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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제를 다룬 <전남일보> 7일자 사회면
서울대 의제를 다룬 <전남일보> 7일자 사회면 ⓒ 전남일보
'서울대 20명이상 합격고교 12곳'
'서울대 합격고교 우리지역 최고'
'서울대 당락 논술면접이 좌우'


서울대를 중심에 놓고 전국 고교를 평가하는 언론보도가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지역 또는 학교간 학력차를 비교하면서 서열화를 조장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그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늘 그래왔듯 서울대 의제는 기다렸다는 듯이 금세 불붙고 만다. 마치 불 잘 붙는 시너처럼.

지난 5일 서울대가 김영숙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서울대 2006학년도 입학생 출신지역, 고교별 합격자 현황'이 불씨를 당겼다. 각 학교별 순위를 서울대 합격자 수에 맞춰 비교 분석한 <조선일보> 보도행태는 단연 주목을 끌만했다.

서울대 합격자 현황자료 불씨 당겨

전국 각 고교의 서울대 입학생 수를 비교, 서열화한 <조선일보>
전국 각 고교의 서울대 입학생 수를 비교, 서열화한 <조선일보> ⓒ 조선일보 인터넷신문 화면캡쳐
<대구일보> 7일자 사회면.
<대구일보> 7일자 사회면. ⓒ 대구일보
<조선일보>는 1명 이상의 합격자를 낸 학교에서부터 20명 이상 합격자를 낸 전국의 학교를 일일이 줄세웠다. 이어 서울대가 8일 내놓은 '입학생 배출고교에 관한 현황' 자료는 서울대 의제를 한층 강화시켰다. 전국의 각 일간지들은 일제히 과학고를 비롯한 특목고 출신의 서울대 입학증가 현상을 두드러지게 부각시켰다.

성적으로 줄을 세워 '서울대의 나라'를 건설해 보려는 것일까. 중앙 언론에 의해 불붙은 서울대 의제는 지역신문 지면에까지 순식간에 옮겨 붙었다. 앞 다퉈 지역 간, 학교 간 성적비교를 통해 줄 세우기를 시도하는 모습에선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가 갖는 의미는 과연 뭘까'하는 물음을 재차 던져주기도 했다.

"서울대 합격자 중에 지역고교 출신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며 의제를 확대 재생산하는가 하면 일부는 "서울대 합격자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며 심각한 지역 학력저하 현상을 우려하는 지역신문 사설도 등장했다.

또 "10명 이상의 합격자를 낸 학교가 우리 지역엔 없다"며 서운해 한 지역 신문도 눈에 띈다. 오는 2008년부터 시행될 서울대의 논술면접 비율 강화 등을 사회면 톱뉴스로 보도하기도 했다. 같은 기간 지방대 의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처럼 한동안 잠잠했던 서울대 의제는 국감이 다가오면서 활활 기세를 더해만 간다.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이어 2008년 서울대 논술면접 강화 방침 발표와 법원의 수능성적 공개 등이 기폭제로 작용하면서 그 위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수능성적 자료 공개판결, 찬반 가열

<광주일보> 7일자 사설.
<광주일보> 7일자 사설. ⓒ 광주일보
찬반 논란도 서울대 의제를 키우면 키웠지 잠재우진 못한다. 법원이 '연구목적을 위해 요청이 있을 경우 교육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개인 신상 정보를 제외한 수험생과 학과별 성적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찬반 논란은 확산됐다.

자칫 전국 고교의 학력 차를 고스란히 노출시켜 고교등급제, 나아가 평준화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와 반대를 주장하는 쪽과 학교 격차를 더 이상 숨길 명분이 사라졌다며 반기는 두 표정의 얼굴이 그것이다.

두 얼굴은 <조선>과 <경향>의 사설에서 극명하게 드러냈다. <조선>은 9일 '법원 판결로 학교 석차 숨길 명분 사라졌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교육부가 오히려 엄연한 격차를 속이기 위해 자료 공개를 막아온 것이 학교 서열을 더 굳히고 교육 양극화를 더 키워왔다"며 크게 반겼다.

이에 반해 <경향>은 '파장 우려되는 수능자료 공개 판결'이란 같은 날 사설에서 "1등 학교와 꼴찌 학교가 공식화된 마당에 추첨에 의해 학교배정이 이뤄지는 평준화는 온전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런 뒤 "이번 판결은 국민을 이롭게 하기보다 뚜껑을 여는 순간 불행이 시작되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지역 고교의 서울대 합격자수에 비상한 관심을 보여 온 지역 신문들도 수능 성적 공개와 함께 논술 및 면접이 강화될 것이라는 서울대 입시 경향을 잇달아 비중 있게 다뤘다.

입시전쟁과 미셀 푸코의 '판옵티콘'은 같다?

<영남일보> 9일자 사회면.
<영남일보> 9일자 사회면. ⓒ 영남일보
조그만 나라에서 중앙이건 지역이건 특정 대학이 갖는 의미가 이처럼 큰데 대해 프랑스 철학자 미셀푸코는 어떤 진단을 내릴 수 있을까. 근대적 감시 또는 규율의 기원을 '판옵티콘'(원형감옥)에서 찾았던 그라면 입시전쟁으로 상징되는 우리 학교교육을 틀림없이 판옵티콘에 비유했을 듯싶다.

원형감옥과도 같은 교육현장을 당국과 언론, 교사들은 간수처럼 중앙(서울대)에 있는 높은 탑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판옵티콘이 필연적으로 위협하게 될 것은 프라이버시와 만만치 않은 사회적 비용일 것이다. 이른바 전교조 등 교원단체가 주장하는 학교서열화와 사교육비 증가 문제다.

그럼에도 지역 의식의 서울 식민화를 가장 경계해 왔던 지역 언론사들까지 서울대 의제 좇기에 가세하고 있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쏠림의 피해는 결국 지역민의 몫이 아니었던가.

'서울 공화국', '서울대의 나라', '삼성의 나라' 등으로 대변되는 1극 체제와 그에 따른 부작용을 '쏠림의 저주'라고 표현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치러야 할 지역의 희생은 너무 크다.

그런데 이러한 쏠림을 지역 언론까지 나서서 부추기고 있지 않은가. 학교간 서열화를 조장하고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수능 성적을 공개하거나 특정대학 입학자 중 고교별 입학수를 언론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던 약속들은 이미 사라지고 말았다.

서울대 렌즈만으로는 교육개혁 불가

<국제신문> 9일자 사회면.
<국제신문> 9일자 사회면. ⓒ 국제신문
가뜩이나 지방대학은 글로벌네트워크화 또는 학교 간 통폐합을 통해 생존경쟁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매년 줄어드는 학생수로 인해 문 닫는 학과 또는 학교가 줄지 않고 있음은 이를 반증한다.

'서울대특별법'이 사회적 의제로 등장할 때마다 서울대 망국론, 폐교론, 옹호론 등이 교차했다. 그 논쟁의 당사자이기도 한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그의 저서 <서울대의 나라>에서 서울대 문제는 서울대학교 당국의 문제거나 서울대 출신들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라고 역설한 바 있다.

서울대는 한국판 싹쓸이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일종의 문화현상이라고 본 그는 "모든 부분에서 서울대만이 최고이고 최고이어야 한다는 독선과 오만의 뿌리에는 간판제일주의와 학연만능주의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서울대는 대학입시 전쟁 격화의 한 주범일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에서 서울대가 갖는 이러한 의미를 꿰뚫어보지 않고서는 사실상 어떠한 교육개혁도 불가능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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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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