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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둘러싸고 전직 고위외교관 160명이 10일 집단성명을 발표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이 가운데에는 반기문 현 장관을 중용했던 이정빈(왼쪽) 전 장관과 공로명 전 장관 등이 포함돼 있다.
ⓒ 연합뉴스·오마이뉴스 이종호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둘러싸고 전직 고위외교관 160명이 10일 집단성명을 발표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외교통상부는 다음날 간부회의를 거쳐 당국자 논평을 발표하고 '선배'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과거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하며 한국외교의 과제들을 함께 풀어갔던 선후배 사이. 때론 한 공관에서, 한 사무실에서 매일 얼굴을 맞대며 국익 실현을 위해 고민했을 이들 사이의 갑론을박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당혹스럽고 착잡한 심정이다.

전직 장관들이 키워낸 외교부 '미국통'들

성명에 서명한 160명 중에는 최호중, 공로명, 이정빈 등 3명의 전직 외교 장관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현재 외교 일선을 뛰고 있는 반기문 장관을 비롯한 후배들에게 일격을 가한 셈이 됐다. 성명은 취지야 어떻든 현 외교라인이 밝힌 대미 교섭의 방향과 내용을 믿지 못하겠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기문 장관을 대미 외교의 실무책임자인 미주국장에 기용한 것은 당시 최호중 장관이었다. 현 정권의 핵심 외교라인인 유명환 차관과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도 그 밑에서 북미과장을 지내며 '미국통'으로 성장했다.

공로명 전 장관도 재직 시절 반 장관을 특별히 중용했다. 외교정책실장에 발탁한 지 5개월 만에 다시 제1차관보를 맡긴 것은 당시 극히 이례적인 인사였다. 반 장관은 다시 한 달 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발탁되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유명환 차관도 공 장관에 의해 북미국장에 기용됐으며, 현 조태용 북미국장은 그 밑에서 북미과장을 했다. 송민순 실장은 공 장관 시절 북미국 심의관을 거쳐, 이정빈 장관 밑에서 북미국장을 지냈다.

장관부터 실무 국장까지 전작권 문제를 다루고 있는 현 대미 외교라인의 핵심이 공교롭게도 이들 3인의 전직 외교 장관이 '키운' 인사들이다. 그런 후배들이 하는 일이 그렇게 못 미더웠을까.

"사실관계 정확히 파악하고 비판하라"

전작권 논란의 핵심은 '안보공백'에 대한 우려에 있다. 전직 외교관들은 성명에서 "한미연합사와 전시작전권 축이 없어지면 한미동맹의 약화와 한미 합동군사전력에 결정적인 비효율성이 초래되고 결과적으로 정치 및 경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논평은 "우리 사회 일각에서 우려하는 바와 같이 전작권 환수는 주한미군의 철수나 한미 동맹관계의 약화를 초래하지 않을 것이며 이는 미 정부 고위관계자들에 의해서도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고 반박했다.

현 대미외교 담당자들이 "전작권 환수 과정에서 안보에 부정적 영향이 없도록 미국과 긴밀히 협의해오고 있다"면서 "믿어달라"고 호소하지만, 선배들은 "못 믿겠다"고 등을 돌린 꼴이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통상부 간부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한미 간 교섭의 구체적 내용을 파악할 위치에 있지 못한 전직들의 추론을 근거로 한 주장"이라며 "동맹관계와 전시 지원에 지장이 없도록 미국과 교섭하고 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귀 기울여주지 않으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다른 한 간부도 "외교정책은 통치철학에 입각, 종합적인 정보를 가지고 결정하는 것"이라며 "외교관 출신이라 하더라도 정확한 정보에 접할 수 없는 전직들의 성명은 단순한 민간 차원의 의견 발표일 뿐"이라고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외교통상부 간부들은 전직들이 160명이나 성명에 이름을 올렸는데도 "전혀 낌새를 채지 못했다"면서 "도대체 누가 주동이 되어 그 많은 사람들을 모았느냐"며 기자들에게 오히려 경위를 묻기도 했다.

외교통상부 내에는 전직 외교관들의 성명내용에 공감을 표시하는 관리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대외관계 속에서 철저히 국익을 다투도록 훈련 받은 외교관 출신들이 이렇게 집단적 의사표시에 나섰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더구나 역대 장관들이 스스로 공들여 키워놓은 현 대미 외교라인과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은 아이러니라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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