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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놓고 작품활동을 할 수 있도록 어머니(오른쪽)가 모두 도와주셔서 행복하다며 활짝 웃는 이윤정씨.
마음 놓고 작품활동을 할 수 있도록 어머니(오른쪽)가 모두 도와주셔서 행복하다며 활짝 웃는 이윤정씨. ⓒ 정길현
구족화가 이윤정(33)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 달 27일 동두천에서 열린 '1004릴레이 희망의 마라톤' 대회 출정식장이었다.

인연이었을까. 천사운동본부와 울산MBC 후원으로 열린 '구족화가 이윤정 초대 개인전 희망의 질주'라는 현수막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3일 이씨를 집에서 다시 만났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휠체어없이는 혼자 힘으로 한 발자국도 밖에 나갈 수 없는 지체장애 1급이다. 어려서부터 유독 그림을 좋아했고 손으로 붓을 잡을 수가 없어 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사람이 그리운 나머지 글씨보다는 그림을 더 많이 그리게 됐지요."

살아날 가망 없다던 아기, 생명은 이어갔지만...

그는 95년 한 봉사단체의 도움으로 그림을 무료로 가르쳐주겠다는 허윤정 교수(광운대 디지털 미디어학과 겸임)를 만나면서부터 정식으로 그림지도를 받았다. 1997~2001년까지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4회 입선이라는 영광을 안았고 이어 2002년 제1회 이윤정 개인전을 열면서 세상에 이름 석자를 알렸다.

"아버지가 관공서 출입기자로 일하시다가 유신정권 때 해직을 당했어요. 사업을 시작했지만 실패해 가세가 기울게 됐고, 어머니가 서울로 올라와 각종 행상을 하느라 힘들던 시절에 저를 임신하게 되었지요."

힘든 행상일과 끼니조차 거르던 어머니는 결국 임신중독으로 7개월 만에 이씨를 낳았다. 의사는 아기가 살아날 가망이 없으니 포기하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하마터면 세상으로부터 버려질 뻔했던 이씨는 부모님 품 속에 안겨 집으로 돌아왔고 어머니의 헌신적인 정성으로 생명을 이어갔다.

그 뒤 3개월, 이씨의 잦은 경기로 소아과 병원을 찾았던 어머니는 다시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받게 된다. '선천성 뇌성마비'가 그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일 나가시고 오빠들이 학교에 가고나면 하루종일 혼자 집을 지켰던 그녀에게 오직 책만이 고독을 달래주는 친구였다. 많은 어려움 속에 그녀는 혼자서 책과 싸움하며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98년 초·중 과정을 한꺼번에 검정고시로 통과했지만, 고등 검정고시는 영어와 수학이 발목을 잡았다. 다행히 영어는 PC통신에서 만난 친구가 딱한 사연을 듣고 일주일에 한번씩 직접 찾아와 가르쳐주었고 99년 8월 수학과목을 제외하고 8과목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다.

이윤정씨가 혼자일 때 유일한 친구는 책이었다.
이윤정씨가 혼자일 때 유일한 친구는 책이었다. ⓒ 정길현
수학 때문에 고민하던 끝에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인터넷에 호소한 결과 당시 유학 준비를 하던 한 분의 도움을 얻게 되었다. 시간을 정해 채팅으로 지도를 받았지만 인터넷이 아닌 모뎀으로 PC통신하던 시절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수학기호들이 선생님과 그녀를 너무 힘들게 했다.

인고 끝에 2000년 4월 마지막 수학과목까지 무사히 통과했고, 꿈에 그리던 고등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제1회 개인전에서 허윤정 선생님과 함께 찍은 사진(왼쪽)과 한국방송통신대 졸업장과 보육교사1급 자격증.
제1회 개인전에서 허윤정 선생님과 함께 찍은 사진(왼쪽)과 한국방송통신대 졸업장과 보육교사1급 자격증. ⓒ 정길현
온 힘을 다해 발로 붓을 잡아 화폭에 그림을 그려 나가는 이윤정씨
온 힘을 다해 발로 붓을 잡아 화폭에 그림을 그려 나가는 이윤정씨 ⓒ 정길현
초중 검정고시, 방송통신대 졸업... 꿈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꿈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 대학에 도전하고 싶었다. 일반 미대에 지원하고 싶었지만 가정형편상 꿈도 꾸지 못했다. 결국 2001년 한국방송통신대학에 입학원서를 냈고 2005년 방송통신대 교육과를 비장애인들과 함께 당당하게 졸업했다. 그녀는 성적우수상, 평생학습상을 받았다. 거기에다 보육교사1급 자격증까지 따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어렸을 적 소원이 학교에 가서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를 받아보는 것이었다는 그녀. 학교에 가고싶어 몸부림치며 통탄의 눈물을 흘린 세월이 너무나 길었다고 한다. 어린 마음에 학교가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으면 이런 말을 했을까. 그녀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잊지 못하고 조용히 눈물만 흘렸다.

그런 그녀의 삶은 허윤정 교수를 만나면서 바뀌었다. 허 교수는 처음 이씨를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흔적은 없었지만 창의적 특성이 돋보였다, 집중력이 강해 기초 지도를 받으면 비장애인 못지 않은 좋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신체적으로 힘든 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끈기있게 노력하는 윤정이가 좋아 지도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이씨 또한 "선생님과 복지단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에 4회 연속 입선이라는 영예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이 받은 도움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움직이기 힘들지만 한 보육원에 나가 그림지도와 상담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홈피도 직접 관리 "댓글 하나 달려면 몇십분 걸리지만..."

이씨는 발로 마우스와 자판을 치며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www.mfpa.pe.kr/everyung)를 관리한다. 사진도 본인이 직접 스캔해 올리고 있다.

비장애인이야 1분이면 댓글을 2~3개씩 올릴 수 있겠지만 발로 컴퓨터를 쳐서 댓글을 달아야 하는 이씨는 한 줄의 댓글을 달기 위해 몇십분씩 피나는 노력으로 자판과 싸워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의 경험담을 필요로 하는 장애우들이 있다면 희망을 잃지 말라는 격려의 글을 며칠씩 밤새며 올린다.

이씨는 자신과 같은 장애인들에게 "'나는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깨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라"고 당부한다. 이씨는 "일단은 도전을 해보라"며 "힘들어도 도전하고 또 도전해보라"며 "본인이 먼저 끊기와 희망을 가지고 도전해야 도움의 길도 열린다"고 충고했다.

이씨의 삶이 많은 장애인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과 용기를 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윤정씨가 윤선도의 유배지였던 보길도의 세연정을 연상해 그리고 있다.
이윤정씨가 윤선도의 유배지였던 보길도의 세연정을 연상해 그리고 있다. ⓒ 정길현
이윤정씨가 발가락으로 마우스를 클릭해 홈페이지에 올라온 새글을 검색하고 있다.
이윤정씨가 발가락으로 마우스를 클릭해 홈페이지에 올라온 새글을 검색하고 있다. ⓒ 정길현
이윤정씨의 작품들
이윤정씨의 작품들
▲ 2005년 한국방송통신대 교육학과 졸업. 성적우수상, 평생학습상, 보육교사1급 자격증 취득
▲ 1997년 제7회 곰두리미술대전 입선: 작품명 '기다림'
▲ 1998년 제8회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입선: 작품명 '흥(興)'
▲ 2000년 제10회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입선: 작품명 'Escape(탈출)'
▲ 2001년 제11회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입선: 작품명 '인고의 시간속에서'
▲ 2002년 10월 제1회 이윤정 개인전 '기다림'
▲ 2003년 10월 4일 희망천사운동본부 천사데이 초대전 '희망을 기다리며'
▲ 2004년 나사렛대학교 개인초대전 및 시연회
▲ 2005년 한·중·일 국제작품교류전(일본 후쿠오카시립미술관)
▲ 2006년 8월 천사운동본부·울산MBC후원 초대개인전 '희망의 질주'

덧붙이는 글 | 독자분들께서 이윤정씨의 홈피에 방문해 격려의 글을 남겨 주신다면 이씨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구족화가 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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