 사퇴의사를 표명했다. 그리고는 모 일간지에 사퇴에 따른 인터뷰기사를 싣기로 허락하는 등 사퇴를 확인했다.

이에 전국수협노조(위원장 ·김이곤)도 지난 14일 오전 포항시청에서 당초 조합장을 규탄하려고 하던 내용과는 달리 "구룡포수협 김 조합장이 이번 사태로 사퇴하기로 했다"고 하고 이제 "분규를 마무리 할 방침"이라고 밝혀 분규는 막을 내리는 듯했다.

그런데 김 조합장은 이날 오후 "노조측이 대구지방노동청 포항지청에 고발한 근로기준법 제7조 위반(폭행의 금지) 사건에 대한 1심 판결 결과를 보고 사퇴하겠다"며 자신이 "사퇴하기 위해선 뽑아준 조합원들에게 의사를 물어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기존 사퇴 의사를 번복하는 발언을 했고 노조는 다시 '조합장 퇴진'을 요구하는 강경 투쟁쪽으로 선회했다.

▲ 14일 밤 노조는 농성을 본격화하기 위해 천막을 친다.
ⓒ 정태현
이에 따라 노조는 수협위판장 앞에 농성용 천막 2개소를 설치하는 한편, 아침 7시30분에 하던 항의 결의대회를 재개하고 포항수협노조도 집회에 지원참석하기로 하는 등 쟁의 행위를 준비해 나갔다. 노조 측은 지난 2일 노동쟁의 찬반투표에서 44명이 참가해 찬성 43표, 반대 1표로 이미 쟁의행위를 하기로 총회에서 가결된 상태였다.

노동쟁의 조정기한이 끝나는 15일 이후 쟁의행위를 갖기로 한 노조는 노조 조합원 59명 전원이 지부장에게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 18일에는 전국수협노조(전수노)는 물론 전국축협노조(전축노)와 전국농협노조(전농노) 등 2500여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집회가 예정되는 등 투쟁수위를 높였다.

▲ 포항수협노조도 지원하기 위해 농성장에 합류했다.
ⓒ 정태현
그러나 자체조정 기한인 14일 밤, 김 조합장이 노조의 천막 농성장에 찾아가 노조와 대화를 시작했고, 경북노동위원회가 9월 15일 본조정일을 19일로 4일 연기하면서 위원회 개입 없이 해결하라는 조정의지를 보였다.

그래서 노사는 15일 수협 2층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열고 조합장의 퇴진을 전제로 특별협약 인정과 조합장에 대한 고소·고발 취하, 임·단 협상 체결 등의 조건을 상호교환하기로 노·사간 잠정 합의하기에 이른다.

전수노와 구룡포수협측은 지난 11일부터 매일 새벽 2-3시까지 협상을 계속하여 단체협상과 임금협상 부분은 마무리 수준으로 진전시켜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15일 이사회에서는 조합장이 '조합장의 보궐선거 임원직 불출마 보장'을 담보한 특별협약은 원래 없던 것이라 반박했고, 노조는 전날 천막대화에서 인정한 사안이라고 하여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이 때 50여 명의 노조원들이 이사회 회의장으로 우르르 몰려들어 조합장에게 큰 소리로 항의하며 조목조목 반박했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사들은 노조의 주장에 신뢰를 하는 듯한 분위기를 보였다. 조합장은 웃음으로 대신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자 전수노의 김이곤 위원장은 "거짓말하는 조합장과 대화할 가치를 못 느낀다"며 퇴장했고 다른 노조원들도 함께 회의장을 나갔다.

이 때부터 이사들의 태도가 급변했고 지루하게 시간을 끌면서 사직을 미루는 조합장에게 볼멘소리를 하기 시작하자, 조합장은 노조를 설득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이사들에 돌렸다. 특히 수협에서 선임한 노무사에게는 자신을 편들지 않는다며 항의하고 "그렇지 않으면 당장 그만두라"고 하여 노무사가 일시 퇴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태가 조합장을 따돌리는 상황으로 치닫고 조합장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회의실에선 조합장이 이젠 끝이라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조합장 사퇴를 만류했던 조합 이사들도 사퇴 쪽으로 분위기를 모았고 그동안 어정쩡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7명의 상무들도 전날인 14일 체력단련비를 투쟁기금으로 기부하며 김 조합장 퇴진에 적극 동참하기로 합의했다.

조합장의 '사직서 끌기' 분위기에 지친 이사들은 회의실안에서 김밥과 컵라면으로 저녁식사를 대신 때우고 "어차피 사직서를 쓰겠다고 한 만큼 조합장도 큰마음으로 빨리 쓰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 조합의 김모 이사가 마음이 괴로운지 잠이 오는지 이사회가 진행되는 중간에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있다.
ⓒ 정태현
이 날 심야 협상에서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조합장의 의지가 결정할 것 같지 않다고 판단한 노조조합원들이 밤 12시 안으로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각오로 건물의 출입구를 막고 이사들과 조합장의 퇴근을 저지하겠다는 배수진을 쳤다.

그리고 '특별협약안'의 글자 하나하나를 점검하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던 조합장이 어민조합원들과의 대화를 이유로 18일 사직서를 미루려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사들이 노조에 양해를 요구하여 노조는 협의서 안을 전폭적으로 양보하고 폭행피해자들의 고소·고발 취하서 및 조합장에 관대한 처벌을 바란다는 탄원서까지 작성했다. 이로서 조합장이 더 이상 이유를 만들지 못하는 쪽으로 가자 조합장은 12시40분경 사직서에 서명날인을 했다.

▲ 사직서 처리 후 노조 집행부가 이사회 회의장에 들어가 사과의 인사를 하고 있다.
ⓒ 정태현
구룡포수협은 지난 94년 당시 안삼용 조합장의 결격사유를 들어 김 조합장이 무투표 당선된 이후 4선 13년째 조합을 경영하고 있었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조합장', 본인이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평생조합장'이라고 불릴 만큼 일선 어민조합원들에게는 잘해 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김 조합장. 그는 5선까지(2014년) 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만치 막강한 실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내부 직원들에게는 '김00공화국', '폭군조합장'으로 불릴 만큼 폭행과 욕으로 운영해 왔다고 전해지며 '자기자랑만 하는 괴변론자'라는 부정적 평가도 받았다.

▲ 폭행피해자들 중 퇴직자 3명을 제외한 11명의 명단이 보인다.
ⓒ 정태현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