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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엄마'를 기념하여 딸이 기부를 했다.
'책벌레 엄마'를 기념하여 딸이 기부를 했다. ⓒ 한나영
'신시아나 공공도서관(켄터키주 소재)에 있는 책을 전부 읽은 나의 어머니 매덜린 피츠제럴드 핑크를 기념하여.'

'책벌레 엄마'를 둔 딸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려 도서관에 기부를 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딸 엘리자베스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 매덜린이 읽어주는 책을 들으며 자랐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로부터 도서관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엄마는 말이야. 어렸을 때부터 책을 아주 좋아했단다. 그래서 엄마가 자란 신시아나 도서관으로 매일 놀러갔었지. 거기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을 친구 삼아 열심히 놀았단다.

그곳에서 놀면서 얼마나 재미있게 책을 읽었던지 나중에는 읽을 책이 하나도 없더구나. 다 읽어버려서 말이야. 그래서 엄마는 결심했지. 이 다음에 돈을 벌면 엄마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돈을 써야겠다고. 엘리자베스, 너도 이 다음에 커서 어른이 되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엄마로부터 책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란 딸은 엄마의 당부를 잊지 않고 도서관에 돈을 기부했을 것이다.

'책벌레' 였던 엄마를 위해...

아버지를 기념하여 익명의 아들이 기부를 했다.
아버지를 기념하여 익명의 아들이 기부를 했다. ⓒ 한나영
아내이자, 엄마, 할머니이면서 친구였던 일레인을 추모하며.
아내이자, 엄마, 할머니이면서 친구였던 일레인을 추모하며. ⓒ 한나영
이 이야기는 벽에 걸린 동판을 보고 내 마음대로 추측해낸 상상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상상이 사실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해 도서관에 기부를 한 사람은 딸만 있는 게 아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느 아들 역시 사랑하는 아버지를 오래도록 추억하기 위해 도서관에 기부를 했다.

이같이 부모를 기념하기 위해 자녀들이 도서관에 기부를 한 경우는 많다. 메사누튼 도서관에는 온 가족이 한 여성을 아름답게 추억하는 동판이 있어 눈길을 끈다. 어린이실에 붙어있는 일레인 스트로드맨(Elaine E. Strawderman)을 기억하는 동판이 바로 그것이다.

'아내이자, 엄마, 할머니이면서 친구였던 일레인을 추모하며.'

일레인은 온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여성인 듯 하다. 동판에는 '책은 두고두고 열어볼 수 있는 선물(A book is a present you can open again and again.)'이라는 베리 리이브만(Barry Liebman)의 말도 적혀 있다. 아마 평소에 일레인이 가족들에게 '영원한 선물은 바로 책'이라는 사실을 어록으로 남기지 않았을까.

일레인은 가족으로부터만 추모 동판을 받은 게 아닌 것 같다. 그녀의 이웃과 친구들로부터도 기념 동판을 헌정받았다. 아마 모르긴 해도 평소 책을 좋아하고 인품이 훌륭했던 그녀를 위해 이웃과 친구들이 도서관에 기부를 한 게 아니었을까.

사랑하는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일레인 스트로드맨과 윈 부부를 기념하여
사랑하는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일레인 스트로드맨과 윈 부부를 기념하여 ⓒ 한나영
인간의 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건 분명 축하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장수의 복'을 누리게 된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축하해주면 좋을까. 호텔이나 큰 회관을 빌려 한 번 먹고 마시는 잔치로 끝낼 것인가. 아니면 해외 여행을 보내드리는 것으로 생색을 낼 것인가.

잔치나 여행도 물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도서관의 동판을 자세히 읽어보면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축하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이곳에 걸린 동판에는 100회 생일을 맞이한 사람을 축하하는 동판도 있다. 잔치나 여행 등의 일회성 이벤트 대신 그 사람의 이름으로 도서관에 기부를 한 것이다. 그러면 평생 기억할 의미있는 생일 선물이 되지 않았을까.

때론 100회 생일을 기념해서

100회 생일을 기념하여.
100회 생일을 기념하여. ⓒ 한나영
좋아하는 분야를 지정하여 기부할 수 있다. '블림 하사는 공상과학을 좋아했을까?'
좋아하는 분야를 지정하여 기부할 수 있다. '블림 하사는 공상과학을 좋아했을까?' ⓒ 한나영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특별히 자기가 즐겨 읽는 분야의 책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KDC(한국십진분류법)에 의한 도서분류 가운데 600(예술), 700(언어)과 800(문학)이다. 그리고 문학 가운데에도 어렸을 때에는 추리소설과 동화를, 청소년 시기에는 세계 문학을,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한국 문학을 즐겨 읽었다.

그런데 이 도서관에 책을 기증하는 사람들을 보면 개인의 독서 취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동판들이 많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던만큼 자기가 즐겨 읽던 분야의 책을 지정하여 동판으로 남긴 것이리라.

도서관에 기부를 하는 건 개인만이 아니다. 단체나 기업도 기부를 많이 하는데 은행, 변호사 사무실, 부동산 회사, 로터리 클럽 등의 동판도 눈에 많이 띈다.

그런데 이런 동판을 읽으면서 감동적이었던 문구를 발견했다. 바로 닐슨 건축회사가 기부한 동판에 쓰인 문구였다.

훌륭한 솜씨와 업적을 보여준 우리 회사의 탁월한 종업원들에게(닐슨건축회사)
훌륭한 솜씨와 업적을 보여준 우리 회사의 탁월한 종업원들에게(닐슨건축회사) ⓒ 한나영
'훌륭한 솜씨와 업적을 보여준 우리 회사의 탁월한 종업원들에게 바칩니다.'

적어도 이런 문구를 동판에 새길 정도의 회사라면 진정으로 종업원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땀과 수고를 인정한 기업이지 않았을까. 내가 만약 닐슨 건축회사의 직원이라면 이 동판을 볼 때마다 나를 인정해준 회사에 충성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이 곳에 걸린 동판에는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많을까. 동판이 걸렸다는 것은 그만큼 기부를 많이 했다는 뜻인데…. 사업가? 의사? 변호사? 회계사? 부동산업자?

35년간 도서관장으로 일했던 Joyce C. Moyers를 기념하여.
35년간 도서관장으로 일했던 Joyce C. Moyers를 기념하여. ⓒ 한나영
자신이 몸 담았던 직장에 기부를 한다. 전직 도서관원들.
자신이 몸 담았던 직장에 기부를 한다. 전직 도서관원들. ⓒ 한나영
돈을 가장 많이 벌 것 같은 사람일 거라고 추측해 보지만 아니다. 그럼 누구일까. 바로 도서관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다.

자기가 몸담았던 직장에 기부를 많이 하는 것은 사실 미국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 아니다. 아주 흔한 일이다.

교수가 평생 몸담았던 대학에 장학금을 내놓고, 의사 역시 자기가 근무했던 병원에 연구기금을 내놓고…. 그만큼 애정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기부동판, 가장 많이 새긴 이들은 누구?

이와 관련하여 메사누튼 도서관의 마케팅 디렉터인 바바라 부시에게 무식한(?) 질문을 던져 보았다.

- 동판 가운데에는 도서관원들의 기부가 눈에 많이 띈다. 왜 그런가. 혹시 강제적으로 돈을 거두는 게 아닌가. 아니, 강제적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조직 내에 기부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아닌가.
"도서관원들의 기부가 많았던 것은 자기가 받았던 것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자신이 일했던 곳에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본인이 잘 알고 있기에 지원을 하는 것이다. 결코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개인으로부터 기부를 받고 있는, 사립의 성격도 띄고 있는 이런 도서관에서는 이런 형태의 기부가 흔한 일이다."

내 몸이 수고하여 번 돈이었지만 자신에게 일할 기회를 준 평생 직장에 기부를 하고, 도서관에서 받은 혜택에 감사하여 다음 세대를 위해 다시 기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도서관 동판에는 이처럼 수많은 아름다운 사연들이 새겨져 있었다.

도서관 벽, 서가 등 발 닿는 곳마다 동판이 보인다.
도서관 벽, 서가 등 발 닿는 곳마다 동판이 보인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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