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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주(59)씨. 뇌병변 3급 장애인인 김씨는 지난달 장애를 이유로 항공기 탑승을 거부당했다.
김옥주(59)씨. 뇌병변 3급 장애인인 김씨는 지난달 장애를 이유로 항공기 탑승을 거부당했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자식들 앞에서 절대 울지 않으려고 하는데…. 장애 때문에 비행기를 못 탄 이후, 밥만 먹어도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것 같다. 장애가 이렇게 수치스러운 것인줄 몰랐다."

김옥주(59·울산 동구 남목)씨는 7일 오전 11시 국가인권위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이날 오른쪽 눈으로만 눈물을 흘렸다. 2002년 뇌졸중이 닥쳐 왼쪽 얼굴이 마비됐기 때문이다. 그는 왼쪽 눈으로는 울 수가 없다. 귀나 입도 제 기능을 못한지 오래다. 그는 왼쪽 얼굴과 오른쪽 몸이 마비된 뇌병변 3급 장애인이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날 아침 일찍 상경한 이유는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조영황)에 진정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열리는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김씨가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함께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유는 지난달 대한항공으로부터 비행기 탑승 거부를 당했기 때문. 이날은 비행기를 타고 상경했다. 딸과 함께였다.

오른쪽 눈으로만 운 장애인 "천민 취급 받는 것 같더라"

김씨는 지난달 17일 서울에 있는 자녀들도 만나고 병원 검사를 받기 위해 울산에서 오후 4시에 출발하는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자 공항에 도착했다. 예약한 표를 찾기 위해 신용카드를 꺼냈지만, 창구 직원은 "3급 장애인은 탈 수 없다"고 항공권을 내주지 않았다.

김씨는 "4월까지 혼자 비행기를 타고 다녔다"고 항변했지만, "규정이 그렇게 바뀌었다"며 남자 직원이 나와 김씨를 창구 멀리로 끌고 갔단다. 목소리를 낮춘 직원은 김씨에게 "3급 장애 등급으로는 보호자 동승 없이 탑승이 안 된다"며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해달라"며 김씨가 들고온 종이상자 2개를 들어 아시아나항공 발매 창구로 이끌었다.

결국 김씨는 울산공항에서 두 시간을 기다려 서울로 향했다. 그는 "보는 사람들도 많은데다 얼굴도 (마비 때문에) 이렇게 돼서 창피해 죽는 줄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당시 직원이 '죄송하다, 할 수 없다'는 말만 했어도 이렇게 분통이 터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장애인이라고 천민 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전에도 대한항공을 이용해 혼자 서울행이 잦았던 김씨는 황당했다. 마일리지를 쌓기 위해 한 항공사만 고집하던 그였다.

대한항공 여객기.
대한항공 여객기. ⓒ 대한항공 홈페이지
장애인이 타면 승무원이 불편한가

김옥주씨가 비행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지난해 5월 직장암 수술 이후 화장실 출입이 잦아져 고속버스나 승용차로는 서울 왕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나같은 장애인이 비행기를 타서 (승무원들을) 불편케 하는 것은 딱 한 가지, 에어컨 바람이 너무 강해 담요를 갖다달라는 것 말고는 없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소아마비로 4급 장애인인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뇌병변을 겪기 전까지는 장애인의 심정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제 손으로 양말을 신지 못하는 남편을 도우며 화가 날 때도 있었던 김씨지만, 이제 자신도 양말을 혼자 신지 못하는 상황. 그는 "'남편이 이렇게 불편했구나, 내가 이제 죄를 받는다'는 생각을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울산으로 돌아가면서 "이제 비행기를 아예 못 타는 거 아니냐"며 "아시아나항공사마저 장애인을 안 태워주면 어떻게 하느냐"고 우려했다.

대한항공 "정신장애 승객이 기내에서 난동부릴까봐"
"'지침'은 아니다... 사례에 따라 판단했어야 했다"

대한항공은 장애인 탑승 거부에 대해 "정신장애 승객들에 대한 탑승 제한은 안전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7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정신장애 승객들의 기내 난동 때문에 항공기가 회항하거나 승객들이 큰 불안을 느꼈다"며 "외부의 자문을 구한 결과, '정신지체 3급 이상 장애인은 탑승전 스크리닝을 강화해야 한다'고 해서 서비스 부서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직원들이 자문 내용을 '신규 지침'으로 잘못 받아들였다"며 "사례에 따라 섬세하게 판단했어야 하는데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직원들을 상대로 교육을 실시하는 등 장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날 전화 예약을 시도해보니, 대한항공의 경우 뇌병변 3급 장애인의 탑승 여부를 묻자 "보건복지부의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보호자 없이는 탑승할 수 없다"며 탑승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다만 동행하는 보호자나 의사의 소견서가 있으면 탑승이 가능하다.

반면 아시아나항공사는 '훼미리 케어 서비스(Family Care Service)'를 통해 장애인이라도 혼자 탑승이 가능토록 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연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뇌병변·정신지체·정신장애·발달장애 3급 이상의 장애인에 대해 보호자가 없을 경우 탑승을 거부하는 것은 명백한 장애인 차별"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장애인이 혼자 비행기를 탈 수 있는지 여부는 당사자가 결정할 문제이지, 항공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항공사의 탑승 거부는 명백히 장애인의 의사결정권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대한항공사의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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