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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대, 사막과 점점 하나가 되어가는 유사성의 유적. 그 있는 듯 없음의 아름다움이여.
봉화대, 사막과 점점 하나가 되어가는 유사성의 유적. 그 있는 듯 없음의 아름다움이여. ⓒ 김희년

그런 헛된 생각을 하는 사이, 차는 협곡에 도착한다. 천산신비 대협곡이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써 있는 너머로 기기묘묘하게 솟아오른 산이 첩첩이다. 주차장 한쪽에 금잔화가 곱게 피어있다. 서울에서야 흔히 보는 꽃이지만, 사막에서 이렇게 마주치지 더 마음이 간다. 몇 해 전 몽골 여행 때, 고비 사막의 허름한 가게 앞에 곱게 피었던 금잔화가 떠오른다. 일상에서는 아무 느낌이 없던 것들도 다른 공간에서는 또 새로운 느낌을 불러오는 법인가보다.

협곡 입구로 가지가 축축 쳐진 나무들이 서 있다. 전에 시안의 비림에서도 본 나무다. 저팔계 나무라고 했던 기억이 나, 나무 이름을 다시 물어보자, 우리를 안내하던 조선족 허광씨가 주위 사람들에게 묻더니 ‘유수(楡樹)’라고 한다. 유수면 느릅나무 종류인가, 그런데 우리나라 느릅나무하고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다. 이 나무는 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가는 곳곳마다 가로수로 많이 심어져 있다. 실크로드 하면 유수가 떠오르는 것도 그만큼 많이 마주친 때문이리라.

유수. 우리 느릅나무와 다르지만 사막에 있는 푸르름만으로도 싱그럽기 그지없다.
유수. 우리 느릅나무와 다르지만 사막에 있는 푸르름만으로도 싱그럽기 그지없다. ⓒ 최성수

협곡 안으로 좁은 길이 이어져 있다. 양편의 산들이 서로 맞닿을 듯 이어져 있어, 하늘이 좁아 보인다. 산 주름으로는 살아있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 그저 붉고 검은 바위와 흙뿐이다. 같은 바위고 흙이지만, 그 모양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옆으로 비껴 선 놈에, 심심한 듯 괜히 한 번 몸을 비비 꼰 놈에, 제 자랑이라도 하듯 하늘 높이 솟구친 녀석에, 힘이 부치는지 솟구치다 특 중간이 꺾인 녀석도 있다. 양편에 도열한 그 기기묘묘한 산들의 그늘로 협곡 안은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기까지 하다. 군데군데 물이 흐르고, 바위 위에서 톡톡 방울로 떨어지는 것도 있다.

천산신비대협곡 입구. 사막에 만들어진 협곡 자체가 신비로움이다.
천산신비대협곡 입구. 사막에 만들어진 협곡 자체가 신비로움이다. ⓒ 최성수

좁디좁은 협곡을 따라 들어가면 기기묘묘한 산 모양이 길을 가로막는다.
좁디좁은 협곡을 따라 들어가면 기기묘묘한 산 모양이 길을 가로막는다. ⓒ 최성수

사막 한 가운데에 이토록 기묘한 골짜기를 만들어 놓은 자연의 변화가 놀랍기 그지없다. 아득한 선사 시대, 이곳은 바다 속이었다고 한다. 땅이 솟구치고 가라앉으며, 지각의 변동을 통해 만들어진 신비한 풍광은 이름 그대로 신비 대협곡이다.

타클라마칸의 숨 막히는 사막을 걸어온 일행 모두가 협곡 안의 시원한 공기와 바람, 온도에 한 숨 돌린다. 협곡 한 곳에 샘도 있다. 먹어도 된다기에 맛을 보니, 짜다. 역시 소금기가 배어 있는 탓이다. 아득한 세월 그 너머에 이곳이 바다였다는 흔적은, 오는 길의 강물에 말라붙은 소금이라든가, 이처럼 짠 샘물에 기억처럼 남아있는 것이리라.

이 협곡 안에도 오래 전 인간이 다녀간 흔적으로, 천불동이 남아있다. 보전 차원에서 들어가 볼 수는 없게 된 천불동을 그냥 겉으로 보고 지나친다. 이미 키질 천불동을 보았고, 몇 해 전 실크로드 여행에서 천불동의 백미인 막고굴을 보았으니, 지나쳐도 아쉬울 것이 없다. 그저 보드라운 모래와, 그 모래를 몰래몰래 흐르다 슬쩍 제 몸 감추어버리는 물줄기와, 시원한 협곡의 공기만으로도 저절로 상쾌해 진다.

사막의 햇볕에 지친 몸을 쉬어가라는 듯, 협곡 안은 시원하고 상쾌하다. 맑은 샘도 흐른다.
사막의 햇볕에 지친 몸을 쉬어가라는 듯, 협곡 안은 시원하고 상쾌하다. 맑은 샘도 흐른다. ⓒ 최진형

몽골 고비 사망의 욜링암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 욜링암이 오히려 초원처럼 느껴지는 것은, 타클라마칸 사막이 더 황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곡의 높이와 멋만 따진다면, 이 천산신비 대협곡이 한 수 위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두어 시간 남짓한 협곡 여행을 마치고 나오니, 햇살은 더 뜨겁다. 붉은 산, 고운 모래, 맑은 물과 상쾌한 공기를 추억처럼 담아 둔 채 천산 신비 대협곡을 떠난다. 더 막막한 사막, 더 아득한 모래 먼지 속을 걸어야 할 남은 우리의 여행에, 이 신비 대협곡은 어쩌면 오랜 사막 여행길에 만난 오아시스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을 것이다.

쿠차 봉화대, 노을 속에 흐릿하게 남은 슬픈 전설

돌아오는 길, 쿠처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봉화대에 들른다. 키질 천불동의 싱그러운 오아시스 풍치를 바라보고 온 나그네의 눈길에, 봉화대는 더없이 쓸쓸하고 막막하다.

오아시스는 대조 때문에 아름다운 곳이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사막 길, 온통 흙빛과 바람에 모래 먼지만 날리는 흑백의 공간에서 어느 순간 나타나는 오아시스의 푸르름은 눈물이 핑 돌만큼 아름다운 대조를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이기 때문이다.

낙타풀 너머 첩첩 메마른 산. 막막한 사막의 풍경은 쓸쓸하다.
낙타풀 너머 첩첩 메마른 산. 막막한 사막의 풍경은 쓸쓸하다. ⓒ 최성수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가도가도 끝없는 모래벌판에 나타나는 오아시스는 얼마나 가슴 뛰게 하는지...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가도가도 끝없는 모래벌판에 나타나는 오아시스는 얼마나 가슴 뛰게 하는지... ⓒ 최성수

그러나 봉화대는 대조가 아닌 유사(類似)다. 사막의 한 가운데, 비교할 대상조차 없는 평평한 공간에 세워진 봉화대는 여전히 흑백이다. 그 자체로 사막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것 같은 모습이다. 오랜 세월 시간에 조금씩 조금씩 삭아 내리고 있는 봉화대는 그대로 사막의 모래이고, 먼지이고, 쨍쨍한 햇살이며, 스러지는 시간이다. 그 덧없음을 달리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 봉화대에는 부녀의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오랜 옛날, 구자국의 어느 왕에게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었다. 딸은 생김새가 곱기도 했고, 마음씨 또한 착했다. 왕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애지중지하는 자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라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점술사가 왕에게 찾아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아뢰었다.

“앞으로 백일 안에 공주님께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실 것입니다.”
왕은 깜짝 놀라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점술사는 망설이고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백일 안에 공주님께서는 세상을 뜨실 운명이십니다.”

왕은 어떻게 하면 공주를 살릴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다, 궁궐 안에 있으면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공주를 봉화대 안에 숨기기로 했다.

“봉화대에서 한 발짝도 나와서는 안 된다. 백일 동안만 참으면 될 테니, 절대로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

공주에게 신신 당부를 한 왕은, 하루에 한 번씩 공주에게 음식과 과일을 날라다 주고, 봉화대 밖으로는 일체 나오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99일이 흘렀다. 그동안 공주는 하루하루를 무사히 넘겼다.

‘이제 하루만 더 넘기면 된다.’

왕은 그제야 한 숨 돌리며, 공주가 무사히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백일이 되는 날, 왕은 마지막 식사와 과일을 공주에게 보냈다.

공주도 이제 내일이면 궁궐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지막 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사과를 덥석 베어 문 순간, 사과 속에 숨어있던 사막의 전갈이 공주의 입을 물었다. 전갈의 독에 공주는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공주의 소식을 들은 왕은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봉화대로 달려갔다. 그러나 봉화대에는 이미 싸늘한 시신으로 변한 공주의 주검만 남아 있었다. 왕은 공주의 시체를 끌어안고 통곡을 했다.

한동안 울음을 그칠 줄 모르던 왕은, 마치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풀어헤친 채 봉화대 위로 올라갔다. 봉화대 위에서는 아득한 사막의 끝까지 한 눈에 바라보였다. 그 사막의 끝, 모래 먼지 속에, 자신의 딸이 방긋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왕은 한동안 사막 저 쪽을 하염없이 내려다보다가, 몸을 아래로 던졌다. 왕은 사막 저편에 있는 딸의 환상을 찾아 떠난 것일까?

그 뒤, 이 봉화대는 딸을 그리워하는 아비의 모습을 닮아갔다고 한다. 봉화대는 죽은 딸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비의 슬픈 모습으로 수천 년의 세월을 조금씩 조금씩 제 속을 갉아가며 견뎌온 것이다.

슬픈 구자국 왕과 공주의 전설처럼 봉화대는 아비의 꺼칠한 모습을 한 채 스러지고 있다.
슬픈 구자국 왕과 공주의 전설처럼 봉화대는 아비의 꺼칠한 모습을 한 채 스러지고 있다. ⓒ 강마을

그런 전설을 되살리며 바라보는 저물녘의 봉화대는 쓸쓸하다. 아직 뜨거운 사막의 열기가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봉화대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스산한 것은, 전설도 유물도 다 사막 속에서는 허망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막의 유물이란 마모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외적의 침략을 알리기 위해 다급하게 봉화를 올렸던 사연도, 긴급했던 군호도, 아비와 딸의 애달픈 이야기도 다 사라지고, 가슴을 답답하게 틀어막는 열풍만 불고 있는 봉화대의 저녁 풍경처럼 쓸쓸한 것이 또 있을까?

쿠처 시내의 아이들. 아이들은 어디서나 쾌활하다. 사진을 찍어달라더니, 보여달라고 모여든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쿠처 시내의 아이들. 아이들은 어디서나 쾌활하다. 사진을 찍어달라더니, 보여달라고 모여든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 최성수

쿠처 이슬람 사원. 사막에서는 사원조차 사막의 일부처럼 아득하다.
쿠처 이슬람 사원. 사막에서는 사원조차 사막의 일부처럼 아득하다. ⓒ 최성수

봉화대를 떠나는 내내, 나는 사막의 막막함을 가슴 깊이 담아 둘 수밖에 없었다. 그 막막함은 이슬람 사원인 쿠처 대사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우리 일행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달려들던 위그르 아이들과, 모래바람처럼 사원 속에서 사막의 일부가 되어버리고 있는 위그르 어른들에게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어쩌면 쿠처에 살고 있는 모든 위그르 사람들이 모두 공주이고 왕인 것을 아닐까? 그들 모두가 봉화대에서 몸을 던진 왕이고, 사과를 먹다 전갈에 물린 공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의 모습 속에는 꾸부정하게 죽은 딸을 내려다보는 옛 구자 왕의 허망하고 덧없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 밤, 나는 밤새도록 모래 바람 속을 헤매는 구자왕의 꿈을 꾸었다. 그것은 고스란히 사막의 헛된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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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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