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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6일자 사설
<동아일보> 16일자 사설 ⓒ 동아일보 인터넷신문 화면캡쳐
<한겨레신문> 16일자 사설
<한겨레신문> 16일자 사설 ⓒ 인터넷 한겨레신문 화면 캡쳐
사회구조와 변동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관찰하는 미시적 관점과 큰 틀에서 파악하는 거시적 관점이 그것이다. 물론 균형을 대 전제로 한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시각을 사회적 실재의 기본적 또는 유일한 존재로 볼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사회학자 찰스 틸리는 현상학적 개인주의적 시각은 균형을 깨뜨리거나 신뢰를 잃고 만다고 했다. 언론의 보도 행태가 특히 그렇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작통권) 문제에 접근하는 상이한 중앙 언론의 시각과 지역발전 특별법을 놓고 서로 다른 색깔을 드러내고 있는 지역언론의 '나 홀로 의제'에선 균형감각을 찾기 힘들다. 서로 다른 분모는 일곱 색 무지개를 연상케 한다.

특히 전작권 의제설정은 극과 극이다. 보수 대 진보로 갈려 평행선으로 치달리고 있다. 대통령의 방미결과를 다르게 해석한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은 '전작권' 또는 '작통권'이라고 달리 표현함으로써 관점의 벽을 제목부터 높이 쌓는다.

조중동, 전작권 단독행사 "대 실망"

<조선><중앙><동아>는 전작권 환수 반대에 올인 한 형국이다. 안보 붕괴와 국론분열을 우려하는 보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모두가 반대한다"는 논리로 정치 쟁점화를 부추기고 있지만 '모두'의 관점은 어디서 어디까지인가.

전작권 환수 반대에 관한 기사를 앞장서 보도한 <조선>은 16일 사설에서도 대통령 방미결과를 부정적 관점에서 다뤘다. '대북정책에선 제각각, 동맹 허무는 데는 한목소리'란 사설은 그 동안 주장을 총평하는 듯 했다.

한마디로 이번 정상회담에서 전작권 단독행사에 관한 한 미국은 서둘러 내놓고 한국은 그것을 서둘러 집어넣었다고 사설은 평가했다. 이 때문에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하고 유도되지 않는 미사일의 궤적만큼 불안정한 북한의 행동과 엄포아래 시달려야 할 것이라고 걱정을 털어놓았다. 대통령의 방미성과는 들어보나 마나라는 식이다.

<중앙>도 기다렸다는 듯 '어정쩡하게 봉합한 한미 정상회담'이란 이날 사설에서 전작권의 단독행사는 대다수 국민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기정사실화 됐다며 큰 실망감을 표했다. "코드 맞추기에 급급한 국방장관"이라며 화살을 애꿎은 방향으로 쏘기도 했다.

<동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갈등을 수사(修辭)로 봉합한 회담이었다고 꼬집었다. '한미정상 웃으며 이별연습 했나'의 사설에서 "한미동맹과 한미공조의 회복이 절실한 이 때 전작권 환수시기라도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통권 환수방안 논의할 때" 극과 극

시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한겨레>와 <경향>은 이번 방미결과에 대해 만족할 수준은 못되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겨레>는 이날 사설 '6자회담·작통권에서 한목소리 낸 한-미 정상회담'에서 구체적 합의가 부족한 건 아쉽지만 함께 애써야 할 방향을 제시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고 했다.

"작통권은 질서 있게 환수돼야 한다"고 주장한 이 사설은 보수세력도 이제는 반대 목소리를 높일 게 아니라 순조로운 환수 방안에 논의를 집중하는 것이 미래지향적인 길임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향>도 '한미 정상회담 이후 보수진영의 선택'이란 이날 사설에서 평소 논조를 유지했다. "한나라당이나 보수진영이 진정 국익을 위한다면 지금 할 일은 우리의 협상력을 높여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작통권 논의가 이뤄지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과 <한국>의 사설에선 오히려 차분함이 묻어난다. <한국>은 '전시작전권 논란 이제는 갈피 잡아야'란 제목의 이날 사설에서 소모적 논쟁을 타일렀다. "이치에 닿지 않는 반대만 외치는 것은 세상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현상유지를 바라는 무모한 집착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국민>도 이날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불가피해 졌다면'의 사설서 "더 이상 감정적 또는 정략적 차원의 전작권 환수 논란은 무의미해 졌다"며 "전작권 환수 자체에 목적을 둘 것이 아니라 전쟁 억지력 확보에 근거한 실효적 논의와 접근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이처럼 중앙언론의 의제가 안보문제에 집중돼 편향된 시각 차를 드러낸 사이 지역의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중앙의 보수와 진보싸움에 가려진 채 지역언론은 지역특별법을 상이한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공통분모를 찾기 어렵다.

지역언론 서로 다른 발전특별법에 촉각

<경남일보>는 지역 간 '바다의 전쟁'을 우려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경남일보>는 지역 간 '바다의 전쟁'을 우려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 경남일보 인터넷신문 화면캡쳐
남해안발전특별법을 놓고 부산·경남·전남이 벌이는 신경전이 볼만하다. 3개 시도가 추진 중인 골격은 같지만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며 색깔이 조금씩 다른 법안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경남일보>는 15일 "부산시와 전남도가 경남 바다의 침해 행위가 잇따르고 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경남도가 부산과 전남도에 적극적으로 대응키로 해 '바다전쟁'이 확산될 전망'이라는 기사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지역의 다른 언론사들도 "민주당이 지난달 30일 남해안균형발전법안을 국회에 제출함에 따라 한나라당을 제외한 여야 정치권에 남해안발전특별법 제정이 핫이슈로 등장했다"며 16일 주요 뉴스로 다뤘다.

이에 앞서 <국제신문>은 지난 5일 "남해안특별법이 한나라당 경남출신 의원과 경남도가 늑장을 부리는 사이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해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며 "자칫 주도권을 민주당과 전남도에 빼앗길 수 있다"고 보도했다.

새만금특별법 제정 움직임에 관한 <전라일보> 보도
새만금특별법 제정 움직임에 관한 <전라일보> 보도 ⓒ 전라일보
그러나 광주·전남지역 언론사들은 남해안발전특별법보다 아시아 중심 문화도시 특별법 제정에 따른 후속대책과 함께 S프로젝트(서남해안 개발사업 프로젝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사가 오히려 주목을 끈다.

게다가 이 지역은 국제자동차경주대회 유치 등 서남해안관광레저도시 개발사업인 J프로젝트 특별법까지 추진 중이다. 이 때문에 특별법 제정을 위한 정치권의 분발을 촉구하는 기사가 눈에 띄게 많다.

전북지역 언론사들은 15일 새만금특별법 제정을 위한 로드맵이 결정됐다는 전북도의 발표내용을 대대적으로 부각시켰다. 일부는 타 지역의 잇따른 특별법 제정 추진이 걸림돌로 작용될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촉구하기도 했다.

한쪽만 바라봤다간 금세 '편견의 감옥' 행

대구·경북지역도 특별법에 민감하기는 마찬가지. 경주의 세계 역사문화도시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보도가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매일신문>은 지난 11일 "세계역사문화도시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은 2005년부터 30년간 3조 76억 원을 들여 추진할 '경주역사문화도시 2004'의 원활하고 안정적인 추진을 위해 법률제정이 필요하다"며 입법발의 예정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그런가 하면 혁신도시 특별법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경기도와 대전·충청지역은 갈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언론보도에서 알 수 있다. 혁신도시건설 특별법에 대한 반대의지를 표하고 있는 수도권 자치단체장들의 행보에 언론은 시선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역신문들은 특히 "특별법 통과 못한다", "개정하라" 등의 제목과 함께 관련 기사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강원지역 언론사들은 설악-금강권 연계 개발을 담은 통일관광특별지구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통일관광 특구법) 제정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자치단체와 지역 정치권의 공조에 시선이 곤두서 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지역마다 발전을 위한 각종 특별법 제정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는 곧 지역언론의 주된 의제로 채택되고 있다. 지역신문들은 주로 미시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미시적 관점에도 함정은 있기 마련. 지역이 사회적 삶의 가장 중요한 기초 또는 유일한 요소라고 보는 현상학적 개인주의로 함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관점의 미시적 접근법은 상반된 의제를 생산하기 마련이다. 균형 잡기가 어렵기는 중앙언론의 상황과 마찬가지다. 중앙이건 지역이건 어느 한쪽만 바라 봤다간 금세 '편견의 감옥'에 갇히기 쉬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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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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