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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저녁 대추리 농협창고에서 마을주민과 지킴이들이 참석한 가운데 741번째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지킴이 청년들의 흥겨운 춤과 노래를 보며 주민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11일 저녁 대추리 농협창고에서 마을주민과 지킴이들이 참석한 가운데 741번째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지킴이 청년들의 흥겨운 춤과 노래를 보며 주민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1일 저녁 대추리 농협창고에서 741번째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11일 저녁 대추리 농협창고에서 741번째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마을주민들이 강제철거에 항의하는 뜻으로 촛불을 높이 들고 있다.
마을주민들이 강제철거에 항의하는 뜻으로 촛불을 높이 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군이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 우겨도 팽성은 우리의 땅"

빈 집 철거를 눈 앞에 둔 11일 저녁, 미군 부대 확장 예정지인 경기도 평택 대추리. 문정현 신부가 '독도의 우리땅' 노래를 개사해 "팽성은 우리 땅"이라고 선창하자 대추리·도두리 주민 100여명은 "우리 땅"으로 추임새를 넣었다.

문 신부는 내친 김에 지팡이를 번쩍 들어 어깨춤을 췄고, 마을 주민들은 박수로 박자를 맞췄다. 뒤이어 대학생 4명이 노래와 익살스러운 춤을 선보이자 관객들 사이에서 "한번 더"라는 연호가 터져 나왔다.

마을 주민들이 출연하고 문 신부가 직접 편집한 '해변으로 가요' 개사곡의 뮤직비디오는 주민들 사이에서 대히트를 쳤다. 창고 바깥에서 국방부의 빈집 철거를 걱정하며 연신 담배를 피던 중년 남성들도 스크린 앞으로 몰려들었다.

벌써 741번째... '전국노래자랑' 같은 촛불집회

이날 저녁 7시 30분께 농협창고에서 열린 촛불집회는 '전국 노래자랑' 대추리편을 보는 듯 했다. 국방부가 빈집 철거 계획을 밝혔지만 마을 주민들은 변함없이 촛불집회를 열었다.

벌써 741번째 집회라 사회자와 주민들간의 호흡도 척척 맞는다. 지난 5월 대추분교가 쓰러진 이후 두번째 행정대집행인 탓에 긴장감이 맴돌았지만, 집회장 내부만은 웃음과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집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주민들의 얼굴에는 곧 웃음이 사라졌다.

정태화(72·평택 대추리)씨는 "대학생들 덕분에 오랜만에 크게 웃어본다"며 "마을 입구를 막고선 경찰들이 동네 사람들 다 버려놨다"고 토로했다. 그는 "멀쩡히 농사짓던 땅도 뺏어가 놓고는 입구에서부터 두세번 검문하니 울화통이 터져 살 수가 있냐"며 "글을 쓰려고 해도 손이 떨려 못 쓴다"고 말했다.

정씨는 1만평 가량의 농지 중 8천평을 미군에 내줬단다. 태어나 지금까지 대추리를 떠난 적이 없는 정씨는 "지난 여름 심어놓은 모는 계속 자라는데, 철조망 때문에 가 볼 수가 있나, 풀만 무성해진 논을 그저 바라볼 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주민들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지난 5월 대추분교를 강제로 부순 데 이어 마을을 또다시 강제로 부순다는 것은 주민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라며 국방부를 규탄했다. 이들은 "강제 철거는 정부와 주민간의 전쟁만 불러일으킬 뿐"이라며 "정부는 더이상 주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말라"고 호소했다.

대추리 마을의 한 빈집에 강제철거에 항의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대추리 마을의 한 빈집에 강제철거에 항의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5월 국방부가 강제철거한 대추분교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운동장에 철조망이 허리에 걸린 한반도 설치물이 설치되어 있다.
지난 5월 국방부가 강제철거한 대추분교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운동장에 철조망이 허리에 걸린 한반도 설치물이 설치되어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대추리 마을 입구에 강제철거에 항의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대추리 마을 입구에 강제철거에 항의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오늘 뺏길까, 내일 뺏길까'... 하루하루가 악몽

국방부의 빈집 철거가 임박한 가운데 마을 주민들은 "치고 들어오면 우리가 어쩔 수 있냐"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또 철거 일자가 '오늘 내일' 하면서 초조해진 주민들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며 정부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송재국(69)씨는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다"며 "지난밤에도 경찰이 들이닥쳐 집을 부수는 악몽을 꿨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시끄러운 비행 소리도 이제 일상"이라며 "전에는 미군이 고마운 존재인 줄 알고 이런 소음도 즐겁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몸서리가 쳐진다"고 말했다.

'철거 스트레스'에 부부가 모두 소화불량과 심장질환에 시달린다는 그는 "힘으로 치고 들어온다면 어쩔 수 있겠냐"고 말했다. 그의 집은 지난 5월 철거된 대추분교 정문과 맞닿아 있다.

송씨는 "힘있는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은 자식 교육이나 노후 생활을 걱정하지 않겠지만, 땅만 보고 산 우리는 그렇지 않다"며 "보상 좀 해준다고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전에도 마을 어귀의 경찰과 한바탕 말다툼을 벌였다. 마을 주민이 아닌 학생들이 버스를 타고 마을에 들어오려고 하자 경찰이 버스를 20분 넘게 잡아뒀기 때문. 그는 경찰을 향해 "(외부인들을) 막으려면, 집 부수는 현장에서 잡으면 될 것 아니냐"며 한바탕 욕을 퍼부었단다.

최근 욕이 부쩍 늘어난 이는 송씨만이 아니다. 김영녀(81)씨는 촛불집회 장소로 향하던 도중 경찰의 함성 소리가 들리자 "왜 남의 동네에 와서 시끄럽게 구느냐"며 "요즘 욕만 늘었다"고 말했다.

마을 들어올 때마다 신분 검색... 저 너머 논에는 풀만 무성

11일 오후 마을입구인 원정삼거리에 검문소를 설치한 경찰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마을 주민을 세워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11일 오후 마을입구인 원정삼거리에 검문소를 설치한 경찰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마을 주민을 세워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경찰들이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마을로 통하는 입구를 바리케이트로 봉쇄한 가운데 11일 오후 자전거를 탄 한 주민이 마을에서 나오고 있다.
경찰들이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마을로 통하는 입구를 바리케이트로 봉쇄한 가운데 11일 오후 자전거를 탄 한 주민이 마을에서 나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마을 입구에는 '평화를 택하라'는 바닥그림이 그려져 있다.
마을 입구에는 '평화를 택하라'는 바닥그림이 그려져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농지가 미군 기지로 흡수된 뒤 농사일도 줄어들면서 할 일이 없어진 주민들은 음주량도 늘어났다.

대추리의 한 주민은 "일이 없어 술을 많이 마셔서 종종 주민들간의 싸움도 일어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마을을 드나들 때마다 두세차례 맞닥들여야 하는 경찰들의 검문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다.

경찰은 지난 5월부터 주민들의 주민번호를 확보해 마을 주민이 아니면 진입을 금지하고 있다.

동창리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신인철(54)씨는 "경찰이 처음 주민 목록을 만들 때, 실수로 주민번호를 잘못 파악해 하루에 100번 이상 주민등록증을 보여줘야 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잘못 기재했으면 수정해야 하는데, 관할 경찰이 매번 바뀌면서 잘못된 목록을 그대로 전해줘 왔다갔다 할 때마다 혈압이 오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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