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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미군기지확장예정지인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에서 빈집 강제철거를 시작하겠다고 밝힌 13일 자신의 집이 철거된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는 김행정씨 뒤편으로 부서진 집의 잔해더미가 보인다.
국방부가 미군기지확장예정지인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에서 빈집 강제철거를 시작하겠다고 밝힌 13일 자신의 집이 철거된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는 김행정씨 뒤편으로 부서진 집의 잔해더미가 보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아이고, 이 한복 치마… 우리 마누라가 시집 올 때 입고 온 옷인데…."

김행정(65·평택 팽성읍 대추리)씨가 흙이 잔뜩 묻은 초록색 한복 치마 저고리를 보며 울분을 터뜨렸다. 전날 산 영양제도 뚜껑을 여니 그대로다.

옷가지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세탁기, 침대 매트리스, 화장대 등이 반투명 비닐로 덮인 채 집 앞에 늘어선 것을 보니 아들뻘 되는 전경 100여명 앞에서도 저절로 눈물이 났다.

13일 미군 기지 확장 예정지인 평택 대추리에 대한 국방부의 빈집 철거가 있었던 날, 대추리 빈집들뿐만 아니라 김씨도 '날벼락'을 맞았다.

김씨가 이날 오전 아내와 함께 평택 시내 병원에 다녀온 사이 용역업체 직원들이 김씨의 집이 폐가인 줄 알고 부숴버린 것. 용역업체 직원들은 텅 빈 김씨의 집을 철거하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라는 이웃들의 말에 작업을 멈추고 휴식에 들어갔다.

김씨는 이날 오전 6시 집을 나서 11시께 집으로 돌아왔다. 빈집 철거 소식을 듣고 혹시나 집을 부순 잔해가 집 앞 골목을 막아 농기계들의 왕래가 어려울까 걱정돼 몸이 불편한 아내를 두고 먼저 마을로 들어온 것.

원정삼거리에서 차를 막는 바람에 3km가 넘는 거리를 종종걸음으로 걸어왔다. 하지만 김씨를 기다린 것은 감쪽같이 사라진 방 3개와 길거리에 나앉은 세간들이었다.

마당에는 부서진 담벼락 더미가 펼쳐져 있었고, 트렉터와 콤바인을 세워둔 차고의 지붕은 부서진 채 농기계들 위에 널려 있었다. 부친이 물려주신 족보, 골동품뿐만 아니라 기르던 개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미군 기지 확장되면서, 하나둘 사라진 김씨의 자산

자신의 집이 철거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김행정씨가 철거용역직원들이 골목에 내다놓은 살림살이를 챙기고 있다.
자신의 집이 철거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김행정씨가 철거용역직원들이 골목에 내다놓은 살림살이를 챙기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집 앞 골목길을 가득 메운 경찰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답을 주지 않았다. 김씨는 기자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며 "배운 것이 짧아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할지 물어볼 만한 동창생도 없다"고 울먹였다.

김씨는 "짐을 보면 모르냐, 딱 보면 사람 사는 집인 줄 알 거 아니냐"며 "집을 허물려면 사람이 사는 집인지 확인을 꼼꼼히 해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경찰을 나무랐다. 김씨의 집은 방 3개와 창고, 주차할 수 있는 마당 등 25평 정도다.

김씨가 대추리에 들어와 산 지는 33년이 넘는다. 지난 1972년 충남 공주에서 이사와 농사를 대추리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사올 당시 돈이 넉넉치 않아 무허가로 지은 창고 같은 집에서 여덟 식구가 산 적도 있었다. 10년 전부터는 가끔 들르는 두 손자와 김씨 내외가 살고 있다.

그는 "무허가라도 (이사에) 합의를 하면 보상금을 준다고 들었다"며 "근데 집이 이렇게 된 마당에 무허가 주택에 보상을 해주겠느냐"고 토로했다. 이어 "나가라면 나가야지, 이제 어쩌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의 주택은 현재 팽성읍으로부터 공고 통지를 기다리고 있다. 무허가인 탓에 팽성읍이 한 달 유예기간을 주고 택지의 실제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주택에 대한 보상이 나올 예정이었다.

김씨는 집 뒤편 350여평의 논을 일궈 생활했다. 3천만원씩 하는 농기계들을 살 때 진 빚도 어느새 다 갚았다.

하지만 미군기지 확장 소식이 들리면서 김씨는 하나 둘씩 잃었다. 농지를 둘러싸고 있던 과일나무 100그루 등이 사라졌고, 주위 이웃들도 집을 비우기 시작했다. 동네가 시끄러워지면서 아내도 화병을 얻어 하루걸러 병원 신세를 져야할 상황이다.

김씨는 "오늘밤은 창고에서 자야겠다"며 창고 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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