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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은 평택 대추리와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가고 싶으면 언제든 마실가듯 힁허케 갈 수 있는 곳이었다.

한동안 3일이 멀다 하고 대추리로 달려가 황새울의 차거나 뜨거운 바람을 맞기도 했고, 대추초교 운동장을 지키고 있던 비닐하우스에서 촛불을 들기도 했고, 벽 시와 깃발을 쓰기도 했다. 또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논과 무너진 대추분교를 둘러보기도 했고, 군인과 전경들의 동태를 살피기도 했고, 일없이 가서 술추렴을 하기도 했다. 마치 향수병을 앓듯 그렇게 한번씩 보고 와야 마음이 편해지던 곳이었다.

지금도 대추리는 지척에 있건만, 이렇듯 과거형의 문장으로밖에 쓸 수 없는 것은 강제철거를 앞두고 갈수록 지독해진 검문 때문이다.

차로 10분 거리 대추리행, 지금은 과거형

▲ 불법적인 불심검문으로 주민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가 없다.
ⓒ 평택범대위
그동안 나는 수도 없이 신분증을 제시해야 했고, 불법 검문을 따져야 했고, 별의별 각본을 짜서 마을에 있는 지킴이나 주민들과 입을 맞춰야 했다.

그들에게 법은 어기라고 있는 것이고, 법을 잘 지키려는 우리에게는 그 따위가 왜 있는지 한탄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황새울 들녘을 뒤덮으며 승냥이떼같이 몰려오던 5월 4일, 그날의 충격이 여전히 선연한 탓도 있지만, 개개인에게 공권력이란 불편하고 두려운 것이게 마련이다.

내 각본이 들통날까 봐 죄도 없이 마음졸여야 했고, 마을 주민과 직접 통화해야 내 말을 믿겠다는 그들의 눈 앞에서 핸드폰 버튼을 누르는 내 손가락은 나도 모르게 떨리기까지 했다.

각본이라고 해봐야 '옆 마을에 사는데 대추리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 곳에 법적으로 적(籍)을 두지 않는 사람은 죄다 '외부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그들의 행태는 비상식적이고, 반(反)인권적이고, 더할 수 없이 무식하다.

주민들 명부를 코팅까지 해서 들고있는 그들때문에 나처럼 대추리 향수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뜸해지고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차량을 되돌려야 하고, 시민 버스를 타고 들어가려는 사람들도 중도하차해야 하며, 심지어 일가 친척도 며느리도 들어가지 못한다.

운이 좋거나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사람은 잠시나마 영웅이 되어 무용담을 풀어놓아야 할 만큼 대추리·도두리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러니 불법 검문이 아무리 이해할 수 없고 분노스러워도, 한두번 강제적으로 발길을 돌리다 보면 그 심적인 부담감 때문에 평택행 자체를 미루고 기피하게 되게 마련이다.

그 곳에 갈 때 마다 나도 모르게 떨린다

한 번은 아시아 각국에서 온 연극인들 20여 명을 대추리로 안내하려던 적이 있다. 그 무렵에는 별다른 행사도, 행정 집행도 예정되어 있지 않던 때라 전세버스도 별 무리없이 통과한다는 것을 주민대책위 사무국장을 통해 확인까지 하고 난 뒤였다.

그러나 원정리 삼거리에서 차량을 막아선 경찰은 버스에 탑승한 사람들 대부분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여러 차례의 상부 보고를 거친 뒤에 끝내 차량을 되돌리게 했다. 외국인들이 20여 명이 왔으니 그들에게는 비상사태쯤 되었나 보았다. 끝판에는 서울경찰청장에게까지 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는 동안에 어디선가 전경차가 득달같이 달려오더니 전경들이 우르르 몰려와 앞을 가로막고서는 것이었다. 행여나 전세버스가 막무가내로 검문을 뚫고 갈지도 모른다고 터무니없는 우려를 했는지 어쨌는지…. 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라 노란 비옷을 갖춰 입은 전경들은 몇 겹으로 가로막고 섰다.

우리는 그들의 '오버'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고, 우리를 바라보는 전경들도 민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이 입은 옷이 노란 비옷이 아니라 시커먼 전투복이었다면, 좀 무시무시해 보였으려나. 게다가 그 우스꽝스런 '사태'에 놀란 외국인들이 하나 둘 버스에서 내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잠시 동안 비오는 원정리 삼거리에서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2시간여 동안 승강이를 벌이다 결국 대추리행을 포기해야 했고, 나는 외국인들에게 그간의 일들을 축약해서 설명하는 것으로 임무를 마쳐야 했다. 외국들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째서 이토록 강경하게 막는 것인지 몹시 궁금해 했다.

나는 비록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그들에게는 썩 나쁜 경험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는 경찰들이 결코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비밀들이 가득하고, 특히 아시아의 노동자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천박하고 야만적인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으리라는 짐작쯤은 하게 될 터이니 말이다. 어쨌든 정부 자신도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인정한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폭력

▲ 판화작품 <대추리 가는 길>
ⓒ 이윤엽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에게도, 공권력에도 그런 모습은 일상이 되어 버렸지만, 양쪽 모두에게 그것은 뒤틀리고 전복된 일상이다. 정상적인 일상을 거세하고, 그 자리에 야비하게 들어선 공권력은 시시각각 우리의 목줄을 죄어오는 폭력이고 억압이다.

불법을 불법이라고 항의하고 고발하는 것도 이제 싫증이 날 지경이 되었고, 불법이 방치되고 장기화되면 그저 또 다른 하나의 일상으로 뿌리내린다. 포주와 경찰, 조폭과 경찰의 관계처럼 온갖 뇌물과 술수와 폭력이 포식자의 배를 불리게 해줄 뿐이다.

평택경찰서 간부들이 입찰에 통과한 도시락 업체들로부터 엄청난 리베이트를 받은 사실만 보아도,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의 생존권과 이 나라의 평화를 미끼로 자본가와 권력자들이 얼마나 많은 돈따먹기와 권력 나눠먹기를 일삼는지 유추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리적인 폭력만이 폭력이 아니다. 거짓과 회유와 검문, 통행 지역 제한과 이동권 통제. 이러한 것들이 횡행하는 나라를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어불성설을 넘어 우리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치욕스런 일이다.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기다림 속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이 뭇 사람들을 만나 숨통을 틀 수 있도록 왕래를 자유롭게 해야 한다. 그 곳에 가려는 사람들이 그저 평화를 사랑하는 선량한 국민임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정부는 국가권력을 오용하고 남용한다는 불명예를 조금이라도 씻어내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평택 지킴이 릴레이 기고입니다.

* 글쓴이 류외향은 시인이자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위원이며,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 반대와 대추리 도두리 주민 생존권 옹호를 위한 문예인공동행동 '들사람들'의 일원으로 글쓰기를 통해 평택의 평화를 위한 문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가옥 강제철거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대추리 도두리에는 애타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습니다. 온 생애를 들녘에 바쳐 온 늙은 농부들의 삶이 이대로 파괴된다면, 우리사회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할 것입니다.

아직 '양심의 명령'을 지킬 시간은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오는 9월 24일에는 '사람을 먹여 살려온 들녘을, 사람 죽이는 전쟁기지로 만들지 않기 위한' 4차 평화대행진이 서울에서 열립니다. 황새울의 평화를 위해 힘과 뜻을 모아주십시오.

여러분을 9.24 평화대행진 ‘10만 준비위원’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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